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 찍으면 혈압 알려줘" 2兆 앞둔 디지털 헬스케어, 어디까지 왔나

정심교 기자 2023. 3. 3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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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가 대장내시경 검사를 진행한다. 내시경 카메라가 영상을 찍어 보내면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을 통해 영상물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용종을 찾아준다. 의료진이 아주 작은 용종을 지나치면 그 순간 인공지능이 이를 놓치지 않고 자동으로 용종 부위를 검출해 저장한다.

2021년 1월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대장내시경 진단용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닥터앤서'의 활약상이다. 닥터앤서는 대장내시경 검사에서 작은 용종도 지나치지 않고 발견하도록 개발됐는데, 길병원은 이를 모든 대장내시경 환자에 적용하고 있다.

대장내시경은 대장암을 진단하고, '대장암의 씨앗'인 용종을 없애는 중요한 검사법이다. 그러나 의료진의 숙련도가 떨어지거나 피로도가 쌓인 경우, 검사 시간이 충분치 못한 경우엔 작은 용종을 놓치는 경우도 16~26%나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닥터앤서의 핵심은 의료진이 놓칠 수 있는 작은 용종도 실시간으로 발견해 알려준다는 것이다.

닥터앤서를 렌즈와 연동하면 사람의 눈보다 더 넓은 부위를 관찰할 수 있다. 내시경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덕분에 내시경을 실시하는 의사를 돕는 '진단 보조 의사' 역할을 자처한다. 실제로 닥터앤서의 용종 인식율은 97% 이상에 달한다. 연구책임자인 박동균(소화기내과) 가천대 길병원 헬스IT연구센터장은 "환자가 대장내시경을 한 번 받을 때 닥터앤서가 투입되면 검사의 객관도, 진단의 정확도를 높여 대장의 용종·암을 놓치거나 지나치는 일을 없앤다"며 "이에 따라 환자가 겪게 될 의학적 위험성과 경제적 손해를 모두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대거나 건강정보 입력하면 몸 상태 '뚝딱'
이처럼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혜택은 비단 병원 안에서만 국한하지 않는다. 일반인 누구나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하면 건강을 일상에서도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디지털·스마트 기술과 건강 관리를 접목한 개념인 디지털 헬스케어는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ICT(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한 MZ 세대를 중심으로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예로 국내 스타트업 포티파이가 지난해 출시한 온라인 스트레스 관리 서비스 '마인들링'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손가락을 대면 카메라가 손가락의 혈류를 감지해 심박변이도(HPV)를 측정해 스트레스 지수를 알려준다.

캐나다 기업 누라로직스의 '아누라(Anura)' 앱은 마치 셀카를 찍듯 스마트폰으로 30초 동안 얼굴을 찍으면 심전도, 혈압, 얼굴 피부 나이, 체형 지수, 스트레스 지수 등 30여 가지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 심혈관·심장마비·뇌졸중 같은 질환 발병 위험도 알 수 있다.

캐나다 기업 누라로직스가 개발해 출시한 아누라 앱 일부 화면. 30초간 얼굴을 찍으면 건강 상태 30여 가지를 알려준다. /사진=앱 화면 캡처

지난 1월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롯데헬스케어가 선보인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은 개인별 건강 타입을 분석하고 맞춤형 영양제를 추천하는 건강관리 솔루션 플랫폼으로, 올 하반기 본격 론칭할 예정이다.

국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초정밀 단위로 필요한 영양소를 조합해주는 IoT 영양 관리 가전 '알고케어 뉴트리션 엔진'을 선보였다. 자가 체크를 통해 자신의 건강정보를 입력하면 헬스케어 인공지능 '알고케어 AI'가 사용자의 건강정보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자체 개발한 마이크로 용량의 작은 알갱이 영양제로 매일 컨디션에 따라 개인 맞춤형 영양 조합을 5초 만에 제공한다.

이처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적용하면 일상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 데이터로 확인하며 개선할 수 있다. 질병이 발생하고서야 뒤늦게 치료하는 기존의 '치료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는 '예방 중심'의 건강 관리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떠올랐다. 개인 맞춤형 의료, 예방 의학, 예측 의료를 모두 가능케 할 전망이다.

국내에선 어느덧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2조 원대 가까이 성장했다. 이달 3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매출, 인력·고용, 투자, 수출·입 등을 포함한 '2021년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301개 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9~12월 진행한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1조8227억원으로 전년(2020년)보다 34.6%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의료용 기기 매출이 9731억원(53.4%)으로 가장 높았고, 건강관리 기기(2546억원, 14%), 디지털 건강관리 플랫폼(2250억원, 12%)이 그 뒤를 이었다.

문제는 수출과 수입 모두 '의료용 기기'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총 수출(7992억원)·수입(721억원) 규모 가운데 의료용 기기의 수출 비중은 85.4%, 수입 비중은 91.5%에 달했다. 의료용 소프트웨어(수출 1.3%, 수입 0.8%), 의료인 및 의료인 환자 간 매칭 플랫폼(수출 0.4%, 수입 0.01%) 등은 시장 내 존재감이 약했다.


만성질환 남성 환자, 비대면 진료 어려워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은 또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가운데 첨단 보건의료기술 활용에 대한 우려로 '비용 부담'을 지목한 응답자는 69.6%에 달했다. 이번에 발표된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비용 지불자 확보의 어려움(52%), 국내시장 B2C 수요자의 낮은 지불 용의(39%), 산업 관련 불명확한 규제(38%), 해외시장 진출의 어려움(21%), 경쟁사보다 낮은 제품 경쟁력(6%) 등 순으로 매출 발생의 장애 요인을 꼽았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비대면 진료' 측면에선 개인별 정보화 수준 격차도 걸림돌로 꼽힌다. 지난해 9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비대면 진료를 시범적으로 경험한 17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경험 환자의 13.4%는 비대면 진료 시 '증상 설명'에 어려움을 느낀 것으로 응답했다. 이때 설명의 어려움은 나이·학력·지역과는 무관했고 여성보다 남성이, 진료 질환이 만성질환일 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디지털 헬스 역량이 '높은 그룹'(평균 3.5점 이상)은 비대면 진료 시 설명에 대한 어려움을 적게 느꼈다. 이들은 상담 시간과 정보의 충족도, 진료 만족도, 향후 활용 의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디지털 헬스 기술을 익히고 다룰 줄 아는 역량이 비대면 진료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 것이다.


디지털 치료기기 분야 기업들의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등 정부의 실증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30일 디지털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20여 명이 모인 '제4차 디지털 국정과제 연속 현장 간담회'에서 업계 종사자들은 "지난달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를 시작으로 현재 다수의 디지털 치료기기가 식약처 승인 신청 중으로 후속 허가가 이어질 전망"이라며 "우리나라가 해외 시장을 선점해 나갈 수 있도록 임상시험 등 실증 지원을 확대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이날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생성형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을 통해 사람의 복잡한 생물학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추론해 환자 맞춤형 건강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료 혁신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며 "오늘(30일) 우리나라 의료 인공지능·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저력을 확인했고 신규 사업 추진을 통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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