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엔 튜닝] 사십대 북에디터의 기타 도전기(MD칼럼)

2023. 4. 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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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나는 책을 좋아한다. 오죽하면 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내 직업을 들으면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은 사람이냐에 따라 반응이 극과 극이다. 전자의 경우는 극소수다. “와우, 멋져요! 정말 재미있을 거 같아요." 후자의 경우는 대개 말보다는 표정이 앞선다. “아……!”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문제는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이 잘될 땐 일도 생활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일이 안 될 땐 일상에서도 폐인처럼 지낼 때가 많다.

그런 생활을 계속 이어오던 마흔하고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밤늦게까지 홀로 사무실에 남아 일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대로 나는 일만 하다 죽는 것인가… 어째 나는 일 말고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갑자기 취미 하나 제대로 없는 내가 서글퍼졌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북에디터들은 일할 땐 책을 만들고 쉴 땐 책을 읽었다. 흔히 말하는 ‘취미는 독서.’ 문제는 일이 질려서 책 자체가 꼴 보기 싫을 때였다. 그럴 땐 멍하니 TV나 유튜브 등을 하릴없이 기웃댔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이런 날은 길어졌고, 이런 날이 길어질수록 자괴감에 빠졌다.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고 이미 많은 책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책도 꼴 보기 싫고, 무료한 삶도 싫어서 그간 내가 취미 ‘후보'로 도전해본 것들을 열거하자면 요가, 수영, 피트니스 정도가 있다. 주로 앉아 있는 직업이다 보니 몸 쓰는 일에 도전했는데, 역시나 내게는 잘 맞지 않았다. 나란 사람은 학교 다닐 때도 가장 못하는 과목이 체육이었으니… 아무튼 그 후로도 외롭고 무료한 독거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취미를 찾기 위한 나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모니터 앞에서 이것저것 간접 체험하는 데 그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나는 마침 홍대 인근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홍대 인근에서는 기타를 메고 다니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시 우리 팀엔 일 년째 매주 기타를 메고 출근했다 레슨으로 직행하는 선배가 있었으며, 마침 그때 기타와 친한 저자의 책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다음 나의 도전 취미는 너다. 기타!

북에디터 종특 하나, 추진력. 일단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때로는 많이) 걸릴지언정 ‘하겠다' 하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바로 저자분께 연락. “제가 기타를 배우고 싶은데 말이죠. 학원이 좋을까요? 개인 레슨이 좋을까요?” 톡 전송 버튼을 누르며 벌써부터 기타를 멋드러지게 연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당연히 개인 레슨이 좋죠. 제가 선생님 좀 알아봐드릴까요?” 이십여 분 후 알게 된 선생님 이름을 듣고 나는 ‘허걱’했다. “아니… 저 그게… 그분이 괜찮으실까요?”

그렇게 나는 출판계식으로 말하자면 ‘유시민 선생에게 논술을 배우는’ 격이 된 것이다.

40여 년을 책상물림으로 살아왔다. 연애도 책으로 배우는 북에디터다. 무엇이든 궁금하면 책부터 사고 보는 내가 이번엔 기타 관련 책 한 권도 사 보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너무 기타의 기역 자도 모르면서 너무 겁 없이 덤비는 건 아닐까, 나.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진짜 바보 멍청이였구나. 나는 나 자신도 모르고 세상도 몰랐구나. 어라, 근데 나 같은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대개 어제와 같은 오늘, 어제 비슷한 나로 살고 있지 않은가.

기타 레슨을 가면 항상 시작 전에 튜닝을 한다. 튜닝기에 맞춰 기타 줄을 미세하게 조이고 풀어 음을 맞춘다. 나는 지금 기타를 배우며 내 삶의 여기저기를 조이고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마흔이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시작은 전반전을 잘 마무리하고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잘 복기하는 것일 테다. 기타는 내게 새로운 도전 취미 그 이상이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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