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핵무장하자”…커지는 핵 보유론, 위험한 선택인 이유 [박수찬의 軍]
‘한국도 핵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는 사안이다.
하지만 핵무장을 원하는 국내 여론의 실체와 핵공유의 의미, 핵개발을 했을 때의 후폭풍 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핵보유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라
최근 제기되는 핵무장론의 근간에는 지난해부터 잇따랐던 북한 핵위협이 지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중의 핵무장지지 이유는 일반적인 관념보다 복잡하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지난달 발간한 ‘핵무장을 원하는 국민 인식의 세 가지 특징’ 보고서에서 다수의 여론조사 자료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핵무장은 오랜 기간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왔다.
통일연구원 조사에서는 최근 4년간 핵무장에 찬성하는 국민의 비율이 60%대에서 70%대로 꾸준히 상승했다. 2013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북한 이외의 위협에 대비하고자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9%,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위해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6%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대남 위협을 강화하는 모습은 한국 내에서 핵보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 위협만이 핵보유의 근거는 아니라는 점은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이 인도태평양에서 펼치는 전략 경쟁과 한반도 주변국들의 군비 증강, 한국의 국력에 걸맞는 국방력을 보유하기를 원하는 국민적 욕구 등도 핵보유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의 안보공약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61%였다. 미국의 안보공약을 매우 신뢰한다는 응답자의 78%는 핵무장을 지지했고, 매우 불신한다는 응답자의 56%가 핵무장을 지지했다.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신뢰가 크면 독자 핵무장에 대한 목소리도 잦아든다는 것이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 의지를 과시해서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면 독자 핵보유 주장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인 이같은 믿음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안보공약을 신뢰하면서도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은 기존 방식으로는 해석이 쉽지 않다. 새로운 시각에서 핵무장과 미국 확장억제, 한미 공동의 맞춤형 억제전략 등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언뜻 보면 ‘핵 동맹’으로서 이상적인 형태지만, 실상은 다르다. 유럽에 있는 미국 전술핵은 미군이 통제하고, 미국 대통령이 최종 사용승인을 한다. 유럽 동맹국들이 이중용도 항공기 사용을 거부할 수 있으나, 미군은 대체 수단을 충분히 갖고 있다.
핵 기획에서도 유럽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유럽 동맹국들은 미 유럽사령부와 협력하는데. 미군의 실질적 핵전략은 전략사령부 몫이다. 나토식 핵공유가 상징적 차원에 그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핵전쟁 외에도 핵무기를 앞세운 군사적 위협이나 생화학무기 등의 위협도 포함하는 한미 공동의 맞춤형 억제전략과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의 제도적 장치에 나토식 핵공유에서 쓰이는 핵 기획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전술핵 재배치도 실효성은 떨어진다. 전략폭격기에서 사거리 1000㎞ 이상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쏠 수 있고, 2500㎞를 날아가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도 있다.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B-1B 폭격기가 출격하면, 2시간 후에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다.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나선다면, 한국이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다.
정치권에서는 한국이 언제든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원자력 기술 개발과 운용경험, 핵물질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확보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의미한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심각하게 약화하고, 경제제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일하게 NPT를 탈퇴하며 핵개발에 나섰던 북한이 그 대가로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핵개발에 대한 제재로 우라늄을 비롯한 핵물질 수입이 금지되면, 국내 전력 생산의 핵심인 원자력발전소는 가동이 어렵다. 경제 전반에 걸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수십년에 걸친 경제 성장의 성과도 흔들린다.
이 모든 것을 각오하고 핵무기 개발에 ‘올인’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핵무기가 실질적 위력을 갖출 때까지 투자해야 할 비용과 인력, 시간 때문이다.
핵폭탄 제조만으로는 위력을 갖출 수 없다. 핵탄두를 탄도·순항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경량화해야 한다. 북한이 6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하면서 거듭 강조하는 것이 소형화·경량화다.
핵개발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핵무장이 남북 간 공포의 균형과 전략적 안정성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무기를 남북이 모두 갖고 있으니,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갈등은 피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핵을 보유한 적대국 간 관계가 늘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핵무기를 갖고 있으므로 대규모 전면전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재래식 군사도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바로 핵개발에 성공하면 전면전 위험은 줄지만 국지적 충돌은 증가한다는 ‘안정-불안정의 역설’이라는 국제정치학 개념이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파키스탄 관계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과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세종정책브리프’에서 “핵을 보유한 이후의 인도-파키스탄 관계도 전면전이나 핵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지만 양국 간 전략적 안정은 달성되지 못했고, 재래식 충돌 등 주기적인 위기가 초래됐고 군비경쟁도 지속됐다”며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남북 간 현상도 미·소 냉전과 남아시아의 역사적 경험과 유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도화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대안을 찾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제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핵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확장억제 등 각각의 방법이 지닌 장점과 단점, 국민 생활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 실현 가능성 등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핵문제에 대한 국민의 의식도 연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한국형 핵전략’을 정부와 정치권, 군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적 명운을 걸고 핵무기와 핵전략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장이 아닌, 고민과 성찰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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