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용서와 배신의 '딜레마'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3. 4.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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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용서는 좋은 것이라고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 큰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 때 내가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길 바라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서가 독이 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플로리다 주립대 연구자 제임스 맥널티(James McNulty)와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무슨무슨 테스트 결과 자신의 연인이 잘못을 쉽게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라거나 또는 비교적 쉽게 용서하는 편이라는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나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prisoner’s dilemma game)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란 두 명의 죄수가 각각 다른 방에서 취조를 당해서 정보 교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A와 B가 모두 입을 다물면 각각 1년 형만 살면 되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배신하고 그의 잘못을 모두 고발하면 배신한 사람은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배신을 당한 사람은 혼자서 2년 형을 살아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때 상대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 철썩같이 믿는 경우 만약 상대방이 실제로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면 가벼운 형을 받게 되지만, 상대가 먼저 자신을 배신하면 혼자 독박을 쓸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먼저 상대방을 배신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상대방을 믿을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성격적으로 원만성(agreeableness: 관계를 중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따듯, 친절한 특성)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파트너가 용서를 잘 해주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받았을 때 상대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상대를 배신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원만성이 ‘낮은’ 사람의 경우 파트너가 용서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용서를 잘 안 하는 사람이라는 정보를 받았을 때에 비해) 더 파트너를 쉽게 배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이 용서를 받아도 평소 얼마나 원만한 성격이냐에 따라 행동이 정반대로 갈렸다. 원만한 사람들은 파트너가 용서를 잘 해주는 사람일수록 더 신의를 지키는 반면, 원만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 쉽게 신의를 저버렸다. 

약 8개월 간의 추적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연인이 무절제한 음주, 흡연, 다른 사람과 지나치게 친밀한 행동을 하고 거짓말 하기 등 다양한 잘못에 대해 상대를 잘 용서하는 사람이고 본인의 원만성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연인에게 욕을 하거나 상처입을 만한 언행을 하는 횟수가 더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경우 자신이 잘못을 해도 연인이 쉽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원만성이 높은 사람들은 용서를 잘 해주는 연인을 만났을 때 연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언행을 하는 횟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커플의 평소 관계만족도, 자존감 등과 상관 없이 나타났다. 

한편 이렇게 원만성이 낮은, 소위 착한 사람들을 쉽게 등쳐먹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용서는 하지 않는 것이 더 이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을 등쳐먹고 사는 사람들이 결국 가장 많은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닌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사실은 주변 사람들을 쉽게 배신하는 사람들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명성이나 권력을 위해 쉽게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의 경우 초반에는 모임의 리더가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평판이 추락하고 마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결국 언제나 “상호 신뢰와 협력”이 가장 윈윈(win-win)인 결과를 낸다는 점을 기억하자. 혼자 배반 당하는 경우 속은 쓰리겠지만, 내가 대체로 협력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경우 언젠가는 믿음에 보답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항상 배반하는 경우에는 한 명만 이득을 보거나 또는 둘 다 망하는 결과만 나오게 된다. 

만약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무인도에서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등쳐먹기를 생존 전략으로 선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주변 사람들을 상처주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소문이라는 것이 나기 때문에 배신하고 사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무엇이 더 이득인지를 떠나서, 한 번 사는 삶을 주변을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깝고 슬픈 일이기도 하다. 가능하다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따뜻함에 보답하면서 계속해서 그 따뜻함을 누리고 싶다. 

McNulty, J. K., & Russell, V. M. (2016). Forgive and forget, or forgive and regret? Whether forgiveness leads to less or more offending depends on offender agreeablenes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42, 616-63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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