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⑱ 김영란법 7년…잊을만하면 'N만원' 논란

김근욱 기자 2023. 4.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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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따라 바뀌어야" vs "논란 자체가 모순"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건의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헌재는 이날 일명 '김영란 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제2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과 군형법 제92조의5 등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를 내린다. 2016.7.2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2016년 7월28일,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뜨거웠던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같은해 9월부터 시행된 김영란법이 공직사회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커다란 태풍을 몰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이 한결 맑아지듯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힌 부정부패를 조금이나마 도려냈다는 평가가 많다.

정말 깨끗해졌냐는 질문엔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우리가 밥을 먹거나 선물을 주고 받을때 김영란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해내고 있는 셈.

그런데 올해로 시행 7년째로 접어든 김영란법이 또 시끄럽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N만원' 논란이다.

◇김영란법은 '합헌'…부패척결 첫발

2010년 초 '그랜저 검사 사건'에 이은 '벤츠 검사 사건'까지 현직 검사들이 사건 관계자로부터 고급 승용차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공직 사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대가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현행법을 넘어서는 강한 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2012년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공직자가 100만원 넘는 금품이나 대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한다"는 내용의 법을 발의했는데 그게 바로 김영란법이다.

당초 공직 사회의 부정 부패를 막겠다는 취지였으나 입법 과정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부문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김영란법을 모두 합헌 결정했다. 헌재는 김영란법이 교육·언론인을 포함한 것에 대해 "교육과 언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식사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 등 규제 한도액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한 논란에 대해 "현실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탄력성이 있는 행정입법에 위임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통령실이 내수 진작을 위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을 식사비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상향하는 등 일부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상 한도는 음식물이 3만 원, 축의금과 조의금이 5만 원, 화환과 조화가 10만 원, 선물이 5만 원 등이다. 사진은 3만원 이하 메뉴를 판매하는 서울 시내 한 음식점의 모습. 2023.2.27/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결과는 좋은데…계절처럼 반복되는 'N만원' 논란

김영란법이 내수 경제를 위축 시킨다는 비판과 검은돈의 양성화로 경제가 살아난다는 반박은 시행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효과 분석에 따르면 공무원의 85.7%, 일반국민의 81.3%가 "부탁·선물·접대 등을 부적절한 행위로 인식하게 됐다"고 답했다.

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예방이라는 관점에서 봤을때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갑' 접대문화에 물음표를 던지는 역할은 충분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잊을만 하면 터지는 N만원 논란이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비 한도를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가 강한 비판 여론에 입장을 철회했다.

그리 새로울 일도 아닌 것이 2017년 12월 농축수산물의 선물 기준을 상시 10만원으로 상향하고 2021부터는 명절 기간에 한해 20만원으로 상향했는데 이때도 의견이 분분했다.

명확한 법안으로 시민들이 인정하고 따를 수 있냐는 '법의 안정성' 관점에서 볼때 김영란법은 한계가 뚜렷하다.

◇"물가 따라 바껴야" vs "논란 자체가 모순"

계절처럼 반복되는 N만원 논란에 대해 법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더 나은 법을 만들기 위한 성장통이라는 시각 한편에는 논란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물가가 계속 오르는데 10년 가까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현실에 맞게 기준을 조정하지 않으면 법 자체가 사문화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액을 단순화 시켜버리는 것도 문제"라면서 "엄밀하게 따지자면 지역별, 시기별로 액수에 차등이 있어야 정상이다"고 제언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논란을 만드는 것 자체가 법의 기본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교수는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는 주지도, 받지도 말고 자기 밥값은 자기가 계산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한국 사회에 밥을 사주는 문화가 있지만 적어도 공직 사회에서는 접대 문화를 척결하자는 것이 핵심"이라며 "정치권에서 금액이 상향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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