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① 왜 '부산'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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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6·25 전쟁 정전협정이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부산은 6·25 전쟁이 벌어진 약 3년 동안 대통령 청사와 정부 기관들이 위치한 임시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는 당시 피란민들이 겪었던 애환과 생활상을 포함해 임시수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피란 유산은 '2030 국제엑스포'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부산이 보여줄 역사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부산의 피란 유산을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1편씩 소개합니다.]
부산은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이뤄지기까지 1천23일 동안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지켰던 수도로서, 대한민국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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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올해는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6·25 전쟁 정전협정이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부산은 6·25 전쟁이 벌어진 약 3년 동안 대통령 청사와 정부 기관들이 위치한 임시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에는 당시 피란민들이 겪었던 애환과 생활상을 포함해 임시수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피란 유산은 '2030 국제엑스포'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부산이 보여줄 역사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부산의 피란 유산을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1편씩 소개합니다.]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전쟁에서 전선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결정은 신속해야 했으며,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은 지휘자의 몫이었다.'
지난 2016년 부산연구원이 발간한 '피란수도 부산 건축·문화자산 연구' 책자에서 '왜 피란 수도를 부산으로 결정하였는가'라는 단락을 보면 이 같은 문장이 나온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남측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승만 정부는 한강교를 폭파하며 후방으로 퇴각을 거듭했다.
북한군 침투 이틀만인 1950년 6월 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을 임시수도로 공표했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대구로 임시수도를 옮겨가야 했다.
'대구도 위험하다'는 우려 속 조병옥 내무장관이 "더 이상 천도는 없다"며 긴급담화문을 내기도 했지만, 33일 만인 1950년 8월 18일 정부는 최후의 보루인 부산으로 다시 피란길에 오르게 된다.
부산은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이뤄지기까지 1천23일 동안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지켰던 수도로서, 대한민국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됐다. 이는 전체 전쟁 기간인 1천129일 중 90.6%를 차지한다.
부산이 임시수도로 선택된 것은 급박한 상황 속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이기도 했지만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미군 측 조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국무부 자료에는 맥아더 장군이 "한국 정부를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요청을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미 사령관 워커 장군도 파죽지세의 공격으로부터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라인 이남으로 수도 이전을 언급하기도 했다.
부산이 전쟁 승리를 위한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용의하다는 점도 임시수도로 선택된 이유 중 하나이다.
전쟁에서는 전방의 화력 못지않게 후방의 군수지원과 병력·물자공급이 중요한 요소인데,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부산항'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한 190만명의 유엔군과 5천500만t 이상의 군수물자 입항과 하역 작업은 대부분 부산항에서 이뤄졌다.
부산에는 또 당시 수영만 비행장 등이 있어 최소한의 공중작전까지 가능했다는 점도 임시수도 선택의 근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임시 중앙정부 청사로 쓰인 경남도청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공간구조가 안정됐고, 상업·문화·교육 시설도 갖춰져 정부 산하 기간·외국 대사관·학교시설·병원시설 등이 밀집하기에 좋은 구조였다"면서 "국토의 최남단으로 심리적·기능적으로 안전성을 취할 수 있는 점과 동시에 더는 물러날 곳 없는 절박한 최후의 선택지로 부산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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