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맞는 어린 왕자… “장미의 모델은 생텍쥐페리 아내”

곽아람 기자 2023. 4.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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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어린 왕자’ 출간 80주년
/위즈덤하우스 "그는 활화산을 정성껏 청소했다." 자기 행성을 떠나는 날 아침의 어린왕자.

어린 왕자, 영원이 된 순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갈리마르 출판사 지음|이세진 옮김|372쪽|3만2000원

“어떤 사람은 늙지 않고 시인으로 남는 법을 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는 1930년대 이런 문장을 남겼다. 그 ‘어떤 사람’은 바로 생텍쥐페리 자신이다. 그는 소설 ‘전시 조종사’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의 어린 시절에서 왔다.” ‘어린 왕자’는 한 어른이 ‘어린 시절에서 온 나’를 만나는 이야기. 오는 6일은 ‘어린 왕자’ 탄생 80주년이다. 지난해 파리 장식미술관서 열린 ‘어린 왕자’ 특별전을 기념해 갈리마르출판사가 펴낸 이 책은 ‘어린 왕자’의 탄생 배경과 의미를 짚으며 친필 원고 등 여러 기관 및 수집가 소장품 350여 점을 소개한다.

◇‘어린 왕자’의 고향, 뉴욕

프랑스어로 쓰인 작품 중 전 세계에 가장 널린 퍼진 책. ‘어린 왕자’의 단골 수식어다. 그렇지만 ‘어린 왕자’가 탄생한 곳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다. 생텍쥐페리는 뉴욕에서 이 책을 썼다.

1940년 6월, 프랑스는 전쟁에 참패했다. 생텍쥐페리는 독일의 볼모가 된 나라들을 구한다는 건 당파를 초월해 인간의 ‘이상’을 수호하는 것이라 여겼다. 드골주의자들과는 대치되는 관점이었다. 생텍쥐페리는 그해 12월 뉴욕으로 ‘망명’했다. 미국과 그 지도자들을 동원해 민주사회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 왕자는 철새의 이동을 이용해 행성을 벗어났다.” 어린왕자의 비행을 그린 생텍쥐페리의 수채화. /위즈덤하우스

뉴욕의 생텍쥐페리는 자주 냅킨에 어린 소년의 모습을 끄적거리곤 했다. 그를 본 한 출판업자가 “1942년 성탄절에 맞춰 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를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센트럴파크 인근 자택에서, 롱아일랜드 북부 해안의 집에서 ‘어린 왕자’를 쓴다. 출간은 예정보다 늦어졌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 4월 2일 미 대륙을 떠나 알제리로 향했고, 6일 뉴욕에서 ‘어린 왕자’ 영어와 불어판이 동시에 출간된다.

◇‘어린 왕자’의 장미, 아내 콘수엘로

/위즈덤하우스 생텍쥐페리와 아내 콘수엘로. 부에노스아이레스, 1930.

까다롭기 그지없는 장미와의 관계는 ‘어린 왕자’의 서사 중 중심축을 차지한다. 생텍쥐페리에게 그 ‘장미’란 아내 콘수엘로였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닮아 있었고, 같은 언어로 별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지만 관계는 안온하지 않았다. 생텍쥐페리는 아내의 내조를 바랐지만, 콘수엘로는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부부는 자주, 격렬하게 다퉜다. 그렇지만 서로를 사랑했다. 함께 있으면 불행했지만, 떨어져 있을 때는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했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어. (…) 절대로 달아나지 말았어야 했어.”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조언한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여.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리고 덧붙인다.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게 책임이 있어….” 생텍쥐페리는 결혼생활 중에도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나의 장미’ 콘수엘로가 있었다. 마르세유 난바다 위를 날다 실종되기 전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오, 콘수엘로. 머지않아 사방에 어린 왕자를 그리러 돌아갈 겁니다.”

◇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닌 어린이책

/위즈덤하우스 자기 별에서 해지는 걸 바라보고 있는 어린왕자.

‘어린 왕자’는 전쟁과 망명 중 태어난 아이였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알려져 있지만 생텍쥐페리가 우선시한 독자는 어린이다. 어린 시절은 그에게 중요한 테마였다. 그는 어린 시절의 독서가 자기 작품에 미친 영향을 자주 강조했다. ‘안데르센 동화집’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도 밝혔다. “나한테는 우리가 어릴 적 지어낸 말과 놀이의 세상, 아이들의 추억으로 가득한 세상이 다른 세상보다 한없이 진실해 보였습니다.” 1930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내용이다. 또 다른 편지엔 이렇게 썼다. “작은 초록색 의자를 끌고 다니던 보잘것없는 아이였을 때와 똑같이 키스를 보내요, 엄마!”

그 의자는 소행성 B612에서 어린 왕자의 것으로 되살아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조그만 별에 의자를 놓고, 마음 내킬 때마다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놓은 채 석양을 본다. “어느 날 난 마흔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어! 아저씨도 알 거야…. 그렇게도 슬플 때는 누구나 해가 저무는 게 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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