[전문기자 칼럼] 美캘리포니아로 건너간 한국 쌀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3. 4. 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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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쌀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초과 생산되거나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가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시키는 법안이다.

아무리 농업에 특수성이 있다고 해도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건 지나치다. 쌀에 대한 수요가 계속 줄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에게 쌀을 더 경작해도 된다는 유인을 제공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작년에 정부는 쌀 72만t을 시장에서 격리하느라 예산 1조7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 쌀은 대략 3년간 보관되다가 썩기 직전에야 사료용으로 매각되다 보니 창고 보관료조차 건지기 어려운 가격에 팔린다. 이번 개정안은 국민 혈세로 그런 일을 반복하도록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쌀 시장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쌀을 억지로 사주는 게 아니라 쌀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일이다.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 같은 제도가 새로 도입되긴 했지만 이는 생산량 조정 수단일 뿐이다. 쌀은 생산 조정도 필요하지만 공급보다 수요가 더 빠르게 감소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다만 수요를 늘리는 일은 생산 조정보다 훨씬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작년에 미국으로 수출된 쌀이 늘어난 건 고무적이다. 쌀 주 생산지인 캘리포니아에 지난해 큰 가뭄이 든 게 결정적이었다. 쌀 생산량이 전년보다 30% 이상 감소한 대흉작에 현지 쌀값이 급등했다. 미국의 한 즉석밥 생산업체가 우리 시장을 두드렸다. 이런 수요를 파악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해남에 있는 영농조합법인을 연결했고, 거래가 성사됐다. 해당 업체는 한국에서 들여온 500t의 쌀로 유기농 즉석밥을 만들어 홀푸드마켓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했다. 현지에서 반응이 좋아 올해는 더 늘어난 700t의 유기농 쌀을 매입하기로 했다.

유기농 쌀처럼 고품질 쌀에 대한 수출 수요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은 쌀 과잉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같은 돈이라도 남는 쌀을 사주는 것보다 쌀을 수출 상품화할 수 있도록 농가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데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쌀을 가공해 만든 즉석밥의 수출을 늘리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작년에 CJ제일제당이 수출한 즉석밥은 8500만개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수출 대상 국가도 미국과 멕시코, 호주, 중국 등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불었다. 즉석밥용 쌀은 업체가 고정계약 단가로 매입하기 때문에 농가 입장에선 안정적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같은 포퓰리즘 법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국산 쌀과 즉석밥을 해외로 더 수출할 수 있도록 농가에 길을 터주는 것이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수시로 가는 해외 출장 때 우리 즉석밥을 갖고 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홍보만 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즉석밥을 메뉴로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쌀은 문제가 없다. 쌀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생각이 문제다.

[정혁훈(농업)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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