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vs 비인간’… 이분법적 역사관에 반기 들다

김수미 2023. 4. 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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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절반 이상 동물 주인공
100가지 동물로 본 공생·절멸
유럽정착민에 살육당한 버펄로
‘美상징 동물’ 선포는 아이러니
‘혐오’ 바퀴벌레·모기 지구 일원
인간의 오만·이기심 성찰 기회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사이먼 반즈/오수원 옮김/현대지성/3만3000원

인간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 중 하나는 ‘비인간적’이라는 표현이다. 바퀴벌레, 쥐, 뱀, 늑대 등에 비유해도 욕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인간과 동물을 우등-열등, 지배-피지배, 인간-비인간의 관계로 규정하고 동물을 하등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도 포유류이자 척추동물이며, 영장류에 속한다. 침팬지와는 DNA를 98% 이상 공유하는 유인원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동물과 싸우고, 동물을 지배하고 이용하며 때로는 살육했다. 동물은 인간에게 식량과 옷(가죽)을 주고, 이동수단이 되고, 친구가 되기도 했다. 물론 끔찍한 병을 옮겨 엄청난 사망자를 낸 적도 있다. 세계사에서 적어도 절반 이상은 동물이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인간 중심의 역사에서 동물은 하등하게 그려지거나 쉽게 지워지기 일쑤다.
사이먼 반즈/오수원 옮김/현대지성/3만3000원
신간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는 인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100가지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 짓는 인간 중심의 이분법적 역사관에 반기를 든다.

100개 챕터는 각각의 동물이 저마다 어떻게 인간과 만나서 위협하거나 위협당하고, 공존과 절멸의 위기에 이르렀는지, 얼마나 인간 생활과 문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전깃줄에 줄지어 앉아 있던 참새조차 ‘영국 보전우려목록’에 올라 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도 올랐다.

인간은 무수한 동물이 절멸해가는 동안 진화에 성공해 더욱 번성하고, 절대 절멸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멸한 종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없어서 도태된 것이라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현재는 인간의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인간도 같은 평가를 받을 텐데 말이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수석기자 출신인 저자는 인문, 역사, 자연과학 지식과 따뜻한 시선으로 한 종 한 종 설명하면서, 인간의 오만과 우월감이 야기한 결과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1870년 미국에서 버펄로를 살육한 뒤 갈아서 비료로 쓰려고 쌓아둔 더미. 지금은 미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선포돼 국립공원에서 보호받고 있다. 현대지성 출판사 제공
저자는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버펄로가 미국을 상징하는 포유동물이라고 선포한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버펄로는 인디언들의 식량이자, 옷감, 집이었으나 유럽 정착민들에게 무자비하게 살육당했다. 버펄로가 없어져야 인디언도 없어질 것이라며 인디언 식량을 표적으로 한, 삶의 방식을 겨냥한 무자비한 전쟁이었다. 1870년대 절정기에는 매일 5000마리의 버펄로가 살육당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뒤늦게 버펄로 개체수 늘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국립공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들의 욕심으로 포획·살육하고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를 파괴해 멸종위기로 몰아놓고는 다시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동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반면 바퀴벌레나 위험한 모기종, 파리처럼 아무리 인간이 절멸시키려고 노력해도 자연 질서를 마음대로 교란하려는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우리 곁에 건재한 동물도 있다.
특히 바퀴벌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미움받는 동물 중 하나다. 사실 바퀴벌레가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데도 이토록 격렬히 싫어하는 이유는 바퀴벌레가 만연한 현상 자체가 인간의 실패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바퀴벌레 존재 자체가 인류가 충분히 높은 수준의 위생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것. 결국 바퀴벌레가 끼치는 해악은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바퀴벌레가 사람들 사이에 발생시키는 히스테리 탓에 사업이 망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다. 바퀴벌레는 우주의 무중력 환경에서 짝짓기에 성공하고 지구로 귀환해 새끼를 낳은 유일한 육상동물이다. 우주까지 가서 증명한 놀라운 번식력을 인간이 어찌 감당하겠는가.

저자는 귀찮기만 한 파리를 비롯해 곤충은 지구를 구성하는 일원이므로 이들을 섬멸한다면 우리 또한 위험에 봉착할 것이라고도 경고한다. 일본의 하이쿠(단편시) 시인 잇사의 시를 인용하며.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빈다! 발로도 빈다!”

인간도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 1346∼1353년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75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을 일으킨 페스트균의 매개체는 동양쥐벼룩이다. 벼룩의 유충은 피부의 각질과 분변을 먹이로 삼으며 빽빽한 털 속에 숨어 산다. 인간이 털이 없는 쪽으로 진화한 것은 이 벼룩을 이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서식지인 털가죽이 없어 벼룩이 인간을 반영구적인 숙주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과 공존해온 동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뿐 아니라 그들을 절멸 또는 멸종위기로 몰아넣은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레타 툰베리의 말을 되새겨보자. “우리에게는 아직 모든 것을 되돌릴 시간이 있습니다. …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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