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들어 준 건 소중한 가족"[인터뷰]

모신정 기자 2023. 4. 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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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외비'서 숨은 권력자 순태역 열연
"20대 때 슬럼프로 시골로 도망친 적도 있어"
"'재벌집 막내아들' 신드롬적 인기? 작품이 좋았던 게 첫 번째 이유"
배우 이성민 /사진제공=호두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로 신드롬적 인기를 누린 이후 첫 매체 인터뷰였음에도 배우 이성민은 여전히 덤덤했다. 각종 남우주연상과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연기로는 국내 톱배우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입증했지만 이성민이라는 배우의 놀라운 점은 매번 기대치 못한 도전을 하고 예상치 못한 성과를 떡하니 내놓는다는 점이다. 그것도 배우 경력 30여년이 넘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성민의 발견'이라고 꼽고 있는 영화 '고고70'(최호 감독/2008)에서 1970년대 음악계를 주름잡던 주간서울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 역부터 '부당거래'(류승완 감독/2010), '군도, 민란의 시대'(윤종빈 감독/2014), '빅매치'(최호 감독/2014), '검사외전'(이일형 감독/2016), '보안관'(김형주 감독/2017) 등을 선보이며 한국 영화계 캐스팅 1순위로 서서히 올라섰다. 이후 영화 '공작'(윤종빈 감독/2018)의 북한 간부 리명운 역을 통해 흥행과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2020)에서 박통 역을 맡아 놀라운 기시감을 선사하며 흥행까지 성공시키더니 지난해 '리멤버'(이일형 감독/2022)에서 80대 알츠하이머 환자 한필주를 놀라울만치 높은 싱크로율로 표현해내며 관객들을 탄복시켰다.

그리고 영화 '대외비'(이원태 감독)를 통해 다시 한 번 예상치 못한 숨은 권력가 권순태 역을 통해 서늘한 악인의 끝판왕을 선보였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성민과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이성민은 이웃집 오빠, 혹은 옆집 삼촌처럼 편안하고 정감 있게 '재벌집 막내아들'부터 영화 '대외비'까지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하지만 이날 유독 뇌리에 남았던 건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가족들에게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싶다. '주위를 안돌아보고 내 갈길만 살아왔구나'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연기)을 하면서 많은 희생자(가족)가 내 주위에 있었구나' 생각이 든다"라며 회한에 젖었던 부분이다.

배우 이성민 /사진제공=호두엔터테인먼트

이성민은 차기작 디즈니+ '형사록' 시즌2와 티빙 오리지널 '운수 오진 날'로 올 하반기 중 시청자들과 다시 한 번 만난다. 기대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그의 신작들을 기다리는 재미가 벌써부터 쏠쏠하다. 

- 순태 역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악인을 선보였다. 

▶ 짧은 머리에 콧수염 있는 인물을 해보고 싶었다. 순태가 다리를 저는 이유가 특별히 등장하지 않는데 그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어떤 사연을 표현해보려 했다. 엔딩 부분에서 해웅(조진웅)과 이야기할 때 '악마한테 영혼을 팔아야지'라고 말하며 다리를 두드리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 또한 해웅만큼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순탄치 않았다는 걸 보여드리려 했다. 

- 순태가 권력 최상부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암시를 주면서도 직업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없는데. 

▶ 저도 순태의 직업을 모른다. 부산에서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토호 세력 중의 한 명으로 표현됐는데 중앙 권력과도 결탁돼 있고 그들이 원하는 입맛의 정치적 인물을 만들기도 하는 인물로 표현했다. 보이지 않는 곳의 힘을 부여받은 인물 말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 그런 부류의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보고 있는 권력 뒤의 권력, 그런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 모티브를 가져온 인물이나 참고로 한 인물은 없나. 

▶ 실존 인물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봤다. 평소 정치 뉴스를 즐겨 보기는 하지만 순태를 위해 참고할 인물은 없었다. 지역의 언론사 관련 인물일 수도 있고 돈 많은 유지일 수도 있었을 거다. 여러가지가 섞인 인물로 그렸다. 다만 선악 구분을 하거나 악당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악역이라 생각하고 연기하지 않았다. 사람도 죽이고 선거 조작도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할 때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다.   

배우 이성민 /사진제공=호두엔터테인먼트

- 작품 선택시 일관된 기준이 있나?

▶ 기준을 정하고 그것에 따르지는 않난다. 제 루틴은 드라마 대본을 받으면 작가가 누구인지 보고 영화는 감독이 누구인지 본다. 그 감독의 전작이 어떤지 생각하며 책을 본다. 이야기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하는 것이 첫 번째로 선택하는 이유이고 제가 해야 할 캐릭터를 잘 할 수 있을까도 고려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와 남들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에 끌린다. 이번 작품은 책도 마음에 들었고 조진웅과 협연도 매력적이었다. 그를 매우 좋아한다. 

- 조진웅을 배우로서 좋아하는 이유는.

▶ 내가 가지지 않은 부분을 가진 배우여서 부럽기도 하고 연기 합을 맞췄을 때 앙상블을 아는 배우다. 상대배우와의 화학 작용이 물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누구는 H를 누구는 O2를 해야 하는데 조진웅은 그런 것이 명확한 배우다. 함께 연기하며 나도 빌드업 될 수 있다. 

- 조진웅과 이번에 함께 호흡하며 새롭게 느낀 점이 있나. 

▶ 전작에 비해 달라졌다거나 하는 것보다 점점 더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게감도 있고 더 여유가 있더라. 조진웅과는 KBS 드라마 '열혈 장사꾼'도 함께 했었고 '보안관'도 함께 했다. 주연배우로서 무게감 같은 것들이 확실히 있고 발전하고 있더라. 

- '남산의 부장들'의 박통 역부터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양철 회장 역할까지 권력의 최상층만 연달아 연기 중인데. 

▶아마 '남산의 부장들'이후 그런 경향이 생긴 것 같다.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하고 나면 비슷한 이미지로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권력가의 연기를 여유롭게 웃으며 할 수 있는 비결은 따로 없다. 다만 그런 여유를 표현하려고 한다. 라면을 먹으며 해웅과 대화를 나누는 신에서 배우 자신은 굉장히 후달렸다. 하지만 표현적으로 여유 있으면서 힘을 보이려 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신이다. 

배우 이성민 /사진제공=호두엔터테인먼트

- 김무열과는 두 번째 호흡인데. 

▶ 이번 작품에서는 딱 두 번 마주쳤다. 이상한 술집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었고 또 한번은 검사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신이 있다. 원래 김무열과는 잘 알지 못했는데 '소년심판' 때 또 만났다. 함께 연기하며 '깍두기 헤어스타일의 그 배우가 '소년심판'에서 이렇게 해맑은 장그레 같은 얼굴로 나오다니'하고 놀라게 되더라. '악인전' '대외비'에서는 세고 터프한 이미지였는데 '소년심판'에서는 해맑은 소년 같았다. 

- 김무열의 부산 사투리 연기를 보며 동병상련도 느꼈겠다. 

▶ 무열 배우가 힘들었을 거다. 저도 '공작' 떄 북한말을 해봤는데 힘들었다. 저만의 노하우라고 한다면 사투리는 사투리이고 내 감정이 우선시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지역의 말로 연기하는 건 힘들다. 배우들이 아무리 마음 먹어도 걸리적거리기 마련이다. 

-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 스스로를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 같다. 

▶ 늘 하는 고민이다. 최근 작품인 '리멤버'가 가장 오래 전 찍었고 그 다음이 '대외비', '재벌집 막내아들'이 가장 나중에 찍은 작품이다. 마음 같아서는 촬영한 순서대로 공개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면 저도 순서대로 하면서 나이든 역할을 할 때 제 생각에 조금씩 더 편해지고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순서가 뒤바뀌어 공개되다 보니 아쉬움이 있다. 나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은 저 뿐만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배우의 화두 아닌가. 나를 넘어선다는 것이 뭘까.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캐릭터이고 작품인다 캐릭터가 빛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작품이 잘 되야 한다는 건 변치 않는 원칙 같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사랑받다 보니 진양철 캐릭터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 송중기와의 호흡도 궁금하다.

 제가 송중기 배우 연기를 평가할 건 없다. 같이 연기하며 편하고 좋았다. 현장에서 항상 저를 "할아버지"하고 불렀다. 나이 차이도 별로 안나는데 말이다. 항상 현장을 편하게 만들더라. 

- '재벌집 막내아들' 방영 당시 인기를 몸소 체험했나. 

▶우선 시청률에서 실감했다. 주변 반응이 틀리긴 하더라. 지인들에게 문자오고 전화도 왔는데 마치 TV에 처음 나간 것처럼 전화가 왔다. 연기는 별로 특별한 게 없었는데 '작품이 잘 돼야 연기도 꽃피우는구나'하고 느껴졌따. 연기는 그냥 그랬다. 사람들이 연기 이야기를 하도 하니 약간 민망하더라. 전부 작품 덕이다. 작품이 잘 돼서 배우도 빛난 거다. 제가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도 작품이 평가를 못받으면 평가 못받더라. 

- 연기 인생 중 슬럼프를 극심히 겪은 시기가 있나. 

▶ 20대 때 연극을 하면서 겪었따. 영화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20대 때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연극이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섞여서 해야 하는데 사람들과 작업하는 게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공항장애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그런 단어가 없었다. 작업을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도 책을 못읽을 정도였다. '나와 안 맞구나' 생각하고 보따리를 싸서 시골로 내려간 적도 있다. 그러다 막노동을 하며 지냈는데 너무 힘들어서 다시 올라왔다. 그 때도 1년 넘게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슬럼프라고 생각도 못했다. 30대 초반 영화 연기 초창기 때에도 영화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연기의 톤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 

▶ 보통 저는 화두를 두는 편이다. 그 때도 화두를 두고 갔던 것 같다. 배우가 나이가 들면 어릴 때야 나에게 디렉션을 많이 주는 연출 선배도 있고 질책도 해주고 한다. 하지만 나이 들면 그런 게 없어진다. 그래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시각이 많이 줄어든다. 그렇기에 스스로 답을 잘 찾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많은 긴장을 해야한다. 

- 수많은 연기자들이 20~30대에 톱을 찍고 그 자리를 유지하거나 사라져 간다면 이성민 배우의 경우는 40~50대에 점점 더 톱의 자리에 가까워지는 특별한 경우인 것 같다. 쉽사리 정상에서 내려올 것 같지 않은데 비결이 있다면. 

▶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20대나 30대 나이에서 지금의 위치 혹은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였다면 앞으로 50년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가끔 후배들을 놀릴 때가 있다. '나는 앞으로 20년 하면 되는데 너는 50년 더 해야해'라고 하면서. 제 입장에서는 다행이라 생각하고 이상적 그래프를 그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노인 연기를 많이 했는데 미래에 내가 살아야할 시간들을 미리 체험하는 느낌도 있다. 혹은 10~20년 뒤 해야할 역할을 땡겨서 한 느낌도 있고. 

- 오랜 시간 가장 소중한 존재를 꼽는다면. 

▶ 가족이다. 내가 흔들릴 때 다잡아 준 존재다. 연극하고 이럴 때 결혼하고 나서 그 생각 밖에 안하고 살았다. 책임져야 하는 가족 때문에 버텨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기적으로 살았구나"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내 주변에 있었구나' 생각된다. 특히 내 가족들 말이다. 이렇게 먹고 살고 있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 과정에서 힘들었을 내 가족들에게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주위를 안돌아보고 '내 갈길만 가며 살아왔구나, 참 이기적으로 살아왔구나'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배우는 하지 않을 것 같다. 기술을 배워서 물건 고치고 이러면서 살아가고 싶다.(웃음)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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