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범 사면 시도' 정몽규 회장, 원고만 읽고 런…질문도 할 수 없었다

이형주 기자 2023. 4. 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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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사진┃뉴시스

[축구회관=STN스포츠] 이형주 기자 = 무력감을 느꼈다.

지난 28일 대한민국vs우루과이와의 경기가 열리기 2시간 전 기자를 포함한 대한축구협회(KFA) 출입 기자들은 하나의 보도자료를 받았다. KFA가 "이사회를 통해 승부조작과 관련됐던 인물들을 포함 100명을 사면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축구에 있어 중심이 될 팬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들 혹은 다른 단체와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 기자들이 경기 취재로 현장에 묶여있는 점을 고려해 날치기로 통과시킨 졸렬함까지 보였다.

당연히 그 결정은 온당성에서 말이 안 됐고, 의사 결정 방식 역시 비민주적이었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30일 KFA는 임시 이사회를 하기로 재심의를 펼치기로 했다. 그리고 31일 그 임시 이사회가 열렸다.

징계 사면을 전면 철회하는 것은 KFA가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였다. KFA는 그나마 최소한만 했고, 다른 것에 있어서는 실망을 안겼다.

이날 임시 이사회는 28일 이사회와 똑같이 밀실 야합으로 진행됐다. 초반 3분과 정몽규(61) 회장의 모두 발언만 공개가 됐을 뿐. 모두 비공개였다. 팬들을 대표해 간 기자들은 어떤 말이 나오고, 어떻게 회의가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다.

임시 이사회 종료 이후에도 KFA의 문제 대처는 심각했다. KFA는 "해당 사면을 전면 철회하기로 했다"라고 짧게 밝힌 뒤 "말씀드린대로 정몽규 회장님의 입장문 발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따로 질의는 없다"라고 밝혔다.

이후 정몽규 회장이 준비해온 원고만 읽었다. 사실 녹음테이프를 켰어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팬들을 대표해 온 기자들은 그 말을 그저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왜 리그를 망친 48명의 승부조작범들을 사면하려 했나. 승부조작범들 외에 사면하려한 52명 다른 인원들은 어떤 혐의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유로 사면을 하려 했나. 사면 과정에서 팬들과 언론들, 관련 단체를 배제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을 지는 이는 누구인가. 팬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할 수 없게 입을 막아버리고, 드라마를 찍듯 입장문 발표 후 컷이 나자 홀연히 떠난 정몽규 회장이었다. 팬들의 마음을 난도질한 것도 모자라, 사태 수습도 하지 못했다. 무의미한 임시 이사회고 입장문 발표였다.

재심의를 위해 모여있는 대한축구협회 이사진들. 사진┃이형주 기자(축구회관)

◇정몽규 회장 입장문

승부조작이 스포츠의 근본 정신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라는 점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2011년 발생한 K리그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위법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가 없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제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재직하던 당시, 가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통해 다시는 승부조작이 우리 그라운드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지른 행동이 너무나 잘못된 것이었지만, 그것 또한 대한축구협회를 비롯한 우리 축구계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2년여 전부터 "10년 이상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충분히 반성을 했고, 죄값을 어느 정도는 치렀으니 이제는 관용을 베푸는 게 어떻겠느냐"는 일선 축구인들의 건의를 계속 받았습니다.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해당 선수들만 평생 징계 상태에 묶여 있도록 하기보다는 이제는 예방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계몽과 교육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중징계를 통해 축구 종사자 모두에게 울린 경종의 효과도 상당히 거두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카타르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가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에 승부조작 가담자를 비롯한 징계 대상자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과오의 굴레에서 벗어나 , 다시 한 번 한국 축구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한국 축구의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소임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사려 깊지 못하였습니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축구인과 팬들이 받았던 그 엄청난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한층 엄격해진 도덕 기준과 함께, 공명정대한 그라운드를 바라는 팬들의 높아진 눈높이도 감안하지 못했습니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와 사전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이번 사면 결정 과정에서 저의 미흡했던 점에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와 대한축구협회에 가해진 질타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조직으로 다시 서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축구팬, 국민 여러분에게 이번 일로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머리숙여 사과 드립니다.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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