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틈새 공략 나선 中, 글로벌 영향력·이익 극대화 ‘두 토끼 잡기’ [세계는 지금]

이우중 2023. 4.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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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 메이커’ 역할 자처, 속내는
사우디·이란 국교 정상화 적극 중재
산유국과의 관계 따진 ‘치밀한 셈법’
美 “긴장 완화 지지” 애써 평가절하
中, 러·우크라戰 휴전 촉구 나섰지만
北核 문제 해결에는 유난히 소극적
한반도 평화 기여 의지 전망 엇갈려
세계 평화의 중재자(Peace maker)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중국의 진의가 철저히 계산된 국익 추구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중동의 앙숙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책도 모색하면서 국제 외교판에서 최근 주목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국의 행보가 ‘평화’라는 인류 보편 명분을 내건 만큼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거나 골치 아픈 분쟁의 경우 중국이 철저히 외면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모스크바 크레믈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고 세계 최대의 골칫거리인 북한 핵 문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북한 핵 중재에 성공하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경쟁국 미국을 능가하는 리더십을 자랑할 수 있지만 중국은 이 문제 해결에 유난히 소극적이다.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악화돼 있는 상황에서 복잡한 비핵화 방정식을 풀어내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기에 중국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사우디·이란 중재… “중국 외교의 승리”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이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가운데 두고 나란히 섰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사우디·이란 양국의 관계 정상화 합의를 발표했다. 2016년 사우디가 이란의 반대에도 시아파 유력 성직자의 사형을 집행한 사건을 계기로 외교 관계가 단절된 지 7년 만이었다. 양국은 외교 관계 정상화 합의에 이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정상회담까지 바로 추진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중국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너선 풀턴 박사는 “이번 합의는 중국이 역내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며 “중동에서 미국의 우위에 도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중동의 주요 행위자였던 미국은 이 중요한 외교적 전환의 순간에 방관자로 전락했고 중국은 이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긴장 완화를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지만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애써 평가 절하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이란을 사우디와의 협상 테이블로 부른 것은 (관계 개선을 바라는) 대내외적인 압력이지 중국의 초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러시아군과의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 있는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AP뉴시스
◆우크라전에도 역할? 속 타는 미국

중동에서의 성공에 고무된 중국은 내친김에 그간 은근히 러시아 편을 들며 지켜보고 있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시도 중이다.

중국은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 입장’을 발표하며 군불을 지폈다. 12개 항으로 구성된 입장문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직접 대화와 휴전 등을 촉구했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경험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한 세계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화둥사범대 러시아연구센터 추이헝(崔珩) 연구원은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는 종파적·지정학적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에는 종파적 갈등이 존재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가 사우디·이란 외교 관계 재개 설득보다 쉬울 것”이라고 글로벌타임스에 말했다.

또 20일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평화 제안을 중요하게 거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건설적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에 대해 “러시아군 철수를 포함하지 않는 정전은 러시아의 점령을 사실상 재가하는 것”이라고 중국의 중재안을 비판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이처럼 코웃음 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혹시라도 전쟁의 피로감으로 일부 국가가 중재안에 동의를 표할 수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익명의 조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는 매체에 “중국의 평화 중재안과 관련해 정부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의 전면에 등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이상,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든 결국 중국의 목소리만 키워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연합(EU) 의장국 스페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도 30일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 주석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이후 시 주석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회담 추진 등 우크라이나와의 접촉도 타진하고 있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신호는 있었지만 구체적이지 않다”며 “확정된 것은 전혀 없다”고 일단 선을 그은 상태다.
지난 10일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왼쪽부터),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사우디·이란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뒤 기념촬영 하는 모습. 베이징=신화연합뉴스
◆평화 해결사 자처하는 중국 속내는

중국이 이처럼 국제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는 것은 결국 미국의 영향력을 대체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서대 중국연구센터 이홍규 소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이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위상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력·군사력뿐 아니라 소프트파워(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파워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강제력보다는 문화, 예술 등 자발적 동의에 의해 얻어지는 힘)와 국제사회에서의 공신력도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이런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 중국이 이란·사우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의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면에서는 미국이 예전에 가졌던 세계적인 영향력이 감퇴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과 틈이 벌어진 나라들에 중국이 접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을 완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익”이라며 “가치동맹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를 양분해 반대편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무력화 혹은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가치동맹이 중국에 대한 압박이기 때문에 평화 중재라는 명분은 미국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성과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명분을 내세우며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까지 염두에 둔 행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중재 이면에서 취할 이익이 많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시각도 나왔다.

경희대 중국어학부 주재우 교수는 “반도체 생산 등 4차산업에서는 전력 소비 비중이 커진다”며 “이번 중국·러시아 정상회담 선언문에 원유·천연가스 수입량과 석탄까지 합의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지금까지 제재와 금수조치 때문에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지만 석유 매장량이 세계 3위인 만큼 이란의 잠재력을 보고 중국이 나섰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중국은 앞으로도 당분간 세계적 제조업 생산국 지위를 유지할 예정이라 산유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사우디 입장에서도 ‘앞으로 우리 석유를 누가 가장 많이 사줄 것인가’를 따져보면 중국 같은 제조 대국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8일 공개한 사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핵무기병기화사업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AP뉴시스
◆한반도 평화는… 전문가 의견 엇갈려

중국이 평화 행보를 확장해 북핵 해결의 전면에 나서고,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주 교수는 “과거 중국 외교부장 인터뷰에는 한반도 문제가 꼭 포함돼 있었는데 친강(秦剛) 외교부장 인터뷰를 보면 이제는 그게 중동으로 가버렸다”며 “확실하게 ‘동북아·한반도에서는 먹을 게 없다. 이제는 중동이다’라는 선언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미·중 관계가 안 좋았을 때라면 중국이 북·미 중재자 역할을 하며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지금은 북·미 당사자들의 의지도 없기 때문에 중재자로 나설 수 없고, 나선다 해도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도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재를 할 국면이 아니다”라고 전망했다.

반면 임 교수는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으로서도 중요한 국가 이익”이라며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중재안을 제시하고 미국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오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는 결국 대만 문제와도 연결된다”며 “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 군사력이 중국을 압박하고, 이는 대만 문제 해결에도 방해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중국도 이것을 분명 알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북핵 문제에서 중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우중·윤솔·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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