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의 LG마저 걸린 속설의 덫 "상속은 피보다 진하다"

김다린 기자 2023. 4. 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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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재산 분쟁 휘말린 LG
“선대회장 재산 법대로 나누자”
LG “경영권 흔드는 일 용납 못해”
순조롭게 승계 이어온 LG였는데…
일반인끼리도 흔한 분쟁 된 상속
상속 관련 복잡한 지식 숙지해야
LG그룹이 집안 내 유산 분쟁을 벌이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LG그룹은 경영권 장자 승계원칙을 잘 고수해왔습니다. 4대 회장을 맞을 때까지 아무런 잡음이 없었죠. 그런데 최근 LG가문 내부에서 법적 다툼이 일었습니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아내 김영식 여사와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차녀 구연수씨가 재산 분할을 다시 하자면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경영권을 물려받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 너무 많은 지분이 상속됐다는 겁니다.

# LG그룹 측은 "LG의 전통과 경영권을 흔드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발끈했습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자칫 경영권 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쟁점이 됐기 때문입니다.

# 한국 재계에선 재산과 경영권으로 얽힌 이해관계가 혈연의 가족관계를 압도하는 일이 시시때때로 벌어졌습니다. 삼성, 현대, 롯데, 한진 등이 대표적이죠. 지금껏 '인화人和'를 경영이념으로 내세우면서 75년이나 잡음을 없앤 LG도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속설을 피할 순 없었던 모양입니다.

# 문제는 이런 상속 분쟁이 재벌 가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란 점입니다. 자산가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살던 집 한채를 두고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습니다. 더스쿠프가 언젠가 우리 가족이 겪을지 모를 '상속' 이야기를 LG가문 상속 분쟁에 빗대 풀어봤습니다.

지난 3월, LG그룹이 재계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가족들이 상속 재산을 다시 나눠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약간 어리둥절하신가요?

먼저 간단하게 축약한 가계도(그림➊)를 보시죠. 구광모 회장은 원래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데, 큰아버지인 구본무 선대회장의 양자로 입적해 회장직을 물려받았습니다. LG 특유의 장자계승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 슬하에 아들이 없었던 구본무 회장이 구광모 현 회장을 양자로 들였던 겁니다.

이번에 소장을 낸 주체는 구본무 선대회장의 배우자이자 구광모 회장의 양어머니인 김영식 여사와 구광모 회장의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입니다. 쉽게 말해, 구본무 선대회장의 배우자와 직계 딸들이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이들이 낸 소송은 '상속회복청구'입니다. "상속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절차상의 문제를 바로 잡아 달라"는 게 취지였던 겁니다.

LG그룹은 소송 자체가 황망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고인(구본무) 별세 이후 5개월 동안 가족 간의 수차례 협의를 통해 법적 상속 절차를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4년이 넘었으니 제척기간(3년ㆍ법적 권리의 존속기간)도 지나갔다.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한 걸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금까지 이어온 LG 경영권 승계 룰은 4세대를 내려오면서 경영권 관련 재산은 집안을 대표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그 외 가족들은 소정의 비율로 개인 재산을 받아왔다. 이번 상속에서도 LG가家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상속인들이 이 룰에 따라 협의를 거쳐 합의했다."

이쯤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야겠습니다. 당시 상속 과정이 어땠길래 여태껏 별문제가 없었던 일이 갑작스럽게 터진 걸까요? 시계를 2018년으로 돌려보시죠. 그해 5월 20일, 구본무 선대회장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별세한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재산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2조원 규모였습니다. 이중 구본무 선대회장의 보유 LG 주식 11.28%는 구광모 회장 8.76%, 구연경 대표 2.01%, 구연수씨 0.51%로 각각 분할 상속됐습니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는 주식을 상속받지 않았습니다. 김 여사는 이미 상속 전부터 ㈜LG 주식 4.2%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장자 승계'라는 LG가문의 원칙에 따라 구본무 선대회장의 지분을 구광모 회장에게 몰아줬던 것이죠.

LG 측은 이 과정에서 '가족 간 합의'가 있었다고 했지만, 세 모녀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배경은 '유언장 부재'였습니다. 세 모녀 측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언장에 따라 재산을 나눠가진 줄 알았는데, 뒤늦게 유언장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라도 법정 상속 비율대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법정 상속비율을 알아봐야겠군요. 그 비율은 배우자 1.5, 자녀 1명당 1입니다. 이 법정 비율대로 구본무 선대회장의 지분을 다시 분할해보면, 배우자 김 여사는 3.75%를, 구광모 회장을 포함한 나머지 세 자녀는 2.51%씩 물려받습니다.[※참고: 법정 상속비율은 중요한 내용이어서 기사 뒷부분에 후술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지분 같지만, 세 모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LG그룹의 지배구조는 크게 흔들립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율은 15.95%였는데, 법정 비율대로 재산을 다시 나누면 지분율이 9.7%로 쪼그라듭니다.

반면 김 여사의 지분율은 기존 4.2%에서 7.95%로,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씨의 지분율도 각각 3.42%, 2.72%로 높아집니다. 이를 합쳐보면, 세 모녀의 지분율 총합(14.09 %)이 구 회장의 지분율을 넘어서는 결과가 나옵니다. 소송의 향방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이 소송이 이목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재산 다툼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재계에서도 LG그룹만은 예외였기 때문입니다. LG그룹의 창업 정신은 인화人和입니다. 사람을 아끼고 서로 화합하라는 거죠. 그룹 연수원 이름도 'LG인화원'일 만큼 인화는 LG 기업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경영이념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LG그룹은 창업주 구인회 회장으로부터 '구자경→구본무→구광모 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 과정에서 분쟁이 벌어진 적이 없습니다.

다툼의 여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가족관계를 봤을 땐 다툴 만한 일이 차고넘쳤습니다. 구자경 회장의 형제자매는 6남4녀, 구본무 선대회장은 4남2녀였습니다. 승계 과정에서 형제자매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에서 상속을 요구했다면, 잡음 없는 승계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구본무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을 다시 나누자는 소송을 제기했다.[사진=연합뉴스]

물론 여기엔 '장자 승계원칙' 외 또다른 경영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LG가문은 장자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대신 나머지 가족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 분리를 하는 전통을 고수해왔습니다.

실제로 LG의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한 다른 구씨 가문은 LS그룹, 아워홈, 희성그룹, LIG손해보험, LB인베스트먼트, LX그룹 등으로 계열 분리해 독립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가문의 전통을 계승해 LG그룹 후계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길을 터주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이번 소송 때문에 창업 이후 75년간 유지됐던 LG그룹의 인화 정신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LG 소송으로 본 상속 = 그런데 이런 상속을 둘러싼 다툼이 재벌만의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어쩔 땐 돈이 피보다 진하기도 합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 분쟁은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부모 사망 후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 충돌이 발생해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를 제기한 건수는 2021년 기준 2379건에 달합니다. 5년 전인 2016년엔 1223건이었는데, 최근 5년 새 2배가량 늘어났습니다.

상속 분쟁이 늘어난 주된 배경은 고령화입니다. 2020년 사망자가 3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37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고령자가 늘어나니 상속 분쟁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몇년간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상속재산의 가치가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법무법인 한중의 홍순기 상속전문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분쟁 대상 재산의 크고 작음을 떠나 상속 관련 정당한 권리 행사가 더욱 활발해지고 적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분쟁 당사자들이 가족이어서 분쟁 발생 시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 감정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개인이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거나 분쟁이나 다툼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상속법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은 필요할 듯합니다."

그럼 복잡한 상속법의 내용을 LG그룹의 분쟁 사례를 통해 알아볼까요? 소송을 제기한 세 모녀 측은 '법대로 나누자'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법은 과연 누구를 상속 대상으로 삼고 있을까요?

현행 상속법에 따르면, 상속의 1순위는 고인의 자녀 등 직계비속(아들 이하 항렬의 친족)과 배우자입니다. 2순위는 피상속인의 부모 등 직계존속(부모 또는 그와 같은 항렬 이상의 친족)과 배우자, 3순위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순위는 피상속인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입니다.

만약 선순위에 상속이 이뤄지면 나머지 순위의 상속인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선순위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후순위인 상속인에게 순서대로 재산이 넘어갑니다. 법대로 하면 구광모 회장과 세 모녀 모두 1순위 상속인이 되는 겁니다.

그럼 상속 비율을 알아볼까요? 현행법의 원칙은 동일한 순위에 해당하는 공동상속인이 있을 경우, 균등한 비율로 재산을 나누는 겁니다.

다만, 배우자와 직계비속 또는 배우자와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는 배우자에게 50%를 가산합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3명인 경우인 LG 소송에 빗대보면 배우자와 자녀가 1.5대 1대 1대 1의 비율로 재산을 나눠야 합니다. 세모녀 측의 주장처럼 법대로 상속 절차가 이뤄졌다면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가 가장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건 맞습니다.

물론 모든 상속 재산을 법이 정한 비율대로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상속 재산은 상속인 간 협의분할에 의해 나눌 수 있고, 그렇게 나눈 비율도 법적으로 인정됩니다. 상속자가 가족 간 잠재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유언장을 써뒀다면, 그것도 법적 근거가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구본무 선대회장이 유언장만 작성해 놨더라도 LG그룹의 '무분쟁 승계' 역사는 75년보다 더 길게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유언장을 작성할 때도 유념할 점이 많습니다. 일단 우리가 흔하게 쓰는 컴퓨터 프린터로 출력한 문서나 사인은 효력이 없습니다.

민법은 유언장을 크게 다섯가지 방식으로 작성하도록 정해뒀습니다. 유언자가 직접 작성하는 '자필증서' 유언자의 구술을 녹음한 '녹음증서' 공증인이 2인의 증인 참관하에 유언자의 유언을 듣고 대신 필기ㆍ낭독하는 '공정증서' 유언자가 자필로 작성한 증서를 엄봉ㆍ날인하는 '비밀증서' 급박한 사유로 유언자가 앞서의 방식들을 취할 수 없을 때 2인의 증인 중 한명이 유언을 듣고 이를 필기ㆍ낭독하는 '구수증서' 등입니다.

이중 가장 대중적인 유언은 자필증서입니다. 이때도 법적으로 효력을 인정받기 위해선 꼭 필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날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재계에서도 이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2020년 1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자필 유언장이 공개됐을 때입니다. 유언장은 2000년 작성한 것으로 일본 도쿄의 금고에 보관돼 있다가 20년 만에 빛을 봤는데, '신동빈 회장을 롯데그룹 후계자로 삼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 명예회장의 유언장은 법적 효력을 인정받진 못했습니다. '2000년 3월 4일 신격호(시게미쓰 다케오) 서명'은 있었지만 주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유언장 남겨도 문제 = 이처럼 유언장이 모든 상속 분쟁을 해결해주진 못합니다. 상속이 개시되면 복잡한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고인이 자녀에게 생전에 증여한 경우입니다. 어느 상속인에게 얼마나 증여했는지에 따라 각 상속인이 받을 부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고인이 특정 상속인에게 상당한 재산을 미리 나눠줬을 경우, 나머지 상속인은 '유류분遺留分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유류분은 상속재산 가운데 상속을 받은 사람이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반드시 남겨둬야 할 일정 부분을 말합니다.

LG의 경영이념은 서로 아끼고 화합한다는 뜻의 인화다.[사진=연합뉴스]

현행법은 과거 상속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상속인 누구나 최소한의 몫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 놨습니다. 이에 따라 "특정 상속인에겐 단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유언장이 있어도 일정 부분은 그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자녀들에게 넘어오는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절반입니다. 다소 복잡한 듯하지만,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은 이제 흔한 쟁송수단이 됐습니다. 유류분소송센터에 따르면,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은 2020년 1444건이 제기됐습니다. 10년 전인 2010년 452건보다 3배 넘게 늘어난 수치입니다.

물론 상속은 분쟁 없이 진행하는 게 순리일지 모릅니다. 형제들이 많고 동업자까지 있었지만 경영권이 대물림되는 시기마다 잡음 없이 계열분리와 승계를 이뤄냈던 LG그룹이 재계의 모범으로 꼽혔던 건 이 때문일 겁니다.

상속법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상속 분쟁이 무서운 건 가족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인화의 LG가문엔 '큰 멍울'이 남을 듯합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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