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범람에 임시마약류도 급증…'임시' 붙어도 마약, 예외는 없다 [식약설명서]

김창훈 2023. 4. 1. 1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시마약류 10종 중 6종 '진짜 마약'으로
2종은 2013년 이후 10년간 임시마약류
오남용 시 위해성 마약과 다르지 않아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이 마약 청정지대라는 것은 이미 옛말입니다. 중학생이 SNS로 마약을 구하고 음식 배달처럼 마약이 오가는 세상이 됐습니다. 경찰이 수사 중인 인기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은 대마에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과 케타민, 마약인 코카인까지 4종을 투약한 혐의로 충격을 던졌습니다.

마약류가 범람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정하는 '임시마약류'도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오남용으로 인한 보건상 위해가 우려돼 긴급히 마약류처럼 취급·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물질이 임시마약류입니다. 앞에 '임시'가 붙긴 했지만 이 또한 엄연한 마약입니다.

왜냐하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임시마약류로 지정된 물질 10개 중 6개 이상이 '진짜' 마약류로 전환됐으니까요. 나머지도 계속 임시마약류 상태입니다. 단 하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례가 없습니다. 임시란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와 달리 현실에서는 마약류와 거의 동의어인 셈입니다.


12년간 250종 지정...매년 신종 마약류 20종 넘어

임시마약류 지정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1일 식약처에 따르면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마약류를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마약은 양귀비, 아편, 코카 잎이 원료이거나 이런 것들을 함유하는 혼합물질 및 그와 동일한 화학적 합성품을 뜻합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오남용 시 심각한 위해가 있는 의약품입니다. 대마는 대마초를 원료로 제조한 것이고요. 이 같은 마약류는 모두 마약류관리법 시행령에 명시됩니다.

아직 마약류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임시마약류는 1군과, 2군으로 구분합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거나 마약류와 구조적·효과적으로 유사해 신체·정신적 위해 가능성이 더 높은 게 1군입니다.

임시마약류 제도는 마약류관리법 일부개정으로 2011년 도입됐습니다. 그해 메틸렌디옥시피로발레론(MDPV)이 1호 임시마약류로 지정됐죠. 강한 환각 작용으로 이상행동을 하고 사람을 물어 뜯기도 해 해외에서는 펜타닐보다 앞서 '좀비 마약'으로 불리기도 한 위험한 약물입니다. 미국에서 흥분제로 남용되면서 다수가 사망했고 국제우편을 활용해 국내에 반입하려다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MDPV를 시작으로 2012년 2종이 임시마약류로 지정됐고 2013년에는 해외에서 다수의 사망 사례가 보고된 PMMA를 포함해 임시마약류 지정이 무려 59종으로 늘었습니다. 이후 지난해까지 2021년(8종 지정)을 제외하면 매년 두 자릿수씩 임시마약류가 생겼습니다. 12년간 신규 임시마약류는 250종이나 됩니다. 1년에 20종 넘는 신종 마약이 출현한 셈입니다.


161종 마약류로...향정신성의약품 전환 최다

임시마약류 지정 절차.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시마약류는 식약처장이 임의대로 지정하는 게 아닙니다. 국내외 정보를 수집한 뒤 해당 물질을 분석하고 전문가 자문과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1개월의 지정예고 기간도 있습니다. 다만 북미나 유럽 등에서 오남용으로 사회적 문제가 된 물질은 국내에서도 임시마약류 지정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같은 절차가 있기 때문에 한 번 임시마약류로 지정됐다면 그 자체로 유해성은 충분히 입증됐다고 봐야 합니다.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지정된 임시마약류 250종 가운데 161종이 이미 마약류로 전환된 사실은 이를 방증합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존성 등 유해성 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임시마약류를 마약류로 지정하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례로 MDPV는 임시마약류가 된 이듬해 바로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이후 160종이 줄줄이 '임시'가 떨어지고 '진짜' 마약류가 됐고요. 한데 마약류의 세 종류 중 대마 전환은 하나도 없고 마약으로 바뀐 것은 20여 종입니다. 130여 종이나 되는 나머지는 죄다 마약류 중에서도 향정신의약품으로 전환됐습니다. 환각성과 의존성이 매우 강하고 대량 생산으로 유통도 용이한 신종 마약류 쪽으로 쏠리는 최근 상황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임시'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그간 지정된 250종 중 아직 마약류로 올라가지 않은 89종은 계속 임시마약류로 남아 있습니다. 가장 오래 임시마약류로 분류되고 있는 물질은 2013년 지정된 2,3-DCPP와 알킬 나이트라이트 두 종입니다. 무려 10년 동안 임시마약류에서 버티고 있는 것은 지정기간 3년이 만료되기 전 재지정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재지정 횟수 제한도 없습니다.

식약처가 주기적으로 공고하는 '임시마약류 삭제·변경 목록'을 보면 임시마약류에서 위해성이 없는 물질로 변경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임시마약류 목록에서 삭제되는 경우는 마약류 지정뿐이고요.

결국 임시마약류의 운명은 진짜 마약이 되거나 아니면 계속 임시마약류에 머물거나 두 갈래입니다. 따라서 '임시'는 진짜 마약으로 가는 필연적인 단계로 봐야 합니다. 지정예고일부터 마약류와 동일하게 취급·관리되고, 지정 공고 이후 제조·매매·알선 등을 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강력한 처벌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임시마약류라도 한 번 손대면 인생 끝난다는 말입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