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둘셋 낳고 싶어요”…돈 주고 집도 마련해준다는데 진짜로 될까? [초보엄마 잡학사전]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입력 2023. 4. 1. 06:03 수정 2023. 4. 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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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열고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한 주요 과제를 논의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보엄마 잡학사전-181] “정부는 한 달에 몇 십만원 주면 정말 사람들이 애를 낳을 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 정부가 저출산 관련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맘카페 등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흔하게 오간다. 월 10만원, 50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돈을 준다고 해서 아이를 낳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기업 문화, 믿고 맡길 만한 돌봄시스템의 공백, 수억원에 달하는 아파트값, 비싼 사교육비 등 아이를 키우기 힘든 환경에서 단돈 몇 십만원이 저출산 해결의 묘안이 되기는 어렵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열고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한 주요 과제를 논의했다. 이날 발표한 저출산 대책 중 2자녀 가구도 공공분양 특별공급 대상이 되도록 한 게 눈에 띈다. 기존 3자녀 이상에게 공급했던 다자녀 공공분양 특별공급 기준을 2자녀로 완화한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의 ‘현금 살포’보다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접근은 바람직하다. 지난 몇 년간 아파트값이 두 배 넘게 뛰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거나 늦추는 젊은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는 다자녀 특별공급에서 2자녀 가구 당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위 대책은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는 다자녀 특별공급에서 2자녀 가구 당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점제로 운영되는 다자녀 특별공급은 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한 데다, 기존 3자녀 가구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인기 지역에서 3자녀 가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2자녀 가구가 당첨될 확률은 매우 낮다. 지난 정부에서 소득 자격 기준을 완화했다지만 소득이 적은 부부에 우선 공급하는 까닭에 2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는 당첨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서울에서 주택 공급 자체가 없었다는 점도 대책 실효성에 의문이 들게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청약센터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에서 새로 분양한 주택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올해 1분기에도 없었다. 주택을 공급해야 청약 신청을 하고 당첨 기회가 생기는데, 공급을 늘리지 않으면서 자격 기준만 완화한다면 이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정부는 향후 5년에 걸쳐 신혼부부에게 공공분양 15.5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지만, 연간 3.1만호가 실제 공급될 지도 미지수다. 예컨대 동작구 수도방위사령부 용지의 공공분양주택은 문재인 정부 때 신혼희망타운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혀 많은 신혼부부가 기다렸지만, 윤석열 정부의 ‘뉴:홈’ 사전청약물량에 포함됐다. 지난 몇 년간 주택 공급이 태부족했던 점도 향후 분양 주택의 청약 경쟁률을 높여 2자녀 가구의 다자녀 특별공급당첨을 어렵게 할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저녁 8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늘봄학교’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정책도 발표했지만, 실제 이용률과 프로그램 만족도를 조사해 반영된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돌봄교실을 놔두고 왜 3~4시부터 소위 ‘학원 뺑뺑이’를 도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더 나은 교육과 보육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허울 뿐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 확대 발표 역시 취지는 바람직하나 현실의 기업 문화를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자녀 연령을 만 8세에서 만12세로 상향하고, 부모 1인당 최대 24개월에서 최대 36개월으로 확대했지만 “정부는 지원을 확대했으니 기업과 개인이 각자 알아서 잘 쓰라”는 뜻으로 읽힌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860명 중(2023년 2월 기준) 지난해 약 1만9500명만이 해당 제도를 사용했다. 전체의 0.07%만이 해당 제도를 이용한 것이다. 해당 제도는 남성과 여성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여성으로 모수를 좁혀 계산해봐도 이용률이 0.16%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2022년 12월 기준 1248만명이다.

‘모든 아이를 소중하게 대한민국이 함께 키우겠다’는 정부 슬로건처럼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아이를 소중하게 대한민국이 함께 키우겠다’는 정부 슬로건처럼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당장 몇 십만원의 수당이 아니라, 각종 자격 기준을 완화하고 지원을 확대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는 N포세대(N가지를 포기한 세대)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직장에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언감생심, 임신했다고 육아휴직 쓴다고 눈치보지 않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 그런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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