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헌재도 무시하는 적반하장 한동훈 장관
“행정부 내에서 수사권 및 소추권의 구체적인 조정·배분은 헌법 사항이 아닌 (국회의) ‘입법 사항’이다. (…) 헌법상 검사의 영장 신청권 조항에서 ‘헌법상 검사의 수사권’까지 논리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 (…) 이 사건 심판 청구를 모두 각하한다.”(2023년 3월23일 헌법재판소 결정)
지난 3월23일 헌법재판소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6명의 검사가 청구한 ‘검사의 수사권 축소 등에 관한 권한쟁의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했다. 한 장관과 6명의 검사들은 2022년 4월 국회에서 개정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헌법이 보장한 검사의 수사권을 침해한다며 6월 헌법재판소에 국회를 상대로 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또 9월엔 개정된 법률보다 검사의 수사 범위를 더 넓힌 시행령을 발표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일’을 말한다. 이번 권한쟁의 심판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해 그 내용을 검토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헌재, 한 장관에 ‘청구인 자격 없다’
헌재는 청구인 가운데 6명의 검사에 대해서는 “권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며 각하했으나, 한 장관에 대해선 “청구인 적격이 없다”고 각하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 법무 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청구인 자격도 없이 국회를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한마디로 대망신을 당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 장관은 헌재의 결정이 나온 날 “법무부 장관으로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결론에 공감하기 어렵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헌법적인 질문에 대해 실질적인 답을 듣지 못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나아가 한 장관은 2022년 9월 검사의 수사 범위를 확대한 시행령도 재개정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애초 개정 법률의 취지는 검사의 수사 범위를 6개 범죄에서 부패, 경제 등 2개 범죄로 축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장관은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검사의 수사 범위에서 제외된 공직자 범죄(직권남용, 직무유기), 선거 범죄(금권 선거), 마약, 조직, 위증, 무고 등 범죄를 추가했다.
헌재 결정이 나온 뒤 3월2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 등은 “해당 시행령을 애초의 법 개정 취지에 맞게 되돌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그 (법 개정) 취지를 존중해 시행령을 만들었다. (…) 되돌려야 하는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오히려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반박했다.
한 장관, 시행령 “지키겠다” 공언
그러나 이런 한 장관의 발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고 기관인 국회와 헌법의 최고 판단 기관인 헌재를 모두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불렀다. 헌재의 결정에서 나왔듯 법무부의 외청인 검찰청이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은 국회에서 법률로 정해준 것이다. 따라서 한 장관과 검사들이 국회를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일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장유식 사법센터 소장은 “이번 심판 청구는 행정부의 한 장관이 국회의 입법권에 도전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인 삼권분립을 훼손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시행령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헌정 질서는 국회가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그 법에 따라 집행하는 것이다. 또 헌법 아래 법률, 법률 아래 시행령이 있다. 하위법이 상위법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한 장관은 이런 점들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위법의 취지와 내용에서 벗어난 시행령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온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법무부에서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는 “헌재에서 상위 법률이 유효하다고 밝혔고, 입법자들(국회의원)이 시행령이 상위 법률의 취지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무부가 시행령을 애초대로 축소해야 하는데, 한 장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둘째 방법은 다시 국회에서 이 법률의 해당 조항을 개정해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부패, 경제 범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이렇게 법률을 개정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한상희 공동대표는 “애초 검찰청법을 개정할 때 빌미를 줬다. 법을 개정해 부패, 경제 범죄의 범위를 명확히 제한하고, 논란 많은 ‘등’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회법 제98조2에 따라 국회가 행정부에 시행령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는 대통령령, 총리령의 처리 의견을 의장에게 보고할 수 있다. 그러면 의장은 이를 본회의에서 처리한 뒤 정부에 보내고, 정부는 처리 결과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 밖에 이 시행령에서 추가된 범죄 혐의로 수사받는 피의자나 재판받는 피고인이 법률을 위반한 이 시행령에 대해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거나 대법원에 무효 확인을 청구할 수 있다.
시행령 개정 가능할까
한 장관에 대한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김승원 민주당 의원(법사위)은 “한 장관이 헌재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직무와 관련해 헌재의 결정 취지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계속한다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승 교수도 “한 장관은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고 그 법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번 시행령 개정은 상위법과 사회적 합의의 위반이라는 점에서 중대하고,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이번 헌재의 결정을 계기로 3차 검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20년 1차 검찰개혁은 검사의 수사 범위를 모든 범죄에서 6개 범죄로, 2022년 2차 검찰개혁은 6개 범죄에서 2개 범죄로 축소했다. 이와 함께 2022년 4월 여야는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3차 검찰개혁을 2023년 말까지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합의 내용을 보면, △검사의 직접 수사권 폐지 △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중수청과 다른 수사기관의 권한 조정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흘 만에 국민의힘이 합의를 파기했고, 사개특위는 2022년 8월30일 첫 회의 뒤 열리지 않고 있다.
정성호 사개특위 위원장(민주당 의원)은 “국힘 의원들이 헌재 결정이 나오는 걸 보고 논의하자고 했다. 그래서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이번주 초부터 사개특위 회의 날짜를 국힘과 협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힘의 사개특위 위원인 유상범 의원은 “헌재의 결정은 개정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사개특위 활동과는 연관성이 없다. 사개특위 활동에 대해선 여당 위원들이 먼저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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