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예산을 보면 정책이 보인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3. 4. 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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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공부해야 할 거리가 점점 늘어난다. 영어, 주식, 부동산 공부만 해도 벅차다. 그런데 요새는 AI, 기후위기, 저출산고령화 대책까지 공부해야 한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정치 읽기'다. 정치인들의 말은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궁예'가 아닌 이상 정치인들의 발언의 숨은 뜻을 파악하기는 정말 어렵다. 정치인이, 정부가 AI 투자를 늘리고 기후위기와 저출산고령화 위기 극복에 힘을 쓴다는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을까. 문제는 투자도 늘리고 세금도 줄이고 재정건전성도 확보한다고 하는 말은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다. 즉, 어느 누구도, 어떤 정부도 3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없다. 국가지출을 늘리고자 한다면, 세금을 늘리든지 또는 부채를 늘려야 한다. 그래서 정부 정책 보도자료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정부 보도자료의 모순을 파악하는 가장 쉬운 일은 예산 금액을 살펴보는 것이다. 정부가 지출을 확대한다는 말이 진실인지 여부를 예산 금액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 2022년 10월25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첫째, 언론들을 보면 올해는 정부가 AI 투자를 강화하는 신성장 전략의 원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2023년도 '인공지능데이터진흥' 프로그램 지출액을 보면 2023년도 1.2조 원보다 무려 34% 감액 한 9천억 원이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예산 숫자다([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챗GPT로 칼럼을 쓰다 떠오른 생각).

둘째, 정부는 기후 위기 대응을 강화한다고 한다. 실제로 정부는 2023년도 친환경 설비투자에 500억원을 증액하고(22년 500억원, 23년 1천억원) 온실가스관리인프라구축 사업에 400억원을 증액했다. 280억원짜리 수소연료전지시스템구매지원 시범사업도 신설했다. 그리고 이런 온실가스 줄이기 위한 노력을 홍보하고 이런 홍보자료는 언론에 보도된다. 그러나 2023년 우리나라 전체 기후위기 관련 지출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놀랍게도 2022년보다 줄었다.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에 368억원 지출을 늘리고 탄소중립기반구축 프로그램에 500억원의 지출을 추가했지만 재생에너지및에너지신산업활성화 프로그램에 4천억원 지출을 감액했다. 결과적으로 기후위기 관련 지출에는 2022년도 4조 2593억원에서 2023년도 3조9536억원으로 약 3천억원(-7.2%) 삭감되었다.

▲ 2022년과 2023년 기후위기 관련 지출 변화

결국, 2023년도 기후위기 대응에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실제 관련 지출은 삭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비효율적 기후위기 대응 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대신 더 효율적인 사업을 증액했을 수도 있다. 다만 관련 지출이 줄었다는 사실 자체는 언론에서 검증되고 보도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실제로 가장 많이 감액된 세부사업 리스트를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금액이 삭감된 세부사업은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사업으로 1917억원 삭감되었으며, 신재생에너지발전차액지원 사업도 1240억원 삭감되었다. 이런 사업이 삭감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삭감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업이 불요불급해서 삭감되었다면 삭감된 금액 이상의 금액을 기후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다른사업에 다른 방식으로 지출되어야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에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 할 수 있다. 전체 지출액을 삭감하고 지출 증가 사업만 일부 선택적으로 홍보 보도자료에 나열하면 실제 정부의 정책을 파악하기 어렵다. 언론은 예산 증감액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 기후위기 대응 관련 세부사업 리스트.

셋째, 정부는 저출산 대응을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위한 여러가지 간접적인 지출을 제외하고 직접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목적의 지출금액은 2022년보다 삭감되었다. 2022년 저출산 관련 지출은 2조8356억원에서 2023년 2조6452억원으로 삭감되었다. 물론 출산율 저하로 아동수당을 지급할 대상 자체가 줄어든 효과일 수 있다. 다만, 저출산 정책에 의지가 있다면 줄어든 아동수당 지출액을 다른 효과적 사업으로 변형해서 지출해야 한다.

▲ 저출산 정책 사업

정부의 정책적 의지는 립서비스로 끝나면 안 된다. 정부의 정책이 립서비스인지 실제 정책적 의지가 있는 지를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안은 지출 금액이다. 정부의 홍보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예산금액을 파악하고 확인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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