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현대미술, 종이로 ‘천년 터울’ 친구가 됐다
‘여지동락-종이와 함께하는 즐거움’ 특별전
장판지 병풍, 신문지 작업 등
종이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
창호지 부산물로 표주박 빚은
물성 이해한 조선시대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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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문화재 전시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만나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다. ‘유물과 현대미술의 만남’이라는 트렌드는 의외로 수명이 길어,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에서 약방에 감초 같은 요소가 되었다. 전통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해석한 작품들도 많지만, 오히려 연관성이 얼른 드러나지 않는 조합들이 반가울 때도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설명도 읽어보며 내 마음대로 ‘케미’를 찾아내는 재미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시대의 다른 표현들에서 비슷한 마음과 이야기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체험은 관람객에게는 짧지만 생생한 예술사 공부가 된다. 한번이라도 그 즐거움을 느껴본 사람의 눈길은 더 성큼성큼 더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으로 다가갈 용기를 얻기 마련이다. ‘이걸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순간 생각의 테두리가 열리는 개운함도 문화재 전시를 보고 얻을 수 있는 기쁨이다.
금물로 베껴쓴 찬란한 불경
서울 강남구에 있는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은 유물과 현대미술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를 꾸준히 시도해온 곳 중 하나이다. 특별전 ‘여지동락’(7월29일까지)은 종이로 만든 문화재와 현대미술 작품을 한층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한옥 바닥재인 장판지에 그림을 그려 병풍으로 만든 지니 서의 작품이 도입부에 놓인 것은 일종의 예고편이다. 경전과 책에 쓰인 얇고 평평한 종이부터 찢고 꼬고 물에 불려 튼튼하게 만든 생활용품까지, 종이의 쓰임과 변모가 층층을 채운 유물들에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곳은 조선시대를 다룬 2부이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서책들에서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구석에는 신문지를 볼펜 선으로 완전히 덮어버린 최병소의 작품(무제 0160911)이 배치되어 있다. 통제당해 공허한 글자로 남은 신문이 검은 파도처럼 엎어진 채, 인쇄술 발전으로 사상이 꽃피던 시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하다.
시대적 맥락만이 아니라, 시각적인 형태로 묶인 작품들도 있다. 조족등(照足燈)은 손전등이 없던 시대에 이동식 조명으로 쓰인 초롱이다. 불빛이 앞으로만 비치도록, 뼈대에 바른 종이에는 까맣게 먹을 칠했다. 마치 종이가 아니라 거무스름한 무쇠처럼 보이는 표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진열장 너머로 골 진 형태와 질감이 서로 꼭 닮은 박서보의 <묘법 No. 971121>이 보인다.
보물 옆에 보물이 있는 전시 1부는 불경을 베껴 쓴 ‘사경’(寫經)과 목판 인쇄본을 소개한다. 전시에 나온 지정문화재 대부분이 집중된 곳이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세 시대를 아우르므로, 한 전시실에 놓인 유물들의 나이 터울은 무려 1천살이 넘는 셈이다. 그러나 유리 너머로 바라보기로는 9세기에 만들어진 종이도 불과 몇년 전에 만든 것처럼 견고해 보인다. 고려시대에 도토리로 물을 들여 불그스름한 갈색을 낸 도톰한 상지(橡紙)로 만든 사경 표지는 막 가공을 마친 가죽처럼 윤기가 흐른다.
특히 보는 순간 ‘이게 보통 종이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박력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고려시대 사경들이다. 보물 <감지 금니 대방광불 화엄경 보현행원품>은 고려 충숙왕 때인 1334년에 안새한이라는 사람이 높은 관직에 오른 은혜를 기리고자 제작했다.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에 금니(금물)로 그림과 글씨를 썼는데, 경전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그림인 변상도(變相圖)의 금빛 광채가 압권이다. 가는 붓에 금가루 섞은 아교풀을 묻혀, 한줄 한줄 가느다란 선을 쌓아올린 손길이 이 종이를 수백수천번 스쳤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다시 그 위로 수백수천의 눈길이 겹쳐진다. 글자로도 그림으로도 남지 않았지만 종이 모서리에, 접힌 자국과 얼룩마다 새겨진 그 시간을 각자의 언어로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좋을 유물이다.
조선의 일탈, 호피무늬 함
전시 2부와 3부에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한지공예품들을 소개한다. 문구류부터 양산과 부채 같은 소품, 수납용품부터 가구에 이르기까지 종이로 만든 물건들이 일상생활에서 쓰였다. 물건 겉에 종이를 바르는 지장(紙裝), 끈처럼 꼰 종이를 엮어 만드는 지승(紙繩), 종이를 반죽으로 만들어 모양을 내는 지호(紙糊)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지장 호피문 함’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테리어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꿔놓는 물건이다. 달항아리나 사방탁자처럼 얌전하고 단아한 기물들로 채운 방만 존재했던 게 아니다. 표범 가죽의 털결까지 살려 온 면을 꽉 채운 함은 투박하면서도 화려해, 누가 무엇을 넣고 썼을까 하는 호기심이 피어난다.
인상적인 것은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종이 생산을 장려하고 제지기술이 발달해 종이 사용이 크게 늘었다. 그래도 모든 물자가 귀하게 쓰이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못 쓰게 된 창호지나 장판지, 서책이나 한지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까지 모아, 손품을 보태 근사한 물건으로 만들어냈다.
전시 말미에는 지호 기법으로 만든 종이 표주박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잘게 찢은 뒤 물에 불려 풀어진 종이에 풀을 섞고 이긴 반죽을 모양 틀에 붙여 말린 것이다. 못 쓰게 된 종이를 완전히 분해해 섬유질 단계까지 풀어낸 다음 완전히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바탕에서 드러나는 물성에 대한 이해에 놀라게 된다. 그 결과물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것은 역시 쓰임이 다한 것을 위해서도 연구하고 공을 들이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전시를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은 캔버스에 닥 반죽을 펼쳐 그대로 굳힌 정창섭의 <묵고> 연작이다. 울퉁불퉁하지만 부드럽게도 보이는 표면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가의 손이 30년 전 누르고 매만진 흔적이다. 온몸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종이의 성질에 애틋해하다, 문득 이 전시에서 지나친 모든 종이들이 다들 저런 반죽을 거쳐 얇은 종이 한 장으로 만들어진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같이 거쳐 오지 않았어도 타인이 겪은 시간을 공감할 때 우리는 친구가 된다. 이곳에서 유물과 현대미술은 나이 차이는 많아도 대화는 잘 통하는 친구이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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