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전쟁 중 진짜 총 든 고3, 이 세계관에 빠져드는 이유('방과후전쟁활동')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4. 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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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전쟁활동’, 군대와 학교에 대한 기막힌 풍자

[엔터미디어=정덕현] 입시전쟁 속 고3들이 괴생명체들과 진짜 전쟁을 벌인다? 하일권 작가의 레전드 웹툰 원작을 리메이크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은 그 상상력이 발랄하다. 입시를 앞둔 고3 학생들은 모두가 경쟁자일 수밖에 없고, 생기부에 들어가는 '가산점' 하나가 당락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안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당장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위기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입시나 가산점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아닐까.

하지만 <방과 후 전쟁활동>은 그런 위기 상황마저 숨긴 채, 고3 학생들마저 훈련병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생기부 가산점을 미끼로 내세우는 당국과, 그 미끼에 눈 멀어 군사 훈련에 들어가라며 등을 떠미는 부모들, 그리고 그 위기의 실체가 드러난 후에도 여전히 성적에 집착하는 아이들을 그린다. 하늘에 떠있는 구체들이 하나하나 지상으로 떨어져 내려 인간을 공격하고 먹이로 삼는다는 완벽한 가상의 이야기지만, 그 가상의 상황이 저격하고 있는 건 점수와 순위로 서열을 나누는 경쟁사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작부터 다짜고짜 괴생명체들을 뚝뚝 떨어뜨려 달려 나가기보다는, 먼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다양한 고3 학생들의 면면들을 담아낸다. 늘 교과서를 손에서 놓지 않는 전교 1,2등을 다투는 아이들도 있지만, 성적과는 담을 싼 반항아들과 존재감 없는 아이들도 있다. 또 행동이 굼뜨고 친구가 없는 왕따도 있고 투덜거리면서도 또 할 때는 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겁이 많아 툭하면 울면서 엄마만 찾는 아이들도 있다.

그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 속에 구체가 떨어지고 거기서 튀어나온 괴생명체들은 순식간에 이들의 일상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이들을 훈련시키고 이끄는 이춘호 중위(신현수)나 김원빈 병장(이순원) 같은 진짜 군인들이 있지만,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위기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놀라운 행동들을 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 위기를 벗어나면 그들은 금세 영락없는 또래 아이들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이 아이들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마다 개성과 성격이 다른 데다 입시 경쟁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를 경쟁상대로만 보던 아이들은 위기 상황 속에서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관계도 성장한다. 또 처음에는 이춘호와 김원빈에게 기대고,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사지로 내모는 세상과 어른들을 향해 불만과 불평을 쏟아내기만 하던 아이들이 점점 성장해 저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길거리, 학교, 외딴 집 같은 일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괴생명체들과의 사투와 대결이 눈을 뗄 수 없는 액션 스릴러의 맛을 내는 드라마이고, 그 안에 인물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서사들이 차곡차곡 쌓여 감정적 진폭을 만들어내는 드라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가상의 세계관에 몰입하게 만들고, 그 상상을 흥미롭게 보게 만드는 건 현실 풍자적인 요소들이다.

학교와 군대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시스템에 공유되는 건 바로 서열이다. 학교도 군대도 성적과 성과로 서열을 매기고 시키면 해야 하는 상명하복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점과 벌점으로 서열을 매기고 치열한 경쟁을 동력 삼아 굴러간다. 그 과정에서 안전이나 개인의 행복 따위는 후순위로 밀려나고, 친구들과의 진정한 관계조차 경쟁관계로 치환된다. <방과 후 전쟁활동>에 등장하는 괴생명체들과 싸우며 진정한 관계를 회복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이러한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풍자로 다가온다.

어쩌다 우리에게 학교는 이런 공간이 되어 버렸을까. <지금 우리 학교는>이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꼬집었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젤리괴물들을 통해 아이들의 욕망과 행복을 억압하는 세상을 은유했다. 훨씬 이전으로 가면 <여고괴담> 같은 공포물이 아이들을 비극으로 내모는 입시지옥의 현실을 풍자하지 않았던가. <방과 후 전쟁활동> 역시 이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고3 학생들이 펜 대신 총을 들고 교복 위에 군장을 한 모습은 마치 우리 사회가 학교 혹은 학생이라고 포장을 해놨지만 실제로는 모두 보이지 않는 총을 들고 저마다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 실체를 폭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미친 긴장감으로 달려 나가는 괴생명체들과의 살벌한 전쟁을 보다보면 순간순간 처연함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슬쩍슬쩍 이 가상의 세계 속으로 은폐되어 있던 현실이 고개를 들이미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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