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스위스 불똥, 한국 조선업계로 튈까
크레디스위스와 선박금융
유비에스 인수 뒤 “선박금융 축소”
CS 선박금융 절반이 그리스 쪽
국내 해운업체, 그리스 거래 적어
전문가들 “한국 영향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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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레디스위스(CS·크레디트스위스)은행 사태 불똥이 한국 조선업계로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업계 전문가들은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는 반면 추이를 잘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크레디스위스 사태가 어떻게 우리 조선업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일까.
크레디스위스는 스위스 최대은행 유비에스(UBS)로 넘어가는 것이 확정됐다. 유비에스는 최근 크레디스위스의 선박금융 비중을 감소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선박 가격은 종류나 크기에 따라 차이가 큰데, 엘엔지(LNG)선이나 컨테이너선(2만3천TEU급)은 새 선박 기준으로 2천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해운선사가 이 정도 가격의 선박을 발주하려면 선박금융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선사로서는 새 선박 발주뿐 아니라 기존 발주 선박의 건조 대금을 지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선박 만들고 융통하는 법
조선소와 선박 계약을 하는 건 해운선사가 아니다. 선사는 발주를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다. 선박 건조 대금이 100만원이라면 에스피시는 대개 은행권으로부터 선순위 대출로 80만원을, 선박투자회사나 펀드 등으로부터 후순위 대출로 20만원을 조달한다. 대부분은 선사가 상당한 자기자금을 투입한다. 예를 들어 선사가 직접 조선업체에 20만원의 선수금을 지급하고 선박 건조 계약을 체결한 뒤 에스피시로 계약을 이전한다. 그러면 에스피시는 80만원의 자금만 선박금융으로 조달하면 된다. 에스피시는 이 돈을 선박 건조와 인수 과정에서 중도금과 잔금으로 조선소에 지급한다. 에스피시가 선박의 법적 소유주가 되는 셈이다.
선사는 이 에스피시로부터 선박을 빌려 화물운송 영업을 한다. 선사로부터 용선료를 받는 에스피시는 대출자들에게 원리금으로 지급해나간다. 선사는 선박 건조 대금으로 20만원을 부담했기 때문에 용선료에서 이 금액만큼을 면제받는다. 용선 기간이 끝나면 대개 선박은 선사가 매수한다. 이때 중고 선박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 후순위 대출자인 선박투자회사나 펀드는 용선료 수익 말고도 계약 내용에 따라 매각차익의 일부를 받을 수 있다.
선박금융 구조를 따지고 보면 실제 선주는 해운선사라 할 수 있다. 선사는 자기자금으로 20% 안팎만 투입하면 되니까 적은 돈으로 여러척을 발주해 레버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에스피시 구조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도산 절연’ 효과다. 에스피시 소유 선박은 대출자에게 담보로 제공된다. 선사는 에스피시의 원리금 지급에 대한 보증을 서기도 한다. 선사가 망해도 대출자들은 에스피시로부터 선박을 넘겨받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이제 다시 크레디스위스 사태로 넘어와보자. 선사가 선박금융 없이 발주를 하려면 보유자금을 쓰거나 증자 또는 회사채 발행 등으로 조달한 자금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자금 운용은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는 않기 때문에 선박금융은 거의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선박금융에 차질이 발생하면 선주들이 발주에 나서기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기존 발주 선박에 대한 중도금과 잔금 등을 지급하지 못하면 조선소로서는 건조 계약 자체를 취소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선박 대금은 건조 계약 시 선수금으로 20%, 건조 과정에서 중도금으로 10%씩 3회, 그리고 마지막 완성 선박 인수 과정에서 50%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크레디스위스의 선박금융 규모는 2021년 기준으로 100억달러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50억달러 남짓이 그리스 선주와의 거래액이다. 전세계 금융회사들이 그리스와 거래한 선박금융 규모가 500억달러인데 이 가운데 50억달러가 크레디스위스 몫이라고 본다면 10%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따라서 크레디스위스의 선박금융 감소 영향을 그리스 선주들이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선박금융 대출 주체 다양해져
그렇다면 우리나라 조선업체와 그리스 선주 간 거래는 어느 정도일까. 한국투자증권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클라크슨 자료를 기초로 분석한 내용을 보면, 현대중공업의 올해 3월 기준 수주 잔고 중 그리스 선주 발주분은 15.8%(금액 기준)를 차지한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각각 13%, 11.3%, 7.8% 수준이다. 에스케이(SK)증권 분석으로는 수치가 좀 더 올라가는데 현대중공업 22%, 현대미포조선 24.2%, 현대삼호중공업 11.3%, 삼성중공업 7.3%, 대우조선해양 13%로 파악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크레디스위스 사태가 한국 조선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우선 크레디스위스가 2021년 기준 전세계 선박금융(2900억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100억달러)밖에 안 된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우리 조선업체 수주 잔고 대비 그리스 비중도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크레디스위스가 기존 선박금융 대출부터 회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기존 대출자산을 줄인다 해도 채권을 다른 은행에 매각양도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운 운임이나 중고 선박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선박대출은 우량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크레디스위스가 내놓는 대출자산 양수도는 쉽게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용선료 지급 주체인 해운선사의 유동성과 재무 상태도 최근 수년 사이에 아주 좋아졌다.
선박금융 대출 주체가 다양화됐다는 점도 제한적 영향의 근거로 제시됐다. 과거에는 대출 주체가 거의 은행권 중심이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위기 등을 거치면서 일반상업은행은 선박금융을 대폭 줄였다. 그 빈자리를 선박 관련 펀드와 정책금융기관들이 메웠다. 우리나라도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 자산관리공사 등이 예전보다 활발하게 선박금융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으론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지역 은행 사태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 영향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은행들의 자본건전성이나 안정성이 이슈로 부각되면 선박금융 같은 위험가중자산부터 줄이려는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만약 이런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아무래도 정책금융기관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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