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지방 소멸’ 막을 마지막 골든타임 [김택환 쓴소리 곧은소리]
국가권력기관·대기업·방송사·명문대가 전국에 분포된 獨·美에서 시사점 찾아야
(시사저널=김택환 경기대 교수)
"1960년대 다인면 전체 초등학교 학생 수가 약 3000명이었으나, 현재 학생 수가 22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그중에서 36%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최근 필자가 모교인 경북 의성 다인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김익환 교장선생이 말한 내용이다. 국가 쇠락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지방 소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압축 현대화 과정에서 삶의 질 '박탈'이나 '부조화'로 생긴 초저출산에 있다. 지난해 우리 출산율이 0.78명으로 해마다 세계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다. 그나마 전남(1.15명)과 경북(1.0명) 출산율은 서울(0.64명)보다 2배 정도 높다.
서울 강남은 0.4명에 불과하다. 대도시 부산·대구·광주에서 서울·경기로 떠나는 인구가 해마다 10만 명을 넘는다. 서울·경기 인구를 지방 청년들이 메우고 있는 기현상이다.
청년들이 서울·경기로 가는 이유는 더 많은 권력과 일자리, 좋은 교육환경, 즐길 수 있는 문화 여건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자원이 과도하게 서울·경기 등에 집중되고 투자돼온 탓이다. 게다가 세계 최고자살률로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청년 자살률이 높은 것이 아프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최고 시절이자, 동시에 초저출산·최고자살률을 맞닥뜨린 최악의 시대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이철우 회장(경북지사)은 "대한민국은 수도병을 치유해야 희망이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과 독일엔 지방 소멸이란 단어 자체가 없어
지방 소멸이 왜 큰 문제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다원주의, 즉 다양한 지역생태계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획일화·집중화로는 독재와 부패가 만연한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경험했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인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과거 중국은 중앙집중으로 망했고, 유럽은 분권과 경쟁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했다"고 진단했다.
미국·독일 등 선진국은 분권과 공개의 연방국가다. 지방 소멸과 관련해 선진국 중 우리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이다. 특히 독일은 우리와 인구(8000만 명)에서 큰 차이가 안 나는 데다 분단에서 평화통일, 분권과 사회복지, 유럽 중심국가·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로 인구가 반등하고 있다. 독일은 '어디서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구·출산율(1.57명)이 상승한다. 독일 헌법에 '연방국가'라고 규정해 온전한 자치와 분권이 실현되는 나라다. 지방정부가 입법권·인사권·조세권·교육권·경찰자치권 등을 갖고 있다. 각기 지방 차원의 고유한 자치 발전 모델로 경쟁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강한 독일의 원동력이다.
독일의 경우 전국 균형발전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 주요 권력기관들의 전국 분산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카를스루에에, 국방부와 환경부는 과거 서독의 수도 본에, 중앙은행은 프랑크푸르트에 각각 있다. 또한 글로벌 대기업 본사도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최대 전자회사 지멘스와 BMW는 뮌헨에, 소재 부품의 보쉬와 벤츠의 본사는 슈투트가르트에, 제약회사 바이엘은 레버쿠젠에 있다. 경쟁력을 자랑하는 1400개 히든챔피언 역시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다.
미국 역시 에디슨이 창업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뉴욕주 스키넥터디와 코네티컷주 페어필드 2곳에, 아마존은 워싱턴주 시애틀에, 애플은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전기차 테슬라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구글은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지역 대학 출신들을 우대해 채용하고 있으니 굳이 수도권으로 갈 필요가 없고, 한국처럼 일자리와 주택 문제에 시달릴 이유도 없다.
정언(政言)유착이 없는 미국과 독일에서는 방송 본사 역시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미국의 민영방송 CNN은 조지아주 애틀랜타, FOX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상파 ABC는 캘리포니아주 버뱅크, CBS는 뉴욕시 센트럴파크 등에 본사를 두고 있다. 또한 독일 1공영 ARD는 함부르크에, 2공영 ZDF는 마인츠에, 민영방송 RTL은 쾰른에, SAT는 바이에른주 운터푀링에 각각 본사를 두고 있다. 우리와 비교하면 KBS는 안동에, MBC는 목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셈이다.
대학 역시 미국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는 보스턴에,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는 런던이 아닌 지역 도시에, 독일의 유명 대학들도 평준화로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과 독일은 온전한 자치 권한을 가진 지방정부에다 국가권력기관, 대기업 본사, 전국방송 본사, 유명 대학들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단일민족 내려놓고 '이민국가'로 전환 꾀해야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글로벌 트렌드와 발전 과정을 파악하는 통시적 방법인 선진국에서 시사점을 얻는 것이다. 먼저 '원 포인트 개헌'으로 한국판 상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를 독일 참사원(Bundesrat)처럼 헌법기관화하는 것이다. 국회보다 상위에서 지역 균형발전을 챙길 수 있다.
둘째, 국가권력기관, 국립거대대학, 공영방송 본사의 지역 이전이다. 대통령실·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서울대학교·육사·KBS·MBC·EBS 등의 이전이다. 대한민국 새판 짜기다.
셋째, 대기업 본사의 지역 이전이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정경유착 없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에 본사를 두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미국·독일 선진국 기업 경영자들의 철학이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LG 등 4대 대기업 본사가 지역으로 회귀할 것을 제안한다. 그곳에 본사 타운을 만들어 수백 년 이어가는 지속 성장 가능 기업과 더불어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명소를 만드는 전략이다.
넷째, 조세제도와 생활인구 정책 변화다. 독일은 헌법에 '재정균형 원칙'을 규정해 잘사는 지역의 세수를 못사는 지역에 지원하도록 의무화했다. 낙후 지역도 전국 평균 90% 세수를 확보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독일은 주민등록지 2곳을 인정하고 납세자가 원하는 곳에 지방세를 납부할 수 있다. 균형발전을 위해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단일민족이라는 구호는 내려놓고 '이민국가'로의 전환이다. '평천하(平天下)'를 이룬 로마·영국·미국 모두 이민국가다. 독일은 최근 7년 동안 대구광역시 인구 규모인 250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 이민국가로 변신했다.
망국인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은 나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국가인구회의'를 경북도청 화백당이나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하는 등 여야 협치로 마지막 지방 소멸 골든타임 기회를 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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