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먼저다’…중국 방문한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총리의 진심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박종현 2023. 4.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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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와르 말레이시아·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각기 취임 이후 첫, 2019년 이후 첫 방문
보아오포럼 참석·베이징에서 시진핑 만나
경제협력, 아세안 역할, 미얀마 사태 논의

“(코로나19 이전에는) 해마다 중국을 찾았는데, 2019년 이후 4년만에 베이징을 찾았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중국을 방문해 기쁘다. 양국 협력을 강화하자.”

“(2022년 11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가 내년에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때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기를 바란다.”
중국을 방문중인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왼쪽)가 지난 3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신화뉴스·연합뉴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중국과 경제교류 강화 모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동안 이어진 방역조치 완화 이후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동시에 중국을 찾았다. 두 정상은 하이난(海南)에서 열린 ‘보아오 아시아 포럼 연차 총회’ 참석 이후엔 베이징으로 이동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면담했다.

지난 1월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리센룽 총리와 안와르 총리는 중국 지도부와 각기 가진 회담에서 중·싱가포르, 중·말레이시아 관계 증진 방침을 강조했다. 두 정상은 나흘 일정을 마친 보아오 아시아 포럼 연차 총회를 앞두고 지난 3월 말 중국을 방문했다. 31일 폐막된 보아오포럼은 ‘중국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포럼은 하이난 보아오 BFA국제컨벤션센터에서 4년만에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총리 외에 주최국의 리창 중국 총리를 비롯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패트릭 아치 코트디부아르 총리,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리센룽 총리와 안와르 총리는 보아오포럼 폐막 이후 베이징으로 이동해 시진핑 주석 등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과 잇따라 만남을 가졌다. 채널뉴스아시아(CNA) 등 싱가포르 언론에 따르면 리센룽 총리의 중국 방문은 엿새 일정이었다. 3월 27일부터 이뤄진 이센룽 총리의 방문은 중국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 등 양회를 통해 시진핑 3기 지도체제를 확고하게 다진 뒤에 이뤄졌다고 CNA 등은 의미부여했다.
취임 이후 첫 중국 방문에 나선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왼쪽)가 지난 3월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신화뉴스·연합뉴스
◆시진핑 “아세안 역할 중요, 중국·싱가포르 관계는 모범”

싱가포르와 중국 정상은 모든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최고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디지털과 그린경제 분야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리센룽 총리는 “싱가포르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 경제교류 확대를 원한다”며 “이번 방문이 양국 관계 도약의 또 다른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의 역할 강화도 주문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싱가포르 양국 관계는 지역의 다른 나라에 바람직한 사례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싱가포르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싱가포르는 중국의 최대투자국이다. 중국 CCTV에 따르면 중국은 육지와 해상에서 싱가포르와 협력 관계를 증진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시진핑 주석이 양국 정상회담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 역내에서 다른 다라들이 개입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안와르 총리는 나흘 일정으로 중국을 찾았다. 버르나마통신 등 말레이시아 언론에 따르면 안와르 총리는 중국 방문을 마친 1일 “시진핑 주석이 이슬람세계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역할과 기여를 인지하고 있었다”며 “시진핑 주석에게 양국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이 되는 2024년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의 말레이시아 방문은 양국이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을 수립한 2013년이 마지막 방문이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조호르주를 오가는 차량이 지난 3월 31일 두 곳을 연결하는 다리를 메우고 있다. 싱가포르=AFP연합뉴스
지난 3월 29일 싱가포르 도심에서 공공주택(HDB)이 건설되고 있는 모습. 싱가포르=AFP연합뉴스
◆“미·중 갈등 해소돼야, 미·중 태도 바꿔라”

앞서 안와르 총리는 보아오포럼에서 중국 정부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재추진하라고 제안했다. 일대일로가 아시아 국가들의 연대와 협력 확장을 돕는다는 취지의 제안이었다. 그의 제안은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고속철도(SKRL) 건설에 중국이 힘을 합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앞서 2018년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 재임 시절에 고비용 때문에 SKRL 건설이 어렵다며 싱가포르에 계약파기를 선언했다.

시진핑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재생에너지, 반도체,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말레이시아 투자가 가능한 정책이 수립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2009년 이후 중국은 말레이시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중국 측은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동해안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 칭화대의 말레이시아 분교 개교 등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확인했다.

앞서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회원국 방문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던 안와르 총리의 중국 방문은 미·중 관계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안와르 총리는 2차례에 걸쳐 교도소 생활을 한 정치인으로 서구 친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중국을 방문해 일대일대 정책과 중·말레이시아 관계 강화를 촉구한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지원을 통해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워진 자국 경제를 살려야 하는 상황이 반영됐다는 이야기다. 아세안의 역할, 남중국해 문제 등도 양국의 관심 사항이었을 터이지만, 지난해 11월 말 취임한 안와르 총리의 핵심 국정 아젠다는 경제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에 대한 복잡한 속내와 이에 대한 대응의 어려움은 리센룽 총리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중국 방문을 앞두고 진행한 중국 관영매체인 CCTV와 인터뷰에서는 중국의 위상 변화에 주목한 뒤, 미국과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리센룽 총리는 당시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데, 세계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두 나라는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31일 인도네시아에서 발리에서 폐막된 ‘아세안+3 재무차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누사두아=EPA연합뉴스
◆아세안·중국 관계 주목…싱가포르·중국의 높은 화교 비중

안와르 총리, 리센룽 총리가 시진핑 주석 등 중국 지도부와 면담에서 아세안에 대한 지지와 역할 부여를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리센룽 총리는 아세안과 중국의 협력 강화를 언급했다. 그런가하면 안와르 총리는 동남아 지역의 안전문제 논의에 아세안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시진핑 주석이 약속했다고 전했다. 안와르 총리는 미얀마 문제에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아세안을 고리로 한 중국을 향한 긍정적인 역할 주문은 동남아 국가 지도자들이 역외 국가 정상과 만남에서 곧잘 언급하곤 한다. 동남아 국가에서 아세안의 비중이 그만큼 견고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와르 총리와 리센룽 총리의 중국 방문에서는 재미나는 공통점과 차이점도 발견됐다. 보아오포럼 참석 직후 베이징을 찾은 점은 일단 닮았다. 안와르 총리는 말레이이사 공군의 전용기(737-300)에 탑승해 베이징을 방문했으며, 리센룽 총리는 중국민항기 하이난항공편을 이용해 뒤이어 베이징에 도착했다. 리센룽 총리는 앞서 광저우 공항을 이용할 때는 싱가포르항공 여객편을 활용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이웃국가인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태국과 함께 화교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개략적으로 화교는 세계 각지에 약 5000만 명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이 동남아에 거주하고 있드며,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의 화교 비중이 높다. 자국 인구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싱가포르 75%, 말레이시아 23%, 태국 10%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10% 이내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높은 화교 비율을 보이고 있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총리의 방문에 어떤 의미를 뒀을지도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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