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1인분만큼의 기여
사무실의 밥 당번 제도가 한동안은 운영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돌아가면서 출근을 하다보니 업무가 쌓여있는데 밥 할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물론 시급한 일이 없더라도 사무실에 적은 인원이 나와있을 때는 한두 명을 위해 굳이 쌀을 씻고 무언가를 굽고 데치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다. 그럼에도 ‘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물가인상이 주변 식당의 메뉴판에 숫자로 반영되기 시작하자 집밥 같은 사무실밥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솜씨나 세심한 플레이팅은 없지만 함께 먹는 소박한 매일의 점심.
물론 나름의 애로사항은 늘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해서 고르고 준비했는데 막상 냉장고에 당장 처리해야 할 것 같은 남은 밥과 반찬이 있을 때, 조리기구는 변변찮은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의 밥을 차려야 할 때, 같이 먹을 사람들의 신념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오늘 쓸 수 있는 식재료가 제한적일 때 에너지가 생각보다 꽤 많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사무실 식구들은 다시 시작된 이 루틴이 마음에 드는 분위기다. 막 지어서 상에 올린 따뜻한 밥상을 반기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번주에 배달되는 ‘못난이채소’ 목록을 함께 구성하고, 서로의 취향이 섞이다보니 평소에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꾸덕하게 마른 감을 짭쪼롬하게 무친 밑반찬이나 말로만 듣던 마라샹궈를 처음 맛본 것도 사무실의 밥 동료 덕분이었다. 밥 당번은 좀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이 제도가 만족스럽게 굴러가는 것은 이 일을 누구나 돌아가면서 맡고 있고, 밥을 지어준 이의 수고에 대해 모두가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귀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밥을 차릴까. 다시 말해 사먹는 밥보다 직접 지어먹는 밥이 그렇게 좋다면 어디서건 우리처럼 돌아가며 맡으면 된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는 회사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다가 그만 열 살 넘게 차이나는 상사에게 고백을 받아버렸다는 호소글이 올라왔다. 평소 자신이 집에서 준비해오는 도시락 반찬에 관심을 보이던 직장상사가 전처에게서는 제대로 밥을 얻어먹지 못했었다며, 반찬에서 운명을 느꼈다고 결혼을 생각해보자고 했다는 것이다. 작성자는 너무 놀라고 불쾌했지만 회사의 대표가 적절한 개입을 해줘서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후기를 남겨주었다. 어떤 이는 너무 뻔하게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고 묻지만 이 글이 이만큼 화제가 되었을 때는 누군가에겐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밥과 끼니에 대해 진심인 한국사람들과 성별분업이 공고한 가부장제가 만나 끼니를 짓는 이 소중한 행위를 오롯이 너희들이 해서 나에게 대접하라는 혹은 나 대신 밥을 해줄 사람을 절실하게 운명으로 찾는 행위.
전남편의 외도를 고백하는 유명인에게 ‘남편 밥을 차려준 적이 몇 번 없다’는 지인들의 댓글, 밥을 차려주지 않아 가정폭력을 행사했다는 범죄자의 말, 여직원만 점심 때마다 밥을 짓게 했던 새마을금고 사건처럼 우리는 그렇게까지 밥에 집착하면서도 밥 짓는 행위가 우선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임을 모른다. 당연히 정성껏 지은 밥은 맛있다. 그런데 그 상에 둘러앉아 행복을 느끼려면 누구나 1인분만큼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남이 차린 밥상으로만 행복을 느끼는 시대는 지나갔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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