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빛 동백꽃 융단에 취해 바닷가 숲속에서 길을 잃었네[전승훈의 아트로드]

글-사진 보길도=전승훈 기자 2023. 4. 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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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부용동 원림

고산 윤선도의 은거지였던 전남 완도군 보길도 세연정의 동백나무 숲속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 늦겨울에 피어난 보길도의 동백꽃은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룬다.


1층엔 동백꽃, 2층엔 벚꽃 터널. 지난 주말(3월 26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도로변에는 나무들이 본격적인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제주 동백꽃은 늦가을부터 피어나기 시작해 한겨울에 절정기를 맞지만, 보길도 선운사 등 남도의 동백꽃은 늦겨울과 초봄에 피어 4월 중순까지 오랫동안 지속된다. 붉은 잎과 노란색 꽃밥 수술을 가진 동백꽃은 한복을 입은 여인처럼 단아한 모습이다. 동백꽃은 땅밑에도 통째로 떨어져 있어 보길도의 길가엔 온통 붉은 융단이 깔렸다. 길을 가는 아주머니는 차마 꽃을 밟지 못하고 조심조심 걸어간다.



● 자연의 무대 연출가 윤선도

전남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8.3km 떨어진 보길도(甫吉島)는 땅끝 해남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노화도 선착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홀딱 반해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꾸미고 늙어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섬이다.



고산은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하던 중 인조가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에 은거하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보길도를 발견하고 터를 잡게 된다.



1637년(인조 15년)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해발 435m)에 오른 고산은 ‘물외가경(物外佳境)’이라 감탄했다고 한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절경이란 뜻이다. 그는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산은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을 짓고, 낙서재와 세연정, 동천석실 등의 건물을 지었다. 이후 두 차례 귀양과 벼슬을 하면서 85세까지 이 섬에서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보길도에서 살면서 이름 붙인 경승대 명칭은 모두 25개소에 이른다.



낙서재에 머물렀던 윤선도는 아침이면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후학을 가르치고, 날씨가 좋으면 수레를 타고 악공을 거느려 세연정이나 동천석실에 가서 자연을 벗 삼아 즐겼다고 한다.

낙서재.


밤에 낙서재에 돌아오면 달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낙서재 앞마당에는 고산이 달을 감상할 때 앉았던 거북 모양의 평평한 바위인 ‘귀암(龜巖)’이 놓여 있다.

낙서재 앞 윤선도가 앉아서 달 감상을 했다는 거묵모양의 바위 ‘귀암’.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등 시조 75수를 지었다. 사대부의 주류 문화였던 한시(漢詩)에 비해 홀대당하고 있는 시조에 우리말의 감성과 서정성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단골 출제된다.



고산은 부용동의 본래 있던 물과 바위 등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최소한의 인위적인 개입만으로 주변 대자연을 모두 품은 장대한 원림을 만들어냈다.

동백꽃 핀 세연정.


그가 꿈꾼 이상향의 건축적 주제는 바로 시조 ‘오우가(五友歌)’에 나오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이라는 다섯 친구들이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그 중 으뜸은 물이다. 조선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세연정’은 바로 ‘물의 정원’이다. 세연(洗然)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 담양 소쇄원에 있는 ‘제월당’ ‘광풍각’이 ‘비가 그친 후 맑게 갠 하늘에 뜬 달과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수양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은 정원이다.



세연지는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만든 인공연못이다. 물을 막는 ‘판석보(板石洑)’는 가뭄 때는 돌다리가 되고, 비가 많이 올 때는 폭포로 변신해 수량을 조절한다. 윤선도의 심미안과 과학적 지식이 돋보이는 장치다.

판석보


세연지에는 7개의 바위가 용틀임하며 놓여 있고, 정자 주변에는 거대한 소나무가 심어졌다. 고산은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연밥을 따기도 하며 물을 즐겼다.



고산 윤선도는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다.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고산은 연못과 정자, 축대와 절벽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자연의 대극장을 만들어냈다. 정자 위에서 관현악 연주에 맞춰 ‘어부사시사’를 부르면 물길 너머 돌로 쌓은 무대인 동대와 서대에서 무희들이 군무를 추었다고 한다.
또한 서쪽 산 중턱에 있는 바위인 옥소대 위에서도 군무를 추었는데, 세연지 연못 위로 춤사위가 비쳤다고 한다.



정자는 자연의 종합예술을 감상하는 최고의 객석이다. 정자는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뤄져 있는데, 사면을 둘러싼 ‘들어열개문’을 모두 올리면 기둥 사이로 액자 속의 명화 같은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조선의 정원건축 원리인 ‘차경(借景)’이다. 정자는 작지만 사방으로 물소리와 바람 소리, 음악과 새소리, 달빛이 흐르며 무한히 넓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보길도는 극심한 봄철 가뭄으로 세연정의 물도 메말라 커다란 바위가 밑동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자연은 위기에서 더욱 강해진다고 했던가. 세연정의 동백꽃은 더욱 붉게 피었다. 얕은 연못 위로 떨어진 붉은 동백꽃 잎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고산이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바위 절벽에 지은 동천석실의 주제는 ‘돌’이다.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한 칸 정자 주변엔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 등 자연석으로 만든 연못과 돌다리 등이 있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었다.

절벽 위에 지어진 동천석실.
드론으로 촬영한 동천석실(위). 약 20m 아래에 있는 침실은 추운 날에는 고산이 불을 때고 잠시 쉬던 곳이라고 한다.


동천이란 하늘로 통하는 곳, 신선이 사는 곳이다. 석실은 책을 보존해둔 곳이니, 하늘 공부방인 셈이다. 고산에게 동천석실인란 서책을 즐기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였다.

절벽 위에 지어진 한 칸짜리 정자인 동천석실.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어 음식을 올려서 먹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 있다. 차바위와 승룡대에서 바라보니 격자봉 아래 연꽃모양이라는 부용동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고산 윤선도가 차를 마시기 위해 바위에 홈을 파놓은 동천석실 앞 차바위. 연꽃 형상의 부용동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낙서재 건너편 ‘곡수당(曲水堂)’에는 개울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다.

곡수당.


곡수당 옆 계곡에는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즐길 수 있는 바위가 있다. 맑은 물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같다고 하여 낭음계(朗吟溪)라고 불렀다. 물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사랑한 윤선도의 풍류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섬 동쪽 끝자락 백도리 해안 절벽에 있는 ‘송시열 글씐 바위’다.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서인 송시열과 맞서다가 수차례 삭탈관직되고 유배를 떠나야 했다.

우암 송시열의 한시가 새겨져 있는 송시열 글씐바위.


윤선도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 후인 1689년. 우암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풍랑으로 보길도에 기착한다. 우암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왕을 그리워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보길도 끝 암벽에 새겨놓았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이 보길도에서 남긴 흔적을 보면서 권력과 풍류,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위에 새겨진 송시열의 한시.


● 공룡알해변과 뾰족산

보길도의 서남쪽 끝에 있는 보옥리 공룡알해변은 한적하게 하룻밤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보길도에서 가장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에는 매끈하고 작은 몽돌이 있는 반면 공룡알해변에 있는 둥글둥글한 차돌은 아기 머리통만큼 커다랗다. 파도가 칠 때마다 ‘촤르르’ 하며 돌 굴러가는 소리가 이채롭다.

공룡알해변.


공룡알해변 옆으로는 ‘뾰족산(보죽산)’이 그야말로 원뿔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보옥민박은 정원이 아름다운 바닷가 민박이다. 1인당 1만 원이면 저녁 식사로 ‘보길도 어촌 백반’을 내준다. 그날 잡힌 물고기로 찌개를 끓이고, 싱싱한 바다 내음이 살아 있는 파래와 톳, 젓갈과 돌김까지 소박하지만 음식 솜씨가 대단한 주인장의 밥상을 마주할 수 있다. 아침에 주는 전복죽에도 보길도 특산품인 전복이 가득 들어 있다.

뾰족산(보죽산).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7시에 뾰족산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키우는 흰둥이 개가 등산로 입구로 달려오더니 앞장서 길을 인도한다.

뾰족산 등산길을 안내한 흰둥이.


뾰족산은 온통 동백나무가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이다. 흰둥이가 인도하는 등산로에는 선홍색 동백꽃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마치 누군가 ‘꽃길만 걷게 해줄게’ 하면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 같다. 아침의 동백나무 숲속에서는 수많은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울어댄다.



뾰족산은 해발 195m에 불과해 30~4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바닷가 산이라 해가 떠오르는 공룡알해변과 보옥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은 일등급이다.



하산길에 흰둥이가 먼저 온 다른 등산객과 함께 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약간 서운한 마음에 올라온 것처럼 동백꽃이 떨어진 길을 따라 하산했다. 그런데 아뿔싸. 동백꽃만 따라갔는데 어느샌가 등산로가 사라졌다.



눈을 들어보니 등산로뿐만 아니라 온 산이 동백꽃 세상이 아닌가. 원시림과 덤불, 바위를 헤치고 겨우 마을로 내려왔다. 야트막한 동네 산이라 꽃에 취해 한 번쯤 길을 잃어도 좋은 봄날의 시간이었다.

글-사진 보길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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