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물과 맛있는 물… 물과 술 이야기 3[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노성열 기자 2023. 4.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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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탄생 인류 역사에서 술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신전이다. 신비로운 액체를 신에게 바치는 귀한 제물로 여겼을 것이다. 이어 귀족과 서민으로 전파됐다. 게티이미지

맛있는 물, 술의 발명과 건강하게 마시는 적정 음주법에 대해 지난번에 이야기를 나눠 보았죠? 오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지구 각지에서 탄생한 여러 가지 술에 얽힌 사연을 주종(酒種)별로 알아보려 합니다. 술은 인류가 만든 최초의 과학 발명품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수메르가 고대에 처음 나타났지요. 지금의 이라크 남부, 그러니까 중동 또는 근동(近東)으로 분류되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2개의 강이 만나는 삼각주의 비옥한 땅입니다. 수메르인은 종교 문화의 대표로 닌카시 여신을 섬겼는데 그녀는 양조의 여신, 즉 술을 관장하는 신이었습니다. 술의 역사는 그러니까 인류 문명의 탄생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수메르 백성들은 아마도 풍족한 농산물이 수확된 다음에는 술을 곁들여 한바탕 축하의 자리, 축제를 벌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역사적 탄생 배경에서 짐작되듯, 술은 애당초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바치는 귀한 물건으로 처음 나타났을 겁니다. 술이란 신비한 액체가 인간의 정신을 이성에서 영성으로 이끄는 성격이 있으니까요. 자, 상상해 봅시다. 꿀과 과일이 자연적으로 발효된 숲 속의 천연 술을 맛본 초기 개척자(early adaptor)들이 여러 차례 실패 끝에 드디어 인공 술을 만드는 양조법(釀造法)을 발명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이 신비로운 음료를 신관들이 먼저 신에게 봉양한 거죠. 다음에는 왕과 귀족, 부호 등 사회 상류층에서 한해 술을 음미하는 단계로 갑니다. 옛 설화나 소설을 보면 왕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장군에게 귀한 술을 선물로 내려주는 장면이 나오죠. 술은 그만큼 희소성이 높은 보석 같은 존재로 처음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서민에게도 널리 보급되는 술의 대중화 시기로 넘어갑니다.

얼굴합성 뉴트리노 생활과학 컷

우선, 맥주부터 알아봅시다. 보리가 재배되는 모든 지역에서 발명된 맥주는 수메르, 이집트 등 고대 국가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등 여러 곳에서 탄생의 자취를 남겼습니다. 학자에 따라 ‘빵이 먼저냐 맥주가 먼저냐’의 논쟁이 있을 정도로 빵이 맥주가 된 건지, 맥주가 빵으로 바뀐 건지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빵은 제조법이 비교적 술에 비해 단순해 빵의 탄생 과정에서 맥주도 발견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액체 빵’이 맥주의 별명이듯, 우리는 맥주에 빵만큼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정도만 알면 되겠지요. 전 세계적으로 골고루 맥주 유적지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보리 재배 지역이 그만큼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맥주에 6~8% 함유된 알코올 성분이 박테리아 등 몸에 해로운 미생물을 죽이고 보존성을 좋게 해줘 오래전부터 마실 물이 부족한 지역은 청정수 대신 맥주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맥주의 재료는 보리, 홉, 효모, 물의 4가지뿐입니다. 보리를 뜨거운 물에 담가놓으면 양조 가능한 맥아(麥芽)로 바뀝니다. 쉽게 말해 껍질이 달린 겉보리에서 싹이 틉니다. 이를 건조하면 맥아가 되는 겁니다. 보리가 맥아로 변하면서 효소가 생기는데 바로 녹말과 단백질을 당으로 분해하는 당화 분해 효소입니다. 나중에 효모란 일꾼이 이 당을 먹이 삼아 알코올 발효를 하면 우리가 원하는 맥주의 알코올과 이산화탄소 등 부산물이 생성되는 거지요. 맥주의 주재료인 보리에 종종 밀, 옥수수, 귀리 등 다른 곡물을 첨가해 맛의 다양성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맥주 제조의 첫 단계는 보리를 맥아로 싹을 틔워 말린 다음 걸쭉한 즙처럼 맥아즙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다음은 홉(hop)입니다. 우리가 맥주 집을 호프집이라고 부를 때 그 호프 맞습니다. 홉은 대마초와 사촌지간인 삼과(杉科)의 덩굴 식물입니다. 그 암꽃이 열매로 변하고 이를 말려 맥주의 풍미를 살리죠. 홉은 쓴맛과 거품,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방부제 역할도 해줍니다. 어떤 홉을 쓰냐에 따라 수천 가지 맛이 나는 맥주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맥주의 양조 과정은 보리 맥아 분쇄→당화→맥아즙 여과→가열→침전→맥아즙 냉각→발효(효모 첨가)→숙성→여과 및 포장을 거칩니다. 시원한 맛과 거품을 만들기 위해 현대 양조법은 압축 이산화탄소와 질소를 강제 주입하는 게 보통입니다. 몸에는 전혀 해롭지 않으니 안심하시길. 차갑게 마시는 라거 맥주는 보통 섭씨 4도 안팎으로 보관하는데, 호프집처럼 잔을 냉동시켜 얼리는 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맥주에 얼음 결정이 생겨 거품 형성을 방해하고 성에가 냉장고 냄새를 흡수해 퀴퀴해지기 쉽다네요. 하지만 그냥 상온에서 마시는 영국식 에일도 있으니 시원함이 맥주의 모든 것은 아니겠죠. 필스너, 둔켈, 스타우트 등 맥주의 종류를 모두 섭렵하려면 이 좁은 지면이 모자랄 듯 합니다.

맥주 양조과정 현대식 맥주 양조법을 공정별로 설명한 그림. 맥아를 가열해 당화 효소를 내뿜게 한 뒤 효모를 첨가해 6% 안팎의 알코올 농도를 지닌 맥주를 뽑아낸다. 게티이미지

가장 오래된 맥주 유적지를 탐사해보면 큰 항아리와 갈대 등으로 만든 긴 빨대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풍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습니다. 농경 시대에는 가을 수확이 끝나면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고기와 술을 푸짐하게 차려 잔치를 벌이는 게 보통이죠. 이때 만든 원시 맥주는 양조법이 정교하지 않아 각종 부산물과 보리껍질, 거품 등이 위에 둥둥 떠 있습니다. 정밀한 여과법도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갈대의 속 같은 긴 대롱을 항아리에 담가 쭉쭉 빨아먹는 음주법을 택했던 모양입니다. 탐험가들의 사진에는 오지 부족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이 항아리를 삥 둘러앉아 술을 빨아 마시는 장면이 담겨있습니다. 술을 잔에 담아 마시는 음주법은 한참 지나 등장했다고 하네요. 어떻게 마시든 과음 금지!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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