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V 바이러스'도 정복 눈앞인데…'K-백신' 또 한발 뒤처졌다

안정준 기자 2023. 4.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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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없던 '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RSV)' 질환에 곧 백신이 상용화된다. 유럽에서는 이미 백신 품목허가가 났고 미국에서는 이르면 상반기 백신 허가가 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겪으며 기술을 한층 끌어올린 글로벌 제약·바이오사들이 발빠르게 개발 각축전을 벌인 결과다. 반면 국내 업계는 아직 임상에 진입하지 못한 수준이다. 팬데믹 기간 우리도 관련 기술이 제고된 만큼 미개척 백신 영역에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는 미국 화이자와 영국 GSK의 RSV 백신에 대한 60세 이상 사용 승인을 권고했다. 화이자는 영유아 대상 모성 접종용 RSV 백신도 FDA의 허가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60세 이상 백신은 이르면 올해 상반기 품목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와 프랑스 사노피가 함께 개발한 영유아 대상 RSV 백신은 지난해 11월 유럽에서 허가를 받았다. 이 백신은 현재 미국 FDA에서도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밖에 미국 모더나가 60세 이상 RSV 백신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하고 올해 상반기 중 미국 FDA에 허가신청을 낼 예정이다. 올해 유럽과 미국을 시작으로 RSV 백신 상용화가 시작되는 셈이다.

RSV는 호흡기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로 인두염 등 주로 상기도 감염을 유발한다. 아기가 감염되면 호흡 곤란을 유발하며 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령층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위험하다. 세계에서 매년 어린이 10만명, 고령층은 1만4000명이 RSV 감염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기 사망률이 높다. 소아 92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다기관 연구에서 RSV 감염으로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환자의 약 67%가 2세 미만이었고 사망률은 5.4%로 보고됐다.

최근 국내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RSV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했고 홍콩에서도 어린이들 사이에서 RSV가 크게 확산됐다. 세계 각국이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하며 확산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 의료계 분석이다. 아직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백신이 없어 적절한 예방이 어려웠지만, 이제 백신 상용화가 눈 앞인 셈이다. 시장 전망도 밝다. 미국 투자은행 SVB리링크에 따르면 세계 RSV 백신 시장 규모는 2030년 100억달러(약 1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직 국내 업계 RSV 백신 개발은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한 상태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과 함께 mRNA 백신 플랫폼을 활용해 RSV 백신을 개발하기로 했지만, 아직 준비 단계인 것으로 파악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와 별도로 2018년부터 RSV 백신을 연구중이지만, 아직 임상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부터 임상에 돌입한다 해도 이미 허가 단계인 해외 제약·바이오사들의 백신이 의료현장에 안착한 뒤에야 상용화가 가능하다. 유바이오로직스도 곧 비임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역시 갈 길이 멀다. 그나마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면 RSV 백신 개발에 나선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와의 기술 격차를 감안해야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내 백신 업계 위상 역시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쉽다는게 업계 일각의 지적이다. 2021년 한국 백신 시장 규모는 3조805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2.3% 폭증하며 글로벌 백신 허브로 도약한 상태다. 특히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OEM(주문자위탁생산)과 CDMO(위탁개발생산)을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린 것은 물론 조단위 현금 자산을 쌓아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제약·바이오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백신 개발을 동시에 진행했다"며 "국내 업계가 할 수 있는 미개척 영역에서 다양한 개발 전략을 발빠르게 실천에 옮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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