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훗날, 2023 ML는 패러다임의 시발점으로 기억될까[스한 위클리]

이재호 기자 2023. 4.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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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각) 메이저리그 시볌경기에서 투수와 타자의 대결이 시작된 후 3구 삼진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8초'. 반면 2021년 9월 메이저리그 정규경기에서만 해도 투수가 타자를 향해 고작 공 하나를 던지는데 걸린 시간은 '1분 30초'였다. 상황이 주는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피치 클록(Pitch Clock)' 시행 이전과 이후가 주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시간차다.

지난 3월31일 2023 메이저리그(MLB)가 개막했다. 30개 팀당 162경기씩 10월2일까지 6개월의 대장정을 시작한 것. 2023 메이저리그에는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자세히 훑어보면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규정 변화가 있다. 먼훗날 2023년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획기적인 변화의 시발점으로 남는 해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AFPBBNews = News1

▶피치 클록 : 속도감 있는 야구의 시작

야구의 최대 라이벌은 축구일까? 아니다. 바로 넷플릭스와 유튜브며 롤(LOL)과 같은 게임이다.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은 '빠른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야구는 경기 시간 평균 3시간에 타 스포츠와 달리 움직임이 많지 않다. 이는 야구 인기 하락에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통계와 시청률 등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시청인구가 고령화 되고 MZ세대는 외면하면 결국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 메이저리그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으니 바로 '피치 클록'이 주인공이다.

피치 클록은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주자가 없으면 15초, 주자가 있어도 20초 이내에 투수가 공을 던지도록 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을 위반하면 '볼' 1개를 선언한다. 백스톱에는 투구 시한 제한을 알려주는 전자시계를 부착한다.

투수든 타자든 인터벌이 긴 선수들은 자신의 루틴을 모두 수정해야하는 것. 초기 단계였던 시범경기에서는 투수든 타자든 백스톱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초시계를 의식해 빨리 준비하느라 자신의 투구나 타격에 헤매는 모습이 많이 나왔다.

ⓒAFPBBNews = News1

하지만 원래 투구가 간결했던 뉴욕 양키스 완디 페랄타는 타격 루틴이 거의 없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투쿠피타 마르카노를 만나 18초 만에 3구 삼진을 기록했다. 공을 던지고 포수가 다시 공을 주면 지체없이 다시 공을 던지는데 타자 역시 군말없이 곧바로 배트박스에서 타격했기에 나온 '3구 삼진 18초'였다.

이 영상은 크게 화제가 됐고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속도감 있는 야구에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2021년 9월16일 메이저리그 정규경기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 아리하라 코헤이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타자 채스 맥코믹의 대결 때 고작 1구를 던지는데 1분 30초나 걸렸던 사례와 비교해보면 천지개벽 차이다. 공 하나 던지는데 포수와 사인을 수없이 주고받다 고개를 내저으며 타임을 걸고, 송진가루를 묻혔다가 다시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고 또 타임을 거는 모습은 1사 만루 긴박한 상황을 잊게 만드는 지루함이었다.

국내에서는 박한이가 타격을 할 때 중간 중간 채널을 돌려 드라마를 봐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야구에서 인터벌은 야구 경기 자체를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손꼽혔다.

피치 클록이 본격화되면 이런 지루함은 사라지고 속도감 있는 야구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3시범경기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35분으로 지난해(3시간1분)보다 26분이나 단축됐다. 이정도면 획기적인 변화다. 속도감 있는 야구는 그동안 우리가 알던 야구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AFPBBNews = News1

▶넒어진 베이스 : 사장되던 도루의 가치, 발 빠른 선수의 수요↑

야구에서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라면 역시 '도루'다. 1초 아니, 0.X초를 다투는 긴박한 다툼으로 아웃이냐 도루 성공이냐가 결정되는 건 짜릿할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베이스 크기를 기존 15제곱인치에서 18제곱인치로 키웠다. 한눈에 봐도 베이스차가 상당한데 이유는 부상방지다. 수비수와 주자가 함께 베이스를 밟을 때 베이스가 작으면 서로 발이 부딪치거나 혹은 베이스 끝 부분을 밟아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

부상 방지도 그렇지만 베이스가 커지면서 도루의 가치도 덩달아 상승할 수밖에 없다. 고작 몇센치미터 차이로 도루 성공 여부가 결정 나는데 베이스가 커졌으니 자연스레 도루 성공 확률도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 게다가 피치 클록의 도입으로 투수들이 타자와 상대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주자를 견제하는 건 뒷전이 됐다. 또한 투수의 주자 견제도 3번째에 아웃을 잡지 못하면 자동 진루로 사실상 2번으로 제한하는 룰까지 함께 도입됐다. 그동안 사장되던 도루 부양책이 무려 3가지(베이스 크기+피츠 클록+견제 제한)나 생긴 셈이다.

ⓒ연합뉴스

예전에는 도루 실패가 많아도 성공 횟수만 많으면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세이버매트릭스(야구세부통계)의 발달로 성공률 최소 75%가 되지 않으면 도루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게 보편화 돼 도루를 하는 선수의 숫자가 감소했다. 게다가 출루율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발 느리고 뚱뚱한 1번 타자'들이 많아져 도루를 보는 재미 역시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도루 부양책이 3가지나 등장했다는 건 다시 도루의 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번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선 게임당 1.7개의 도루로 기존 1.1에서 급상승했고 도루 성공률도 기존 71%에서 77%로 크게 올랐다. 이제 발 빠른 선수들의 가치 역시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스한 위클리 : 스포츠한국은 매주 주말 '스한 위클리'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스포츠 관련 주요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기사는 종합시사주간지 주간한국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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