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안식처 노블링카 희망

2023. 4.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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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치구인 '티베트'를 여행한 적이 있다. 평소 걷기를 통해 다져진 몸이지만, 평균 고도가 3000m가 넘는 고산지역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발 전 병원 검진도 마쳤다. 티베트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보통 '칭짱(靑臟)열차'라 불리는 기차를 타고 간다. 10시간 이상 기차를 타다 보면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다. 이동 중 티베트보다 훨씬 고도가 높은 곳을 여러 번 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시간의 이동시간 단축을 위해 항공편을 이용하는 이도 적지 않다. 도착 후 주변 사람들 속 흔히 말하는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던 필자도 마찬가지였는데, 티베트에 도착하자마자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이튿날까지 고생을 하며 남은 일정을 포기하려던 순간, 한 현지인이 풍부한 산소와 시원한 그늘이 드리운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니 고산증세는 금세 회복되었다. 고된 길에서 한줄기 빛처럼 희망이 됐던 곳, 바로 티베트의 옛 궁전 '노블링카'다.

노블링카는 티베트어로 보물인 '노블'과 정원인 '링카'를 합친 말로, 험난한 여정에서 필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누적된 피로를 회복하고 다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 희망의 쉼터와도 같았다. 노블링카에서 휴식을 취한 후 힘을 내 해발고도 4990m 지역까지의 모든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금의 경제 상황은 티베트를 향하던 힘든 여정과 비슷하다. 특히 기업들은 더더욱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걷고 있다.

2021년 기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충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외부감사 의무 기업의 14.9%나 된다고 한다. 많은 기업이 고물가·고금리로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이자 부담이 증가하는 등 마치 고산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기술력과 경쟁력이 높음에도 일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위기에 처한 기업도 많다. 이들에 적정한 산소와 충분한 그늘을 제공해준다면 충분히 다시 일어서 나아갈 수 있다. 즉 이들에는 티베트의 노블링카 같은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는 복합위기에 직면한 기업에 총 80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고 이자 부담을 완화하는 등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도 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기업구조혁신펀드와 연계해 기업의 완전한 경영 정상화를 지원하고, 회생기업 이외에 워크아웃 기업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에는 신규 자금 지원에 더해 지급보증과 경영 컨설팅을 추가하는 '기업 턴어라운드 동행 프로그램'도 시행해 힘을 보탤 예정이다.

노블링카는 힘들고 고된 티베트 여정에서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여행자의 안식처가 돼줬다. 필자도 고통받고 지친 기업들에 힘이 되어주는 안식처, 노블링카가 되길 희망하며 신발끈을 질끈 동여맨다.

[권남주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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