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침몰”이라던데...한국이 그들을 절대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는?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입력 2023. 4. 1. 08:03 수정 2023. 4. 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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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7-2] 서울대 역사학부 박훈 교수

‘일본 침몰’이라는 타이틀의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 2022년 1월호 표지.
“일본 GDP, 올해 독일에 추월당해 세계 4위 전락 가능성”

지난달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산케이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한 기사의 헤드라인 입니다. 20년전 까지만 해도 일본의 명목 GDP는 독일의 2배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장기화된 디플레와 급격한 엔저가 맞물리며 일본과 독일의 명목 GDP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습니다. 닛케이는 세계경제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이 예전같지 않단 소리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집니다. 성장률, 임금수준 등 여러 객관적 지표들은 일본의 쇠퇴를 분명하게 드러내줍니다. 이런 모습은 전후 미국을 압도할만큼 잘나가던 모습과 극명히 대비돼 더 두드러집니다. 1980년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을 앞질렀고 세계 10대 기업의 80%가 일본 기업이었으니까요.

이 같은 변화에 일각에선 이미 일본은 맛이 간 나라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울대 역사학부 박훈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 일본의 국력이 결코 급격하게 쇠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그는 특히 한국은 전세계에서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막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Q.일본이 수십년 침체돼있다. 메이지 유신, 전후 고도성장시기때와 너무 다르다. 이유가 뭘까?
A: 한 민족이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민족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죠. 한국인들만해도 구한말 외국인들이 봤을때 가장 큰 특징이 “느려터졌다. 게으르다” 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아무도 한국인들보고 그런 얘기는 안합니다. 오히려 “너무 빠르다. 일을 너무 많이 한다” 고들 하죠.

그래서 일본의 경우는 일단 미국의 힘인데요. 1930년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일본이 후발주자로서 핸디캡을 벗어나려 도전했을 때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일본을 잠재웠었죠. 이후 일본은 미국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그 리버럴한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전후 70년간 고도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일본이 경제적으로 미국의 통제 범위를 넘어설 만큼 커질 가능성이 생긴 거죠.

그래서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때 환율 조정을 통해 일본 경제를 주저 앉혔죠. 그리고 이후에 또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 반도체가 미국을 능가하는 것도 막아섰죠.

훨씬 살벌하긴 하지만 지금 미중패권 경쟁하고 비슷한 일이 당시 미일간에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때는 일본이 군사적으로 완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양보, 완전히 항복을 했던 거고요. 지금 중국은 일본처럼 그렇게 물러날 생각이 없는 거고요. 그래서 더 심각한 충돌이 되겠죠.

어쨋든 일본은 미국이 강제한 두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버블이 생겼고 그 버블이 터지면서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30년’에 진입하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지금 미국 변수를 강조했지만 이외에도 여러 요인을 들 수 있죠. 대표적인게 인구문제 입니다. 메이지 유신때나 고도 성장때 일본은 전세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구조 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잖아요. 그러니 활력을 잃을 수 밖에 없는거죠.

그리고 한국이 지금 전세계 최저 출산율로 인구구조가 급속도로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데요. 이대로라면 일본과 똑같이 기나긴 침체 터널에 빠질 수 밖에 없을겁니다.

Q.일본 정치에 문제점이 있는건 아닌가?
A: 일본 정치가 참 독특하죠. 신분제가 오래전에 폐지 됐지만 아직도 일본인들은 각자의 사회적 역할이 고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일본인들은 역할 할 때 ‘역’(役)자를 써서 ‘야쿠’(やく) 라고 불러요. 일본은 야쿠의 사회입니다.

그래서 예컨데, 우리집이 초밥을 만들면 나는 초밥을 만들어서 대접하는 일이 사회적 야쿠 에요.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 일을 해야하고 내 자식도 해야 되고 대를 이어 야쿠를 잃어서는 안 돼요.

문제는 정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에요. 정치도 하던 집안이, 하던 사람이 야쿠로서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는거죠. 자민당의 경우 국회의원 거의 절반이 세습이라고 하죠. 이건 사실 민주주의에 매우 위배되는 상황인 거죠. 하지만 또 자유로운 선거와 투표로 이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차상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거든요.

일본은 역사적으로 메이지 유신부터 전후 이르기까지 지배층이 선제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쥐면서 자기개혁을 해나가고 국민들이 따라오는 패턴을 쭉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엘리트들의 자기혁신능력과 이니셔티브를 쥐는 능력이 20세기 말에서 21세기에 걸치면서 급격히 떨어진것 같아요. 일본 대중들은 이걸 대체할 준비나 의사, 능력이 없고요. 저는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것이 최근 2~30년 일본이 겪고 있는 부진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자민 공명 연립여당으로 구성된 1차 기시다 내각 모습.
사실 과거 일본 사회를 이끌었던 건 정치인들이 아닌 관료들이었는데요. 도쿄대 법대를 나온 초 엘리트들이 대장성(大藏省)이나 통산성을 장악하고 국가 계획을 짜고 디자인 해서 이끌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관료의 힘이 약해지면서 권력이 의회로 넘어갔어요. 그러면 의원들이 관료들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세습이 너무 만연하고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는 정치가들이 별로 없어요. 상황이 이러면 한국 같은 경우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했겠죠. 시위가 꼭 좋은건 아니지만, 광장에 나와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그런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내 야쿠가 아니라고 해서 소극적이고 무관심하고, 정치를 야쿠로 해왔던 사람들은 또 무능하고 이렇다 보니 정치 리더십이 생기지 않는 겁니다. 한국도 지금 별로 낫다고 할 처지는 아니겠지만요.

Q. 그럼에도 한국이 왜 일본을 경시해선 안되는건가?
A: 최근 유튜브에서 일본의 몰락,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이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인구가 1억이 넘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도 여전히 높은 나라죠. 기초과학과 첨단 제조기술이 있고 내수 시장도 탄탄하고요.

이런 조건들 때문에 쇠퇴하더라도 급격하게 쇠퇴하지 않는다는 거죠. 계속 어느정도 수준은 유지하면서 동아시아 에서 미들파워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에 걸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일본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건 우리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은 일본을 앞서게 되더라도 세계에서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막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 유럽은 물론 중국도 일본을 경시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왜 한국이 가장 앞장서서 일본을 경시해야 하나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콤플렉스가 있다고 봅니다. 자세히 보면 일본 몰락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일본이 팽창 야욕을 불태워서 한국을 재침략 할거라는 말도 해요. 아니, 몰락해서 힘이 없다더니 그런 일본이 군대를 이끌고 한국에 처들어온다? 앞뒤가 안맞는 말입니다.

이런 일본에 대한 과도한 경시와 과도한 두려움. 저는 이걸 ‘공일증’ 이라고 표현 하는데요. 일본을 지나치게 두려워 하는 것 뿐 아니라 이유 없이 경시하는 것도 공일증의 이면(裏面)이라고 봅니다. 콤플렉스 때문에 어떤 때는 경시하고 싶다가도 어떤 때는 지나치게 일본을 크고 무서운 나라로 보는 거에요.

저는 한국도 이제 일본만한 선진국이 됐고 국제적 중추국가가 됐기 때문에, 좀 더 성숙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일본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시와 과대평가를 왔다갔다 하는 대일 인식으로는 앞으로 일본을 상대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Q. 현재 한국이 갖추고 있는 일본에 없는 장점 한가지를 꼽는다면?
A: 다이나미즘이죠. 일본은 야쿠의 사회이고 특유의 장인정신이 있습니다. 예컨데 기계에 들어가는 볼트 하나를 만들더라도 장인이 되려하고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려는 경향이 있죠. 이런 특징이 자본주의 제조업 시대때는 아주 큰 장점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는 또 다르잖아요. 정보통신,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런 것들이 부상했는데 여기에선 그런 장인정신이 과하면 곤란하거든요. 적당히 만들었으면 빨리 테스트해서 시장 반응 보고 신속하게 결정해야 되는데 일본인들은 80%만 만들고 내놓으라고 하면 화낸다는거 아니에요? 그래서 시간하고 공을 더 들이다 보면 시의성에도 안맞고 가격만 올라가죠. 요즘 소비자들은 시의성에 안맞으면 안쓰잖아요. 그래서 일본 제조업이 쇠퇴한 거고요.

반면에 한국인들은 원래 일본과 같은 백그라운드가 없는것도 있지만 임기응변의 귀재들 아닙니까. 이런 역동성, 코리안 다이나미즘이 일본과 대비되는 우리의 큰 장점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회에선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 우려와 토착왜구몰이’에 대한 의견을 들어봅니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쉽고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영상과 자세한 내용은 매일경제 월가월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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