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압박이 낳은 ‘유사 동맹’… 韓日, 미워하면서도 서로 도움됐다

양지호 기자 입력 2023. 4. 1. 03:01 수정 2023. 4. 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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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제휴

빅터 D. 차 지음|김일영·문순보 옮김|문학과지성사|538쪽|2만4000원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강상중 지음|노수경 옮김|사계절|232쪽|1만5000원

“적어도 40세 이상 된 한국 사람들이 모두 죽은 뒤라야 한일 국교 정상화가 제대로 되는 거야.” 외교의 달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김유택 신임 주일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양국은 이보다 수십년은 이른 1965년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승만의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과거사 문제는 오늘까지도 한일 관계 발목을 잡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으로 양국 관계가 회복되나 했지만 최근 일본 초등 교과서 검정(檢定) 문제로 국민 감정은 다시 달아올랐다.

한일 관계는 한국인 입장에서 냉정해지기 쉽지 않은 문제. 미국과 일본에서 자라나 양국 관계를 연구한 두 한국계 학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책을 통해 소개한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의 ‘적대적 제휴’(2004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의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2021년)다.

빅터 차, 강상중

◇상호 적대감 속의 ‘유사 동맹’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정희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가 용단을 내린 덕분인가. 빅터 차는 양국 리더의 성향은 핵심 동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한일은 공산주의 확산이라는 공통된 위협에 직면해 있었고, 두 국가 모두 미국과 긴밀한 관계였다. 그럼에도 과거사로 인한 극심한 적대감은 걸림돌이었다. 협정 반대 정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컸다. 그렇지만 이승만 정부 이후로 14년을 끌어왔던 한일 국교 정상화는 1965년 극적으로 타결된다.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 빅터 차는 “미국이 베트남전에 점차 깊이 개입함에 따라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의 반공 전선을 지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 한일 사이에 즉각적인 화해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미국이 개입하며) 역사적 적대감에도, 지도자가 상대방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그 무렵 양국의 국교 정상화 협정은 타결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실리주의였다. 미국 원조가 줄어드는 가운데 한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외화를 확보해야 했다. 한국 입장에선 얄미울 수 있지만, 일본은 이 시기에 국교 정상화는 최소의 비용(무상 3억, 유상 3억달러로 청구권 협정)으로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절호의 기회라고 봤다. 빅터 차는 이를 “상호 적대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협력 관계”라고 정의했다. 그 결과 한일은 ‘유사 동맹’ 관계를 가지게 됐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나온 이번 강제징용 해법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일 관계가 회복되어야 했다. 한일은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할 실용적 이유가 있었다.

박정희(왼쪽에서 다섯째) 대통령이 1965년 12월 18일 청와대에서 한일협정 비준서에 서명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반일과 혐한에 갇혀 있을 여유가 없다”

1965년 한일협정은 많은 타협과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당시 양국은 ‘의도적 모호성’을 활용해 합의에 이르렀다. 지금도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불려나올 때마다 논란이 되는 ‘이미 무효’라는 문구, 청구권과 관련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말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2세 강상중은 “체결된 지 반세기 이상 지난 한일협정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이를 부정한다면 한일 관계는 밑이 빠진 상황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북핵 위협 앞에서는 ‘순치보거(脣齒輔車·이웃 나라가 서로 돕는다는 뜻)’ 관계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나온 이 책에서 그는 “더 이상 반일과 혐한에 갇혀 있을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한일 양국에서 배타적 애국주의가 들끓는 이유로 사회 분열로 인한 위기를 외부로 전가하려는 경향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재일한인 2세인 강상중은 일본을 대하는 한국인의 마음가짐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는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지는’ 단순한 도식으로 보는 한 (한일은) 자국 우선주의라는 협소한 시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볼법한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통쾌한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을 용서하거나 굳이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이득이 있다면 협력이 가능함을 그동안의 한일 관계는 보여줬다. 그것이 국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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