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초월한 유령의 사랑 이야기…'오페라의 유령' 개막
'유령' 조승우, 7년 만에 새 역할…고전에 생명력 더한 명품 연기
(부산=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거울 위 크리스틴(손지수 분)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 위에 알 수 없는 흰 가면이 겹친다. 그 정체를 미처 알기도 전에 숨겨진 문이 열리고, 유령의 뒤를 따라 홀린듯 그 안으로 들어가는 크리스틴.
크리스틴과 함께 유령의 검은 손에 이끌려 들어간 관객의 눈앞에는 차갑고 축축한 지하실의 공기마저 구현한 듯한 실감 나는 무대가 펼쳐진다.
35년간 전 세계를 사로잡은 유령의 사랑 이야기가 13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달 30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성사된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이다.
그간 해외 배우의 내한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 배우의 연기와 오리지널 무대 디자인 그대로 선보인다. 정상급 뮤지컬 배우 조승우가 주인공 '유령' 역으로 7년 만에 새로운 배역에 도전해 주목받았다.
처음 관객을 맞이하는 건 망가진 무대 장치가 널브러져 있는 오래된 극장. 먼지 쌓인 천으로 덮인 샹들리에는 오래전 이곳에서 벌어졌던 기묘한 이야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순간 비디오테이프를 뒤로 되감듯 무대는 1800년대 파리의 화려하고 빛나는 오페라 극장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30년 넘게 꾸준히 공연되며 영화, 책 등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주옥같은 음악과 뮤지컬에서만 볼 수 있는 기발한 무대 장치다.
바닥에 널브러진 샹들리에가 관객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 천장에 매달리며 시간을 되돌리는 극의 도입부는 이 작품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화려한 오페라 공연이 펼쳐지다가 순식간에 프리마돈나의 은밀한 대기실로, 다시 유령이 사는 비밀 지하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는 풍성한 무대는 관객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무대 위에서 신출귀몰하던 '유령'이 어느 순간 무대 천장 위에 올라서서 객석을 내려다보고, 관객의 등 뒤에서 유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음향 연출은 실제로 공연장 안에 유령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오싹함을 준다.
특히 이번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은 무대 바닥부터 천장 꼭대기까지, 공연장을 100% 활용해 입체감을 더한다. 유령이 매달린 공중 장식 위에서 등장하고, 객석 2층 높이의 무대 꼭대기에 서서 노래하는 등 무대 스케일이 크다. 1988년 '오페라의 유령' 초연 당시 선보였던 천재적인 무대 디자이너 마리아 비욘슨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했다.
이 무대는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 웨스트엔드 등에서 변함없이 사용되며 시간을 초월한 고전의 가치를 증명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고전의 깊이에 생명력을 더한다.
오랜만에 새로운 배역으로 관객과 만난 조승우는 목소리만으로 들리는 첫 등장부터 카리스마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잔인한 살인마와 열정적인 예술가, 상처 입은 영혼을 오가며 '유령'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 그의 연기는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관객이 빠져들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가면으로 가린 반쪽짜리 얼굴로도 생생하게 전달되는 감정은 그의 존재감을 실감하게 했다. 바닥을 기며 크리스틴에게 다가가거나 악마처럼 긴 망토를 펄럭이는 몸짓에도 생동감이 넘쳤다.
감정 연기에 몰입하다 노래하는 부분에선 일부 목소리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대극장을 가득 채운 성량과 곡 소화력은 세기의 명곡으로 불리는 '오페라의 유령' 음악에 무게감을 더했다.
여기에 50명에 가까운 앙상블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수준 높은 군무와 이질감 없이 한국어 가사로 옮겨진 '생각해줘요'(싱크 오브 미), '오페라의 유령'(팬텀 오브 디 오페라), '돌아갈 수 없는 길'(포인트 오브 노 리턴) 등 주옥같은 명곡은 13년의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한다.
부산 공연은 6월 18일까지. 7월에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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