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BTS의 와인, 우마니론끼 펠라고
UN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360억병에 달하는 와인들이 새로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범람하는 와인 가운데 소비자 눈에 들어 선택을 받기란 어지간히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고서야 쉽지 않다.
그래도 종종 와인계에 ‘벼락스타’가 등장한다. 대부분 유명 평론가로부터 숨겨진 보석 같다는 평가를 듣거나, 유명한 드라마 혹은 TV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
지금은 와인 평론계를 떠난 ‘와인 대통령’ 로버트 파커는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 신생 와이너리에서 만든 한 2007년산 와인에 100점을 줬다. 매년 적게 잡아도 수천종 와인을 시음하는 그가 100점을 주는 와인은 10~20종 정도다. 그는 4년 뒤 같은 와이너리가 만든 2010년산 와인에 또 한번 100점을 줬다.
파커는 “마실수록 진해지는 풍미에 현기증이 난다”는 극찬을 시음평으로 남겼다. 그의 말 한마디, 점수 1점에 와인 가격이 ‘수백만달러 단위로 오르내린다’는 말이 돌 때였다. 신생 와이너리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연달아 100점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 시음평의 주인공은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이 세운 다나 에스테이트의 ‘로터스 빈야드’다. 이후 다나 에스테이트는 널리 알려졌듯 승승장구했다.
2020년 화제를 일으켰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도 거의 매회 와인이 등장했다. 드라마 속에서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던 배우 김희애는 마트 와인 코너에서 진열대에 놓인 와인 4병을 쇼핑카트에 쓸어담는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와인을 병째로 벌컥벌컥 마신다. 이 때 등장했던 ‘샤토 메종 블랑슈’는 이후 꽤 오래도록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를 끌었다.
방송인 이효리가 유명 TV 프로그램 속에서 친구들과 나눠 마셨던 ‘칸티나 인디제노 메가블란드’나 최근 ‘더 글로리’에 등장했던 ‘루이 자도 포마르 프리미에 크뤼 클로 드 라 코마랜’도 마찬가지다. 자칫 모르고 지나칠 법한 와인들이었지만, 카메라 앞에 비춰지고 나자 이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때 우리나라 와인 소비자 사이에서 일본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도 어지간한 유명 와인 평론가 혹은 TV 프로그램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우마니론끼라는 이탈리아 와이너리는 이 만화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알음알음 이름을 알렸다.
우마니론끼는 작은 와이너리가 아니다. 1955년 설립 당시에는 작은 농장이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와 아부르초(Abruzzo) 지역에 10개 이상 포도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와이너리다.
다만 마르케와 아부르초 지역이 이탈리아에서도 토스카나 혹은 피에몬테처럼 유명한 와인 생산지가 아니다 보니 이탈리아를 벗어나면 인지도가 떨어졌다. 이 지역에서는 주로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품질을 경쟁력으로 삼는 마시기 편한 와인을 만든다.
우마니론끼는 설립 30여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 인근 와이너리와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모은 돈을 풀어 볕 좋은 곳에 포도밭을 더 사들였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포도밭은 구역을 더 세세히 나눠 관리했다. 햇볕이 유난히 잘 드는 밭에서 자란 포도는 따로 모아서 별도 이름을 붙인 특별한 와인을 만드는 데 썼다.
가장 비싼 와인이 나오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 수백년 전부터 하던 방식이다. 그러나 여러 포도를 두루 모아 저렴한 와인을 양조하던 마르케 지역에서는 비용과 인력 문제로 이런 제조 방식을 선호하지 않았다.
우마니론끼는 그 무렵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던 이탈리아 와인 ‘사시카이아(Sassicaia)’와 ‘솔라이아(Solaia)’를 만들어 낸 유명 생산자 지아코모 타키스도 높은 몸값을 감당하면서 불러 들였다.
공을 들인 결과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10년여가 흐른 1997년, 우마니론끼에서 만든 펠라고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International Wine Challenge)에서 최고 와인으로 꼽혔다.
와인 7000여 종이 겨룬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와인 정보를 가린 채 하는 시음)에서 1위를 차지한 결과다. 이듬해 1998년에는 세계적인 와인 전문매체 와인엔수지애스트에서 97점을 받으며 그해 100대 와인에 뽑혔다.
이탈리아를 벗어나 미국과 아시아에 우마니론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2000년대에는 신의 물방울에 등장했고, 곧 우리나라 만화 ‘식객’에도 등장했다.
이들 만화에서 우마니론끼 와인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와인’으로 등장한다. 주질을 끌어 올리면서도, 최대한 가격은 낮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어진 덕분이다.
2019년 우마니론끼에는 한 번 더 기회가 찾아왔다. 이 해 팬미팅을 마친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은 개인 라이브 방송에서 우마니론끼가 만든 ‘비고르(Vigor)’라는 와인을 마셨다.
그는 늦은 자정 무렵 조용히 ‘행복한 시간 후 여유로운 한 잔’이라는 제목으로 라이브 방송을 켰다. 그리고 팬들에게 “모두 술이나 음료수를 준비해서 함께 축하하자”면서 카메라 앞 본인 잔에 우마니론끼 와인을 따랐다.
전 세계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는 BTS가 오래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내내 우마니론끼 와인을 마신 파동은 길게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정국이 마신 와인’에 대한 블로그와 SNS 포스팅이 줄을 지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우마니론끼 담당자가 국내 수입사에 “SNS에 한국어로 우마니론끼 해쉬태그가 계속 올라오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후 우마니론끼는 별도로 한국 한정판을 출시할 정도로 우리나라 시장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펠라고는 우마니론끼를 상징하는 프리미엄 와인이다. 1997년 런던에서 우마니론끼를 일약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 와인이 펠라고다.
펠라고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바다’를 뜻하는 ‘펠라고스(pelagos)’에서 따왔다. 크로아티아와 맞닿은 아드리아해(海)를 바라보는 언덕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포도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와인은 신의 물방울에 등장했던 ‘요리오’ 혹은 정국이 마신 비고르에 비해 값도 비쌀 뿐 아니라 구하기도 힘들다. 매년 만들지 않고, 오로지 포도 품질이 만족할 만한 해에만 양조한다. 우마니론끼는 공식적으로 이 와인이 ‘우리의 모든 통찰력을 쏟아낸 결과물’이라고 표현했다.
펠라고는 2022년 대한민국주류대상 구대륙 레드와인 10만원 이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레뱅드매일에서 사명을 바꾼 레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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