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제로센이 부활한다”…영국과 손잡은 일본, 동북아 제공권 노린다 [박수찬의 軍]
현존 최강의 스텔스기 F-35를 넘어서는 6세대 전투기 개발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일부 선진국만 개발을 추진하는 6세대 전투기를 재정적 부담을 줄이면서 확보할 길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태평양 일대 제공권을 장악해 연합군을 공포에 빠뜨렸던 제로센 전투기의 부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일본도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면서 2030년대 한반도 제공권 다툼에서 한국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공동개발로 리스크 줄이고 정치적 연대 구축
일본이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공동개발을 추진하는 GCAP의 모습은 일본 도쿄에서 지난 15~17일 열린 국제 방산전시회(DSEI JAPAN 2023)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전시회에서는 GCAP의 모형이 공개되어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반적으로는 F-22와 비슷하면서도 영국, 이탈리아가 추진중인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과 일본의 차기 전투기 개발 계획을 종합한 컨셉이라는 평가다.
여기에 영국 측은 롤스로이스, 레오나르도 UK, MBDA UK가 추가로 참가한다. 이탈리아는 아비오 에어로, 일렉트로니카, MBDA 이탈리아가, 일본은 미츠비시 전기와 IHI가 참여한다. 3국 항공우주방위산업 역량이 총집결한 셈이다.
방산업체들의 역량을 토대로 3국은 개발 일정의 세부 사항을 조율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2029년에 지상 및 비행시험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구체적인 개발 계획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일본 미츠비시전기와 영국 레오나르도 UK,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일렉트로니카는 DSEI JAPAN 2023 기간에 GCAP에 탑재할 임무컴퓨터와 통신, 항법 등을 포함한 항공전자체계 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미츠비시전기는 F-2 전투기의 항공전자장비 개발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레오나르도 UK는 2018년에 설립된 영국 ‘팀 템페스트’ 프로젝트의 창립 멤버로 6세대 전투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츠비시전기와는 2018년부터 영국·일본의 레이더 공동개발 프로그램을 함께 해왔다.
영국 정부가 공개했던 템페스트의 컨셉을 기준으로 보면, GCAP는 5세대 전투기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지닐 예정이다.
2030년대 GCAP 조종사들이 착용하는 헬멧에는 자신의 의학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가 부착된다. 탬페스트에 탑재되는 인공지능(AI)은 헬멧의 센서로 확보한 의학 정보를 토대로 조종사를 지원한다. 레이저와 전투 드론 등도 탑재한다.
탬페스트 엔진은 강력한 추력을 내면서 기존보다 대폭 늘어난 전자장비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양의 전력을 생산한다. 대용량 고속 네트워크로 적의 정보를 아군끼리 실시간 공유한다.
GCAP를 통해 영국과 일본은 국제정치,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한 이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영국은 외교적으로 이전보다 국제적 입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다자간 협력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만큼 호주, 일본과의 관계가 강화됐고, 오랜 기간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의미다. 밴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이 “GCAP는 짧은 연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결혼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제적 이익도 막대하다. 영국이 GCAP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 영국 내에서 연평균 2만1000개의 일자리를 지원할 수 있고, 2050년까지 영국 경제에 약 262억 파운드(42조182억 원)를 기여할 수 있다.
일본도 상당한 이익을 얻는다.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6세대 전투기를 독자 개발하면 1조4000억 엔(13조7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F-2 개발비의 4배 규모다.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전자장비 비중 확대, 360도 감시가 가능한 첨단 레이더 등에 막대한 개발비가 들기 때문이었다.
경제대국으로서 국방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이같은 수준의 비용을 부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오랜 기간 군용기를 개발했던 BAE시스템스를 비롯한 영국 기업의 참여는 재정적 부담을 덜면서 기술적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카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6세대 전투기 개발에 팔을 겉어붙이는 상황에서 한국은 KF-21 시험비행이 한창이다.
지난 28일 KF-21은 비행 중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기체에서 분리하고, 기총을 발사하는 시험에 성공했다.
이날 시험에서는 전투기에서 무장을 분리하거나 기총을 쏠 때 발생할 수 있는 기체 구조, 엔진, 공기역학적 특성 변화 등을 점검해 안전성을 검증하고, 무장 운용 관련 항공전자 시스템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차세대 공중전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미티어 미사일은 아시아에선 KF-21이 최초로 탑재한다. 일반적인 공대공 미사일은 로켓 모터로 가속 후 관성으로 비행, 사거리 연장에 한계가 있다.
미티어는 부스터 로켓으로 가속 후 엔진이 지속적으로 추진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미티어는 기존 중거리 미사일보다 먼 100㎞ 이상의 거리를 비행하며 적기를 공격한다.
독자 개발 또는 공동연구, 외국산 도입을 통해 6세대 전투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되는 이유다.
현재 한국이 참여할만한 6세대 전투기 프로그램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주도의 FCAS 정도다. 다만 2040~2050년쯤 기체가 실전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주변국보다 최대 10년 정도 늦어지는 셈이다.
특정 분야만 선진국 업체와 협력하고, 그 이외에는 독자 개발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예산 등의 문제가 걸림돌이다.
제공권을 장악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은 현대전에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다.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공중전 능력 강화에 투자를 늘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도 F-35A와 KF-21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우수한 기체를 확보하는 중장기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 상공을 지킬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