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우주'에 숨은 '거대 은하' 빅뱅 이론 파괴자가 나타났다
지난 2월 2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따르면 기존 은하 형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6개의 은하 후보가 발견됐다. 이보 라베 호주 스윈번공과대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이 빅뱅 이후 5억~7억년에 발생한 빛을 관측했는데, 그 빛이 우리은하만 한 질량의 천체 6개로부터 뻗어 나옴을 알아냈다. 5억~7억년은 우주 전체 나이 138억년의 초기 4%에 해당한다. 따라서 보다 작은 천체를 발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보다 100배나 큰 질량의 천체가 있었다.
천문학계에서는 계층적 은하 형성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보다 작은 은하가 모여 더 큰 은하를 만들어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큰 은하들이 다시 한번 모여 더더욱 큰 은하를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거대한 질량을 가진 은하도 결국 자그마한 은하로부터 시작됐다. 그 때문에 이른 시간에 만들어진 천체는 통상 더 작은 질량을 가진다. 그런데 우주가 아기에 가까운 나이일 때 예상보다 100배나 큰 질량의 은하가 존재했다는 관측 결과가 나온 것이다.
표준우주모형은 빅뱅·우주팽창·인플레이션·암흑물질·암흑에너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계층적 은하 형성 이론은 표준우주모형을 바탕으로 유도된다. 김주한 고등과학원(KIAS) 거대수치계산연구센터 교수는 "인플레이션 이론과 암흑물질 이론에 따라 계층적 은하 형성 이론이 나온다"며 "계층적 은하 형성 이론과 반대되는 하향(top-down) 이론은 우주의 큰 구조가 먼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의 관측은 작은 구조가 합쳐지며 더 큰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상향(bottom-up) 이론, 즉 계층적 은하 형성 이론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것은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우주가 기준이다. 김 교수는 "빅뱅 이후 5억~7억년 정도의 옛날이면 관측이 쉽지 않고 시뮬레이션에도 한계가 있다"며 "통계적으로 표본 자체가 많지 않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하향 이론도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지금보다 관측 및 시뮬레이션 기술이 덜 발달했을 때는 하향 이론이 더 설득력 있기도 했다. 우주 초기 큰 우주먼지가 일시에 붕괴하면서 생성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천체(구상성단)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하향 이론의 예측보다 구상성단의 출현 빈도가 너무 낮음이 확인됐다. 김 교수는 "20~30년 전, 관측이 하향 이론을 지지할 때 이론에 근거한 시뮬레이션은 상향 이론을 지지했었다"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우주 초기에 태어난 큰 은하를 많이 발견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이 상향 모형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막상 제임스웹이 찍어온 사진을 분석해보니 당혹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조엘 레저 교수는 "우주가 이제 막 시작된 순간을 관측했기에 작고 어린 아기 은하를 발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우리은하만큼 성숙한 은하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데이터에 따르면 6개 모두 은하지만, 추가로 분석해보면 몇 개는 은하가 아니라 블랙홀일 수도 있다"면서도 "만에 하나 실수가 있을지 몰라 몇 번이나 다시 살펴봤지만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대형망원경사업단 책임연구원은 "연구에 참여한 한 명 한 명이 실력자들"이라며 "6개 중 딱 1개만 정확한 결과로 판명되더라도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연구진도 예상과 너무 다른 결과가 나오니 다른 연구자가 분석해보기도 하고 컴퓨터도 바꿔보면서 검증해봤을 것"이라며 "망원경이 잘못됐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했다.
곧바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사용해 이번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추가 관측을 하면 좋겠지만 당분간은 쉽지 않다. 관측 일정이 연 단위로 예약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 연구 결과가 정말 기존 우주이론을 뒤집을 수 있는 걸까.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다. 통계적 보편을 벗어나는 단순 예외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는 아기의 몸무게가 30㎏인 것은 생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 번씩 예외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명국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장은 "나이가 지금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어린 우주에서 태양의 1000억배 질량을 가지는 은하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천체물리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이나 돌연변이로 매우 드물게 예외가 생기는 것처럼 우주도 너무 넓다 보니 가끔 비정상적으로 무거운 은하가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에 대해 한 천문학자는 "은하의 생성은 생명체와는 다르기 때문에 기형적인 신생아 몸무게에 빗대 은하 형성의 예외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억지 같다"고 꼬집었다.
제임스웹이 찍어온 사진만으로는 아직 불충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장대별 빛의 양을 분석해 은하의 나이와 거리 등을 정밀 분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망원경으로 은하의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빛이 속도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우주에서 오는 빛은 최근에 뻗어 나가기 시작한 빛이고, 먼 우주에서 오는 빛은 옛날에 뻗어 나와 이제야 도달한 빛이다. 먼 우주에서 오는 빛은 지구 근처에 닿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지 학과장은 "천문학에서 가장 측정하기 어려운 값은 거리"라며 "하늘에 투영돼 있는 대상을 관찰하다 보니 먼지에 가린다든가 해서 실제보다 멀리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 "아무리 자료 해석을 잘했더라도 자료 자체에 기기의 잡신호가 아직 많이 섞여 있을 수가 있다"며 "제임스웹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망원경임에도 분광을 해보기 전에는 확실히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천체로부터 전달되는 빛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분광과 측광이 있다. 라베 교수 등의 연구에서는 측광이 사용됐다. 측광은 필터 등을 통해 몇 가지 파장대역에 대해서만 빛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반면 분광은 빛을 그대로 받은 다음 파장대역별 양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더 많은 정보가 담겨 있기에 나이와 거리 등 천체의 특성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망원경을 빛에 더 오래 노출시켜야 한다. 연구에 참여한 레저 교수도 "은하의 분광 데이터를 확인하면 거리와 구성 성분 등 은하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 학과장은 "분광 과정에서 빛이 파장별로 분해되다 보니 가뜩이나 어두운 빛이 더 어두워진다"며 "아무리 제임스웹을 사용해도 정밀한 분광 관측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컴퓨터로 곧바로 시뮬레이션해볼 수는 없을까. 김주한 교수는 "이번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제대로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시뮬레이션 공간의 크기가 1기가파섹 이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1파섹은 3.26광년에 해당하고, 1기가파섹은 10억파섹이다. 김 교수는 이어 "이렇게 큰 공간을 재현하더라도 그 안에서 은하를 관찰하려면 1000파섹 단위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위 차이가 매우 큰 대상을 동시에 관찰해야 하는 만큼 시뮬레이션 용량이 커지고, 그만 한 양을 연산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김 교수는 "초기 우주 시뮬레이션은 우주 전체의 성질을 확인하면서도 개별 천체 단위의 현상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며 "아직 여기에 도달한 시뮬레이션은 없고, 20~30년 내에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기술로 초기 우주를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는지 수치화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굳이 값을 내보자면 1~2% 수준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한 번의 관측만으로 표준우주모형의 지위가 위협받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을 더 확인하고 나면 기존 우주이론에 제대로 도전할 수 있을까. 지 학과장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가 더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여러 지역을 촬영한 천체 사진에서 같은 결론이 나오거나, 제임스웹보다 더 정교한 장비인 지름 25m, 30m 망원경을 사용해야 한다"며 "현재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보다 분광 성능이 더 좋은 거대마젤란망원경(GMT)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거대마젤란망원경은 주 거울의 지름이 25m에 달해 주 거울의 지름이 6.5m인 제임스웹 우주망원경보다 빛을 15배(25²/6.5²) 더 많이 모을 수 있다. 1990년부터 우주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허블우주망원경의 주 거울은 지름이 2.4m여서 제임스웹은 허블보다 7배가량 빛을 많이 모을 수 있다. 한 번에 더 많은 빛을 모을 수 있으면 훨씬 어두운 천체를 볼 수 있거나, 같은 천체를 더 짧은 시간 관측하고도 볼 수 있다. 김상철 책임연구원은 "빛을 모으는 성능이 좋으면 더 먼 우주, 또는 우주 초기 영역을 관측할 수 있다"며 "어떤 천체가 새로 발견되느냐에 따라 기존 우주론을 강화할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마젤란망원경은 1년 중 대부분 날씨가 맑고 사람이 적어 인공 빛도 미미한 칠레 사막에 지어지고 있다. 사업에는 미국과 한국, 호주, 브라질, 이스라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최종 지분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이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김 책임연구원은 "'가장 큰 망원경을 소유한 국가에서는 가장 바보 같은 천문학자라도 뛰어난 논문을 쓸 수 있다'는 농담이 있다"며 "미래의 지식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과거에 보지 못했던 영역을 보는 만큼 인류의 지평을 개척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이어 "거대마젤란망원경 지분 10%로 한국이 매년 30여 일 관측 시간을 보장받는 만큼 인류가 새로운 발견을 해나가는 데 한국 천문학자들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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