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와 '위법' 사이?‥의존명사 '등'의 해석법
민주당이 추진한 검찰 수사권 축소법, 이른바 '검수완박'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정치권 공방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른바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유효하더라도, 수사권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시행령,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이 그 아래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된 상태가 계속되는 셈입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톺아 보겠습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부터 살펴볼까요?
지난해 국회를 뜨겁게 달궜던 '검수완박법'의 정식 이름은 검찰청법입니다.
바뀐 조항은 제4조(검사의 직무)였습니다.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이렇게 줄였습니다.
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개정전에는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민주당의 명분은 '검찰 개혁'이었습니다. 검찰이 원하면 어떤 범죄든 직접 수사할 수 있고, 그 수사 과정을 견제받지 않고 기소까지 일사천리로 할 수 있어 문제라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 덕분에 제 식구 감싸기, 정치 수사가 가능했으니,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줄여서 그 힘을 빼자는 거였죠.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취임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오히려 수사범위 넓히기 나섰습니다. 우선 '부패와 경제 범죄'의 범위를 크게 넓혔습니다. 경제범죄에는 마약유통과 보이스피싱 등 돈이 목적인 조직범죄가 모두 들어가고, 부패범죄에는 공직자와 선거범죄 중 직권남용과 금권선거가 다 포함되도록 한 겁니다.
이 뿐 아닙니다. 무고죄나 위증죄, 국가기관이 고발한 사건도 검찰이 맡기로 정했습니다.
부패와 경제 범죄의 범위를 넓힌 건 그렇다 치고, 무고죄나 위증죄는 딱히 개정된 법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게 '등'의 마법입니다.
경제와 부패범죄는 아니지만 '등'이 있으니 덧붙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또 법에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이라고 돼 있는데, 그 두 범죄는 예를 든 것 뿐이고, 실제 범위는 시행령으로 정해도 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민주당은 입법취지를 무력화시킨 '시행령 쿠데타'라고 반발했습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삼권분립 훼손, 위임 입법 한계를 넘어선 일탈'이라자 '꼼수'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찰마저 "법 취지 훼손이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김형두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최근(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질문에, "시행령이 큰 틀에서 (모법과) 서로 모순되는 점이 있다, 입법취지와 같이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시행령을 통해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민주당 의원 질문에는 "그것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스스로 시행령을 고칠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한동훈 장관은 아예 헌재 결정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한 장관은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상식적으로 국민이나 법조인들 중에 동의할 만한 사람이 있겠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걸 까요? 법 통과시점은 대통령선거 이후였는데 말이죠.
사실 국회 입법과정에서 '등'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시계를 참여정부 시절로 돌려보겠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데 이어 2004년 탄핵 역풍을 발판삼아 원내과반을 달성한 열린우리당은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추진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립학교법' 이었습니다. 핵심은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서 사학을 운영하는 이사회에 이른바 '족벌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를 반드시 넣도록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개방형 이사제' 였죠. 이 개방형 이사를 추천하는 단체로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로 못박는 법이 2005년말 통과됐습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곧바로 국회 문을 닫고 장외투쟁을 불사하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이후 재개정을 놓고 여·야간 공방과 협상이 반복됩니다.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김한길 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재오 의원이었는데요, 이재오 원내대표가 제안을 하나 내놓습니다. 개방형 이사의 선정주체를 '학교운영위나 대학평의회'에서 '학교운영위나 대학평의회 등'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등'자 하나를 넣어서 사학 재단 측도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시도였습니다. 당시 김한길 원내대표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독도의 주권이 대한민국 등에 있다'고 해도 되느냐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검찰 수사권 축소법' 처리 때로 가보죠.
당시 법사위를 통과한 민주당 법안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으로 돼 있었습니다. 수사범위가 시행령으로 넓어지는 것을 원천 봉쇄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본회의에 상정된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서 "중"이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국민의힘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경제, 부패 범죄라고 법률에 명시해 놨는데 하위법인 시행령이 이를 거스르고 수사범위를 확대할 수 있겠냐는 판단에서 "등"으로 타협한 것입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당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령으로 확대하려 하더라도, 경제·부패 범죄가 아닌 경우엔 법원이 위법임을 명백하게 판단해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등"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법률에 "가, 나 등"이라고 적혀 있을 때, "가, 나" 가 그냥 예를 든 것이냐, 그래서 "다, 라"도 다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가, 나"만 된다고 딱 못박은 것인지 여부입니다.
한마디로 예시냐, 열거냐는 논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합니다. 이범준 사법전문작가는 "그 법의 종류와 앞 뒤 조항 등에 따라 해석이 엇갈릴 것"이라며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입법과정에서 '등'을 근본 이유는 입법자들이 문구 하나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현상을 다 예측하고 재단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첨예한 대립 속에 '등'은 합의를 위한 여백이나 틈이라는 말도 합니다. '등'을 둘러싼 해석 다툼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세옥 기자(okle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3/politics/article/6469937_361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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