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화가 나니까 소설을 쓴다”
대표작 ‘화산도’ 이어받아 마무리 의미
김석범의 장편 <바다 밑에서>(도서출판 길)는 4·3사건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를 이어받아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원고지 2만2000장 분량의 <화산도> 한국어판은 2015년 12권으로 완간됐다. 김석범이 <까마귀의 죽음>(1957)으로 일본에서 4·3을 처음 공론화한 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이다. 1925년생인 김석범은 쉰 살이 넘은 1976년부터 20여년에 걸쳐 <화산도>를 썼다. 20여년이 흐른 2020년 낸 <바다 밑에서>가 번역돼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화산도>는 4·3 발발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군경의 무장봉기 진압이 이뤄진 이듬해 6월까지를 다룬다. 등장 무대는 제주와 한반도, 일본을 아우른다. <바다 밑에서>는 이방근과 함께 <화산도>를 이끌어간 주인공 남승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산도>에서 남승지는 일본 오사카에서 남로당 지하 조직책으로 일하다 조국의 혁명 완수를 위해 제주도로 간다. 항쟁 패배 뒤 고문을 당하다 일본으로 도망친 이후 이야기가 <바다 밑에서> 줄기를 이룬다.
<바다 밑에서> 1장은 1948년 항쟁의 참상을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빨갱이 말살, 민주주의 옹호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개인의 심신을 갈아 으스러뜨린 대량 학살.” 제주는 “슬픔도 기쁨도, 그럴 장소도 시간도” 없는 곳이 됐다. 살아있음이란 게 “그저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숨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남승지의 선배이자 스승 이방근은 1949년 6월19일 한라산 기슭의 산천당 동굴 옆에서 자살했다. 이방근이 생전 완수하려고 한 게 누이동생 유원과 남승지를 일본으로 밀항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소설 2장은 이방근의 1주기인 1950년 6월19일 제사에 참석하러 오사카에서 도쿄로 나온 남승지가 유원과 만나며 시작된다. 남승지는 이방근이 제주 탈출을 재촉하며 하던 말을 떠올린다. “여기 남을 무슨 이유가 있어? 여기서 개죽음을 하지 않도록 나는 너를 일본으로 보내는 거야. 내 동생을, 유원이를 만나라. 동생은 기꺼이 너를 맞아줄 거야. 이 땅에서 헛되이 죽게 하진 않을 거야.”
남승지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한다. 일본으로 밀항해 살아남은 자신을 돼지로 여긴다. “그렇게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꿈속에서 긴 진통을 겪으며 돼지로 변신하고 돼지우리에서 굶주린 게릴라에게 잡히지 않고, 토벌대에게 살해되지 않고 이 일본에 있다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일까?” 남승지는 술을 먹다 졸다가도 “돼지가 되어서라도 이 섬을 떠나 살아남아라. 그래. 나는 돼지가 된 거야”라고 되뇐다. 자신을 돼지라고 생각하는 건, “과거로부터 도망쳐 자신의 가책을 돼지에 덮어씌”우는 것이자 “은둔자의 합리화”였다.
남승지는 이방근의 죽음의 충격을 견뎌낼지 회의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의 혼란스럽지만 평화로운 일본 사회를 무대 삼아 남승지라는 재일 조선인 청년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옮긴이 서은혜)를 캐묻는 소설이다. “끔찍한 과거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승지의 “동요와 울적한 심상”을 거듭 그려낸다.
이 소설은 살아남은 자의 기억에 관한 것이다. 남승지는 학살과 죽음 의미를 곱씹는다. 김석범이 2020년 작품을 내고 진행한 인터뷰 제목은 ‘권력이 지워버린 기억을 삶으로 계승한다는 것’이다.
김석범은 올해 아흔여덟 살이다. 그는 “(4·3)사건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화가 나니까 소설을 쓰는 것이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죽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래 살았다”고 했다.
김석범은 1951년 대마도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서 성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압도된 뒤 4·3 관련 소설을 썼다고 한다. ‘북도 남도 아닌 준통일 국적’이라 여겨 ‘조선’적을 유지하는 그는 2015년 제주 4·3평화상을 받을 때까지, 제주를 찾지 못했다. 김석범은 <화산도>를 쓸 때 “ ‘취재’ 여행조차 다녀올 수 없는 채로 집필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바다 밑으로> 출간을 두고 서은혜는 “오직 상상력만을 무기 삼아 ‘4·3사건’이라는 참극이 벌어진 그 시간과 공간에 수인처럼 스스로 갇혀버린, 이 작가에게만 가능했던 작품이 아닐까”라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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