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개딸? 당신도 혹시 '정의감 중독'인가요?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소위 '개딸(개혁의 딸)' 현상, '양아들(양심의 아들)' 현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긴 한데 저는 이게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생각해요." (유튜브 '이재명', 지난해 5월 14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게 정말 바람직하다, 필요하다 하는 일들이 가끔씩은 자해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죠. 최근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집안에 폭탄 던지는 것과 똑같죠." (유튜브 '이재명'-당원존 라이브, 지난 3월 14일)
고작 10개월이 흘렀을 뿐이다. 그런데 이른바 '개딸'과 '양아들'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생긴듯하다.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언뜻 떠오르는 사건 몇 개만 꼽아보자. 홍영표 의원 비난 대자보 제작,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 신상 털이,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지칭하는 속어) 7적' 포스터 제작, 수박 깨기 행사 개최, 반명 트럭 시위 개최, 이원욱 의원 악마화 조작 포스터 유포 등...
이 모든 것이 '개딸'만의 소행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초기 개념으로서 '개딸', 그러니까 이 대표 지지자 가운데 2030 여성으로만 국한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개딸'이란 용어가 2030 여성을 넘어 이 대표 강성 지지층 전체를 아우르는 대명사로 널리 쓰이고 있음을 고려하면, 저 일련의 사건들에서 '개딸'의 역할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범인이 누구든 간에 대중은 이 사건들의 용의자로 이미 '개딸'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의 눈에 비친 '개딸'은 과격하고 누군가를 증오하고 파괴하려 하는 혐오 집단에 가깝다. 처음 품었던 '개혁'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멸칭(蔑稱)이 된 지 오래다.
당 내에선 '개딸'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표는 이미 심리적 결별 상태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최근 자당 의원들과 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자신도 문자 폭탄을 받았다며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사적 의미"라며 개딸을 치켜세우던 것은 어느덧 과거의 일이 되었다. 이제 '개딸'과 '잼파파'의 소꿉놀이는 끝났단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개딸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당원들이 느끼는 분노와 실망감은 매우 정당하고 정의롭다(김용민)", "세비에는 욕 값도 포함돼있다(정청래)"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개딸과 결별해야만 할까. 대중 정당으로서 민주당은 개딸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논쟁을 제대로 치러내기 위해선 다음의 물음들을 피할 수 없다. '개딸'은 정말 정의로운가. '개딸'의 욕은 정당한가.
각자의 '뇌피셜'로 옥신각신하다 보면 끝이 없을 터. 개딸 논쟁에서 나름의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분노 조절 전문가 안도 슌스케가 집필한 <정의감 중독 사회>다.
개딸 논쟁, '빅 퀘스천'을 떠올릴 것
"만약 악당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우리 집이 무너졌다면, 정의를 위한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p29)
안도 슌스케는 이같은 가정 상황을 던짐으로써 정의라는 단어를 순식간에 낯설게 만든다. 그는 "정의를 무기 삼아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를 마구 표출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경계하라며 정의의 이면을 들춘다.
그렇다면 공공의 정의를 내세우는 일들, 가령 '개딸'이 정의를 내세우며 하는 일들은 정의로운 행동으로 볼 수 있을까.
저자는 공공의 정의를 판별해내는 기준으로 '빅 퀘스천'을 제시한다. 앵거 매니지먼트(분노 조절) 분야에서 말하는 빅 퀘스천이란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전한가?"라는 물음이다. 첫째 자신에게, 둘째 주위 사람들에게, 셋째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넷째 건전한가. 이 네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만 모두가 인정할 만한 공공의 정의라고 칭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답하기 가장 쉬운 '건전한가'를 먼저 묻는다. '개딸'의 행동들은 과연 건전한가. 안도 슌스케는 이 질문과 관련해 "상대방이 납득하기 어려운 분노에 휩쓸려 행동하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상대와 대립하며 오히려 자신이 지키려 했던 지역사회에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 기준에 비춰본다면 '개딸'의 행위들은 그리 건전하다고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수박 깨기', '트럭 시위' 등 행위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지역사회(민주당)에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개딸'들의 집단행동은 '건전하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어떤가. 이 물음은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닌 훗날 이어진 결과가 좋았는가를 보라는 뜻이다. '개딸'들이 행한 과격 행위들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개딸'은 그들이 지키려는 대상인 이 대표를 난처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개딸'은 이 기준 또한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라는 항목은 또 어떤가. '개딸'의 과격 행위는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나 다른 당원들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나아가 이 대표 또한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이 기준에서도 탈락이다.
마지막 기준은 '자신에게'다. 가장 답하기 어려운 항목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그 일을 하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는가? 그저 눈 앞에 있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심판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사실은 다른 일 때문에 느낀 분노를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에게 풀려는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개딸' 스스로 곱씹어야 할 질문일 것이다.
네 가지 기준 중 적어도 세 가지 기준에서 '개딸'의 행동이 공공의 정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안도 슌스케는 "공공의 정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분노가 사실은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하다면, 자기 자신을 분노로 태워버리게 된다"고 우려한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정의감에 중독될까? 저자는 이를 세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활력을 느끼고, 둘째 정의의 기준이 같은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셋째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개딸'들은 온라인 카페 '재명이네 마을' 안에서 만난 이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안정을 찾는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면 세상사가 명쾌해진다.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악마, 자신과 친이재명계 의원들을 선으로 여김으로써 '개딸'들은 편안함을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편안함에 안주하다 보니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의감 중독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정의감 중독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개딸'은 정말로 정의롭다기보단 정의감에 중독된 상태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중독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정의감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관여할 일과 관여하지 말 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라. 둘째, 사람과 사건에 대한 허용도를 높여라. 셋째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알아내라.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와 정의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도 불편하게 만든다면 비가 안 온다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분노에 대한 내면의 성찰을 강조한다. 내가 추구하는 정의를 실현하려면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보다 그들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이끄는 것이 효과적이란 이야기다. "정의감을 내세운 공격은 바람, 공감과 배려는 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의감 중독 사회>가 말하는 메시지는 여기까지다. '개딸' 논쟁에 진심인 독자들이라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개딸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이끌 수 있단 말인가. 그 답은 비슷한 시기 출간된 또 다른 책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에서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식과 논리로 맞설수록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개딸'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개딸'의 집중 공격을 받는 비명계 의원들은 갖가지 방법을 써봤다. '이견도 수용해야 민주주의'라며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당을 분열시키는 해당 행위'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 내 '개딸 피해자'는 나날이 늘어만 갔고, 심지어 이 가운데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포함됐다.
급기야 이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대표는 최근 한 달 사이 무려 5번이나 내부 공격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 또한 무소용. '개딸'들은 오히려 보란 듯이 이원욱 의원 반대 집회를 개최하고, 이 의원의 눈과 입꼬리를 올린 조작 포스터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단일대오가 좋으시다면, 윤심 단일대오 깃발이 나부끼는 국민의힘으로 가십시오(박용진)", "개딸들에 대한 분노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온다(이원욱)"
통제 불가능한 '개딸'들을 향한 민주당 의원들의 감정 상태는 우려와 분노를 넘어선 절망, 포기, 그 어디쯤에 있는듯하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개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신간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은 인간의 신념과 확신, 세계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이러한 비관주의를 통째로 뒤흔드는 책이다. 저자는 심리학과 뇌과학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착각의 심리학>을 써낸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맥레이니다.
사실 맥레이니야말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비관주의자였다. 그랬던 그는 9.11 테러 음모론자와 극단적 광신도 집단 '웨스트보로'의 신도 등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한순간에 뒤집는 사례를 지켜보며 자신의 가설을 수정한다. 그리고 심층 인터뷰와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등의 최신 연구를 망라해 견고한 믿음에 균열을 내는 설득법을 찾았다.
맥레이니는 다양한 사례에서 아주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음모론과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결정적 순간에 이성이 아닌 감정이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낙태와 동성 결혼, 사형제도 같은 주제의 경우 제시되는 반론의 수가 늘어날수록 피험자들은 자신의 견해가 받는 위협이 마치 신체가 받는 위협인 것처럼 반응했다. (중략) 이 실험에서 관찰된 두뇌 반응은 숲속에서 곰을 마주쳤을 때 일어나는 반응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설명했다."(p237)
'개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근거들을 갖다 대봤자 오히려 그들의 공격 성향만 끌어올릴 뿐이라는 이야기다. '잼파파'가 나서서 "내부의 작은 차이로 균열이 생겨 떨어져 나가면 손실"이라며 개딸들을 어르고 달래봤자 소용없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데이비드 흄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맥레이니가 주목한 방법은 단 20분간의 대화로 유권자의 마음을 바꾸는 설득 기법으로 알려진 '딥 캔버싱'이었다. 딥 캔버싱은 상대방의 믿음을 반박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접근법이다.
"판단하지 않는 태도로 경청하면서 이야기를 공유하는 단계를 제외하자 (설득의) 효과가 사라졌고, 다시 포함하자 효과가 돌아왔다. (중략) 존중하는 태도로 상대방의 개인적 경험에 귀를 기울이고 그 다음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을 찾아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의 이야기도 성의껏 들어주는 거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적인 느낌과 공감이 형성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그게 설득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p355)
저자는 이처럼 상대방의 믿음을 반박하지 않고, 공감을 매개로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상대방이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는 바가 있다고 했다. 바로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적 성찰과 숙고의 기회가 없으면,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자신감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 이와 관련한 인상적인 사례는 '설명 깊이의 착각'이라는 심리 현상에 대한 실험에서 볼 수 있다. (중략) 해당 이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들은 당황했고, 자신이 그 이슈와 관련 정책에 대해 아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들은 처음보다 덜 극단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p93~94)
"우리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기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때 우리는 믿음직하지 않은 서술자다. 심미학에서는 이를 '내성 착각'이라고 부른다. 자신에 대한 위의 생각은 따지고 보면 짐작과 추측인 셈이다."(p269)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경청과 충분한 공감을 바탕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일단 그렇게 대화가 진행되면 상대방은 생각보다 자신의 정보가 빈약하단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것이고, 결국 자연스럽게 확신을 내려놓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맥레이니가 풀어놓은 설득의 기술이다.
사석에서 의원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경험담을 종종 전해듣는다. 문자 폭탄을 보낸 이들에게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이 생각보다 아는 게 없더라는 것. 그리고 대화 끝에 상대방이 오해를 풀고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중하게 사과를 하더라는 이야기다.
최근 전용기 의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 전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말로 공격하던 보수 성향 지지자는 전 의원과 통화 후 존대말로 "감사합니다"라면서 "우좌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했다. 불과 몇 분 만에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은 결국 감정이 작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이 연상되는 '길거리 인식론'도 딥 캔버싱과 유사한 원리와 목표를 갖고 있다. 저자는 길거리 인식론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대화가 끝날 때쯤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이 대화의 초점은 사람들을 혼자만의 생각 순환 고리에서 빠져나오게 이끄는 것, 메타 인지 상태로 유도하는 것. 자신의 추론 과정을 되돌아보고 제대로 이해하게 이끄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역시 "타인의 잘못이나 허점을 들춰내 지적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며 "그들이 결론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그걸 인지하게 돕는 게 목적"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딥 캔버싱과 길거리 인식론의 자세한 방법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
이들 설득법의 중요한 공통점은 변화의 주체가 '그들 스스로'라는 점이다. 어떤 신념이나 확신에 이르게 된 과정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기 안의 모순을 깨닫게 유도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단 것이다. 우리는 그저 질문을 통해 그들의 변화를 도울 뿐이다.
의원들 입장에선 '의정 활동도 바쁜데 왜 이런 감정 노동까지 해야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싶다면, 의원들도 그들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게 돼있다.
그런 점에서 맥레이니는 끈기를 당부한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끊임없이, 집요하게 두드리라고 한다. 수없이 숲에 던져지던 담배꽁초가 어느 날 대형 산불을 일으키듯이, 똑같은 종류의 충격이 10억 번 가해지다가 10억 번 바로 다음 회의 충격으로 거대한 변화가 촉발하는 법이니까.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 두드리는 행동을 멈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일 당신이 바라는 변화가 상당히 큰 변화라면 평생 두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손에 쥔 망치를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p407)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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