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얼굴에서 문동은 엄마가 겹쳐 보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오지원 입력 2023. 4. 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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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동은(송혜교) 엄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정 대리권을 남용한다.

딸이 피해자로서 붙잡을 수 있는 한 줌의 권리조차 법정 대리권을 행사해 포기하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대법원은 피해국인 대한민국이, 불법성을 인정하지도 않는 가해국 일본으로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받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을 포기하는 굴욕적인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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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우리가 자주 하고 듣는 말. 네, 그런 법은 많습니다. 변호사들이 민형사 사건 등 법 세계를 통해 우리 사회 자화상을 담아냅니다.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동은(송혜교) 엄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정 대리권을 남용한다. 딸이 피해자로서 붙잡을 수 있는 한 줌의 권리조차 법정 대리권을 행사해 포기하고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 드라마를 보며, 3월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이 떠올랐다. 문동은의 엄마에게서 대통령의 얼굴이 겹쳤다.

3월7일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배상 해법 규탄 시국선언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는 피해자 김성주(앞 왼쪽), 양금덕(앞 오른쪽) 할머니.ⓒ시사IN 이명익

대한민국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국익만 앞세운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평생을 기다려 취득한 일본 가해 기업들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가해 기업들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 가해 기업들의 배상금 출연도 사과와 반성 없이, 심지어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정부는 일방적으로 해법을 발표했다. 국내 기업이 제3자 변제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문동은은 18년 동안 준비해서 복수라도 성공했지만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정말 시간이 없다. 위자료는 돈 문제가 아니다. 가해 기업들이 인권유린과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반성을 하는 게 핵심이다. 정부의 일방적 발표로, 고령의 피해자들은 사과도 받지 못하고 결국 가슴에 피멍만 든 채 떠나야 하는 걸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억울하고 비참하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나 한·일 경제교류를 ‘국익’으로 포장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인식은 참담하다. 이들은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의 1965년 6월22일 청구권 협정이 있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그 협정에서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포기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문 읽었을까?

“청구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중략)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까지도 포함된 내용으로 협정을 체결했다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중략)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하였고 그 보상으로 총 12억2000만 달러를 요구한 사실이 있지만 정작 청구권 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어 결국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피징용자의 위자료 청구권도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3월6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한 변호인단과 지원단체가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왼쪽부터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시사IN 신선영

대법원은 피해국인 대한민국이, 불법성을 인정하지도 않는 가해국 일본으로부터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받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청구권을 포기하는 굴욕적인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관들은 불과 5년 뒤 대통령이 이런 중요한 판시를 무력화할 줄은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들어야지요. 18년이 지났지만….” 〈더 글로리〉에서 복수를 마친 문동은에게 18년 전 학폭을 수사하던 형사가 한 말이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참담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피해자들의 요구를 듣고 이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오지원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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