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이름 외우고 인스타로 ‘급식 먹방’하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있습니다[코끼리]
전현진 기자 2023. 4. 1. 05:58
“예현아, 네가 일빠(1등)다! 이거 먹어. 정선에서 안 파는 거야.”
지난달 16일 오전 7시36분, 강원도 정선군 정선고등학교 출입문 앞에서 핫도그를 만들던 학생부장 이원재 교사가 졸린 표정으로 등교하는 예현양을 보자 외쳤다. 수업 1시간30분 전. 평소에도 이른 시간 등교하는 예현양은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교사를 보고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우와! 이거 뭐예요?”
“이거 완전 스토리 재질이야. 인스타에 올려줘.” 인스타그램에 올려달라는 뜻이다. “아, 일단 미션부터 해야지!”
핫도그를 받기 위한 ‘미션’이 있었다. 입간판에 적어놓은 이 글을 한 번씩 읽으면 된다.
“SNS에는 고운 말 좋은 글만. 다툴 것 같으면 선생님께 중재를. 너도나도 모두 귀중한 사람.”
이 교사는 등교하는 학생을 반기는 ‘아침맞이’ 행사를 매일 한다. 가끔 이벤트가 열린다. 지난해 11월3일에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학생의날)을 맞아 한복을 입고 아침맞이를 했다. 이날은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을 겸해서 200인분 핫도그를 준비했다.
호떡을 굽거나 어묵꼬치를 국물과 나눠주기도 했지만, 핫도그는 처음이다. 이날 오전 7시부터 교사들이 모였다. 국어 임다정 교사가 빵을 데우고, 체육 김윤성 교사가 소시지를 구웠다. 빵에 소시지를 넣고 소스를 뿌려 나눠주는 일은 이 교사가 맡았다. 상담 김가영 교사는 재료 준비와 함께 학생들의 ‘미션’ 수행을 지도했다.
학교 앞은 오전 8시30분 무렵부터 학생들로 북적였다. 오전 9시 등교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다. 미션을 수행하고 핫도그를 받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다.
“어! 파마했네!” 바쁘게 핫도그를 나눠주면서도 이 교사는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인사했다. “원재쌤 짱짱!”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신나는 K팝이 흘렀고,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일손이 모자라 구재승 교장 등 다른 교사도 손을 보탰다. 오전 9시2분, 1교시 첫 수업 시작을 8분쯤 남겨둔 때였다. “아까 못 받았어요!” 교실에서 뛰어와 핫도그를 받아간 학생 2명을 끝으로 아침맞이가 마무리됐다.
“준비할 때는 잘될까 싶은데, 잘 마무리됐네요.” 뒷정리를 하면서 이 교사가 말했다.
‘쩐 표정’ 학생 위해 뭐라도 먹여 볼까?
이원재 교사는 2011년 9월 첫 발령을 받은 뒤 올해 13년 차 중견 교사가 됐다. 3개 학교를 거쳐 지난해 정선고로 왔다. 그동안 학생들과 부대낀 이야기가 제법 쌓였고, 그 일들을 틈틈이 일기로 써왔다. 이 일기를 모아서 지난 3월 <체육복을 읽는 아침>(도서출판 정미소)이라는 수필집을 펴냈다.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집에서 세탁하고 다림질해준 교복을 입을 수 없는 아이들이 구겨진 교복을 보여주기 싫은 마음에 체육복을 입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었다. 이 교사는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민망하기도 하죠. 괜한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침맞이 행사를 마치고 마주 앉아 인터뷰하면서 책을 낸 소감을 묻자 그는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그의 책에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가 가득하다. 교사가 돼 만난 학생들과의 소중한 인연과 실수와 아쉬움, 깨달음들이 담겼다.
책에는 핫도그를 나눠준 등교시간처럼 아침맞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 교사가 처음 학생들에게 ‘아침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한 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있었던 원주여고에서다.
“아침에 아이들 표정이 ‘쩔어’ 있어요. 수행평가로 잠도 못 자고, 성적 걱정에 친구들과의 감정싸움 등 원인이 다양하겠죠.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뭐라도 좀 먹이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까. 인근의 한 대형 빵집을 찾아 기부를 부탁했다. 매주 한 번 빵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했다. 친구와 끌어안고 ‘사랑해’라고 외치는 임무를 수행하면 빵과 코코아를 나눠줬다. 이른바 ‘사랑해 모닝카페’다. 그해 졸업식, 일면식도 없던 학생이 “학교 오기 싫었는데 빵 나눠주는 것 때문에 왔다”며 인사했다.
이 교사가 학생들 이름을 가능하면 모두 외워서 불러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이들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해요. 이름을 불러주는 게 아이들을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는 것은 쉽지 않다. 한 학기 혹은 1년 내내 걸리기도 한다. ‘혹시 이름을 잘못 부르면 오히려 상처받을까’ 싶지만 이 교사는 “아 미안. 이제 안 잊어버릴게라고 솔직히 사과하면 학생들과 더 가까워진다”고 답했다.
교사도 학교라는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직업인이다. 학생들 이름을 외우고 아침마다 인사하고 먹을 걸 준비해 나누는 행사는 자칫 가욋일로 여겨진다. 누군가는 ‘나댄다’거나 ‘혼자 신났다’고 깎아내리거나 ‘일을 만든다’ ‘괜히 주변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모든 교사가 제 모습과 생각에 동의할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고, 저를 따라 교사가 되려고 하거나 삶을 붙잡고 어엿한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음지’로 가는 학교 폭력, 그리고 소중한 아이들
학생들에게 ‘추앙’받는 인기 만점 학생부장이지만, 그도 처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소년 만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검사를 꿈꿔왔다. 수능을 본 직후 가세가 기울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사범대로 갔고, 하루빨리 안정적인 교사가 되려고 했다. 힘든 청소년 시절 그를 붙잡아준 문학작품들이 떠올라 국어 교사가 됐다. 좌충우돌 부딪히며 성장하고 학생들에게 배우면서 이제는 교사를 천직으로 여긴다.
이 교사는 교직 생활 대부분 학생부장을 맡았다.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도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최근 인기를 모은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잔혹함을 보여줘 공분을 샀다. 이 교사에게 <더 글로리>와 같은 학교폭력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요즘에는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학교폭력 사건은 많이 줄어든 편이에요.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수 없겠지만, 유명인들이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게 드러나 지탄받기도 하고, 처벌 규정이 강력해져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힌 듯합니다.”
대신 음성화된 형태의 사이버 학교폭력이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SNS를 통한 따돌림이나 집단 괴롭힘 등이다. 채팅방에 초대해놓고 집단으로 놀리거나 욕을 하고,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게시글을 올린다. 지난해 9월 푸른나무재단이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조사해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학교폭력 유형 중 사이버폭력이 31.6%로 가장 많았다. 2020년 16.3%, 2019년 5.3% 대비 크게 늘었다.
이날 이 교사가 핫도그를 나눠주며 읽도록 한 문구(“SNS에는 고운 말 좋은 글만…”)도 사이버폭력 예방의 일환이다.
직접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학생들과 교류한다. 교사의 눈을 피해 벌어지는 갈등 관계를 미리 포착해 중재하면서 SNS에도 교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하고 ‘좋아요’도 눌러주고 댓글도 답니다. 카카오톡에 생일이라고 뜨면 초코에몽 (음료수) 하나 선물로 보내주기도 하죠.” 점심시간에 급식 먹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 ‘급식 먹방’도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했다.
이 교사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학교폭력을 지도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강력범죄에 준하는 처벌을 받도록 했는데, 결국 공동체 안에서 가해자를 배척하고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학교폭력 피해를 막고 피해 학생들을 돕는 한편 가해 학생 역시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가는 일이 처벌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사로서의 삶을 바꾼 사건 때문이다.
몇 해 전, 신호대기 중이던 이 교사의 차 조수석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오토바이를 탄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 왜 하이바(헬멧) 안 썼어?!” 그리고 다음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 학생이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부고를 받았다.
“정말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출생률이 역대 최저라는 말도 하지만 말 그대로 아이들 한 명 한 명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끼고, 아이들도 자신이 그런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잘한 것을 찾아서 칭찬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죠.”
사교육의 시대 교사의 역할
코로나19로 많은 학생이 오랫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학생들이 관계 맺기에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입학식·졸업식, 조례·종례, 축제·체육대회 같은 크고 작은 행사가 사라지면서 공동체 의식이나 관계의 깊이도 얕아지고 있어 걱정됩니다.”
이 교사는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픈 아이들이 참 많다”고 했다. 공황장애, 우울증 등 구체적 진단이 나올 정도로 아픈 학생들이 많아졌다. 학기 내내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학교생활이 친구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적어도 지지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이 교사는 학생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어깨로 학생을 만나면 안 된다’는 말을 꺼냈다. 학생이 찾아와 책상에 옆으로 섰을 때 몸을 돌려 가슴으로 학생을 대해야지 어깨로 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표현이 거칠고 미숙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동등한 인격체이니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한다면 학생들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대해줄 거라고 믿어요.”
학창시절 교사에게 상처받고 고통받는 학생들도 분명 있다. 이 교사는 “진심으로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하고 싶다. 충분하지 않겠지만, ‘유감’이었다고 하지 않고,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보편화되면서 공교육과 학교, 교사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아졌다. “여전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학교란 그 아이들의 세상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무대인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의 성장을 책임지는 기관은 아직까지는 학교밖에 없는 듯해요.”
그렇다고 교사가 학생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게 이 교사의 신념이다. “그건 오만한 생각인 것 같아요. 고교 생활도 인생 전체 중 일부이고, 교사도 평생 만나는 사람 중 일부일 뿐이죠. 그 짧은 시간 모든 걸 책임지고 안고 가려고 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신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고 슬플 때 공감해주는 교사의 역할은 분명히 있을 거예요.”
학교라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어른이 바로 교사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벼랑과 벼랑 사이를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는 사람, 삶의 바다에서 지친 학생들이 바라보고 붙잡을 수 있는 ‘부표’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책 <체육복을 읽는 아침>을 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생들에게 믿음직한 어른, 든든한 우리 편, 유쾌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학생들과 만나 많은 것을 배우면서 저도 성장한 것 같네요.” 이 교사가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이 교사는 오는 4월 15일 도서출판 정미소 김민섭 대표가 운영하는 강릉시 포남동의 서점 ‘당신의 강릉’에서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홍세화 작가와 함께 북토크에 나선다. ‘교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부터 학교 글쓰기와 교육, 입시, 학교 폭력 등의 문제를 놓고 이 교사와 홍 작가가 대담을 주고 받는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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