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금융위기, 안심할 때 아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 사실 이런 기대, 안심하는 분위기가 확산될수록 금융위기 위험은 더 커진다. 따지고 보면, 실리콘밸리은행 파산도 금리인하 기대와 관계가 있다. 앞으로 금리가 내릴 것으로 기대하며 이 시나리오에 맞춰 자산을 운용하다 미 연준이 금리를 ‘더 높이 더 오래’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자 금리인하에 과도하게 베팅했던 은행들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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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전성 규제 잘 작동하게 하고
필요시 옥석 가리기도 나서야
」
위기의 양상은 다양하다. 대표적 안전자산이고 사실상 ‘채무불이행 위험’이 없는 미국 국채를 많이 보유해도 금리변동에 따른 ‘이자율 위험’은 피할 수 없다. 경기가 가라앉고 금리가 내려가는 ‘착륙’ 상황만을 상정해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면 금리가 안 내려가는 ‘무착륙’ 상황의 위험은 알 수가 없다. 은행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과 당국의 느슨한 규제가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위기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럼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선 1980년대 미국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초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렸고, 1984년엔 미국 7대 은행이던 컨티넨탈 일리노이은행이 지급불능 사태에 빠졌다. 이 위기의 근원은 1970년대 유가 상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컨티넨탈 일리노이은행은 당시 석유산업에 돈을 대 큰 이익을 봤다. 그러다 유가가 하락하자 석유산업 대출이 부실화됐고 이를 우려한 예금자들, 특히 예금보호 대상이 아닌 거액 예금자들이 돈을 빼며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미 금융당국은 시스템 위기를 우려해 대규모 구제금융으로 예금자를 보호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선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장기 주택대출에 특화된 지역 예금기관인 저축대부조합 357개, 전체의 11%가 파산했다. 저축대부조합은 고유가와 맞물린 텍사스 지역 부동산 투기 붐에 돈을 댔다가 유가 하락 및 부동산 침체와 함께 지급불능 사태를 맞이했다. 예금보험기관이 상황을 틀어막다 1989년 ‘금융기관 개혁 구제 및 규제강화법’(FIRREA)으로 정부가 1150억달러,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원하게 되면서 이 사태는 일단락됐다.
5년 이상 금융불안이 지속됐던 것인데, 사태의 전개 과정을 보면 위기 요인이 비교적 단순함에도 위험관리가 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텍사스 부동산 붐을 보면, 80년대 초 금리급등기에 집값이 주춤했을 뿐 1986년까지도 집값 상승은 지속됐다. 당시 저축대부조합은 부동산 투자에 돈을 대는 훌륭한 ‘인쇄기,’ 돈을 뿌려주는 기관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위험한 영업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환경에서 가능했다. 80년대 초 미국은 예금보호 한도를 4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높이면서도 금융규제는 완화했다. 투기업자가 원리금을 못 갚으면 더 빌려주는 일이 가능했다. 정부의 보호 강화로 시장규율이 약해진 상황에서 규제규율마저 약해진 것이다. 규율이 사라진 금융업은 혁신의 이름으로 투기를 일삼다 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린다. 결국 국민의 돈이 투입된다.
어느 나라든 이 공식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위기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도록 시장규율과 규제규율을 조화롭게 확립해야 한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도 경영진이 거액 보너스를 챙겨가는 관행을 막기 위한 ‘손실발생시 성과급 환수제도’(claw back)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도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실시하고 건전성 규제가 잘 작동하게 해야 한다. 필요시 옥석 가리기와 함께 유동성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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