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말로만 "MZ 의견 듣겠다"는 정부…저출산 해결 의지 있나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3. 4. 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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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9시간제 근로개편案 등 연일 청년세대 소환에도 실제 반영 의문
2030 등 '주40시간 미만' 일하고 싶다는데…'시간 주권' 확대라고?
최대 근로시간 상향-육아기 단축근무제 양립, 합리적으로 가능한가
출산율 끌어올릴 '특단 대책 全無'보다 정책 간 정합성이 더 문제적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일관계 정상화 등에 대해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나는 MZ가 아닌가?'

뜨거운 현안인 '주69시간제' 근로개편안과 한일 정상회담 관련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대선 때부터 현행 주52시간제에 회의적 시각을 보여 온 대통령은 청년층의 반발에 뒤늦게 "연장근로를 해도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강제징용 배상해법으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면제한 제3자 변제를 내세우면서는 "미래 청년세대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또다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소환했다. 정작 호명된 당사자는 연일 갸우뚱한 나날이다.

정부가 지향하는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은 차치하고, 30대인 기자를 포함한 한국의 청년들은 그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당장 오늘을 살기에도 급급한 2030에게 고용노동부가 내민 근로시간제 개편안은 거의 절망에 가깝다. 과로 조장이 아니라 되레 탄력적 운영으로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확대하기 위함이었다는 항변에 이르면 실소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200시간을 더 일하는 나라(2021년 기준 연 1915시간)에서 초과근로를 자진하지 못해 안달인 청년 노동자는 없다.

결론이 나와 있는데 굳이 6천 명 대상의 여론조사를 또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과학적 근거'를 중시하는 정부의 이같은 아량이 불필요하단 점은 데이터가 증명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일하겠냐는 질문에 대상자들은 '주 36.7시간(평균)'이라고 응답했다. 법정근로 40시간에 연장근로를 꽉 채운 52시간도 이미 너무 길다는 건데, "주60시간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게 문제"라니 당혹스러운 건 국민들이다.

희망 근로시간은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적었다. 20대(34.97시간)·30대(36.32시간)와 40·50대(37시간대) 간의 차이도 통념만큼 크지는 않았다. 성별과 혼인 여부, 거주지역,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떠나 설문에 응한 19~59세 성인 1만 7500여 명이 원하는 근무시간은 주간 40시간을 넘지 않았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세대를 초월한 가치임을 말해주는 지표다.

서울대학교에 붙은 '주69시간' 반대 대자보. 연합뉴스


주69시간제 밑그림을 만든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유일한 건강권 전문가였던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장시간 노동방치는 '개악(改惡)'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논의방향에 동의할 수 없어 중도 사임한 김 교수는 현 52시간제도 국제노동기구(ILO)의 최대 노동시간 기준(48시간) 위반임을 지적했다. 어떤 명분을 대도 최대 근로시간 상향이 노동자를 위한 선의임을 강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사연은 "장시간 일하는 집단일수록 현재 일하는 평균시간과 희망하는 근무시간 사이 차이가 더 큰 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육체적 피로뿐 아니라 사생활이 잘 분리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소진(번아웃)도 크다. 응답자의 63%는 '일 때문에 진이 빠지는 느낌'이라고 답했는데, 30대 이하는 70%에 근접하게 나타났다. 특히 취업자·비취업자군 모두 이렇게 느끼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결혼과 출산·육아가 가임기 여성 근로자들에게 어떤 무게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0.78명'이란 합계출산율이 정말 '충격'이긴 했을까. 지난달 28일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는 실망스러웠다. 알맹이 없이 가짓수만 214개인 '백화점식 정책'이 실패 원인이라는 진단엔 공감한다. 하지만 체감도 높은 정책으로의 '선택과 집중'을 말하는데도,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데?"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용처가 문제지, 인구 절벽을 넘어 '소멸'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15년간 280조 원을 투입한 게 과연 낭비인지도 의문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연간 단위로 따지면 엄밀히 말해 많은 재정을 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생아실. 연합뉴스


저고위 상임위원인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영유아 중심의 현금성 지원을 만 18세까지 늘리더라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태어난 아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아동 복지'일 순 있어도 저출산 정책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지원보다 '내가 키울 수 있는' 제반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단 점에서 일리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육아기 단축근무제 대상 자녀를 8세 이하에서 12세 이하로 확대하고, 사용기간도 최대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중소기업·비정규직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이달 집중 감독도 실시한다.

이런 정책들이 다 무의미하단 게 아니다. 다만 직장인 45%가 육아휴직도 온전히 못 쓰는 상황(직장갑질119 조사)에서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애매한 단축근무제를 '눈칫밥' 먹어가며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암묵적 타의로 연차를 쌓아두는 근로자들에게 한 달 장기휴가가 그림의 떡인 것과 마찬가지다.

육아에 대한 열의가 있는 '요즘 아빠'들은 맘은 있어도 수입 감소 때문에 선뜻 휴직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 보전 임금을 확 올려주는 등 이들의 양육시간을 담보할 세부대책이 필요할 텐데 인센티브 등 기존 지원을 찔끔 키우는 정도로는 특별히 개선을 기대할 유인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정부측 인사들. 연합뉴스


VIP가 주문한 '특단의 대책'이 없었다는 것보다 더 문제적인 대목은 정책의 정합성이다. 일할 수 있는 가용범위가 넓어진다는 것과 육아기 단축근무제는 당연히 배치된다. 육아는 고사하고 아이가 생길 여지조차 좁히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혹자는 '바쁘다고 연애를 못한다는 건 핑계'라고 하지만 연애가 엄청난 감정노동이란 사실을 외면하거나, '갓(God)생'을 강요하는 무책임한 얘기다. 딴 짓을 할 최소한의 여유가 있어야 사람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출산과 양육 또한 선택지에 들어갈 수 있다.

출산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저출산 정책의 초점은 '비자발적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자'에 맞춰져야 한다. 정부는 "69시간제로 자기 시간이 준다거나 출산 포기 등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란 한가로운 해명이나 할 때가 아니다.  

저고위가 추상적이란 이유로 이번에 수정한 정책 목표('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환경 조성')는 종전 목표('개인의 삶의 질 향상')와 본질적으로 동의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모든 정책을 MZ세대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출산율을 일말이라도 끌어올릴 의지가 있다면, 정책 수요자로서 부탁한다. 제발, 그렇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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