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역사를 바꾼 거짓말
수양대군도 ‘김종서 역모’ 주장 실권
매년 4월1일은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재미있게 남을 속이는 날인 만우절(萬愚節)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이날만은 거짓말을 해도 유쾌하게 속아 넘어간다.
고려는 초기부터 거란족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徐熙) 장군의 활약으로 강동 6주를 차지한 성과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2차 침입 때는 거란의 공세에 크게 밀렸고, 현종은 전라도 나주(羅州)로 피란을 갔다.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양규(楊規) 장군 등의 항전으로 고려의 항복을 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거란은 고려에서 철수하는 대신 자신들의 요구에 응할 것을 제안했다. 전쟁의 장기화를 원하지 않았던 고려도 협상에 응하였다. 거란은 철수의 조건으로 현종이 직접 거란으로 와서 거란 왕을 찾아뵙고 사죄를 할 것과 고려가 송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거란과 외교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왕이 피란을 간 어려운 상황인 만큼 고려는 거란의 요구를 일단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작 거란군이 철수하자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현종이 직접 찾아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송나라와의 교류도 재개하였다. 고려는 임기응변의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고려의 반응에 거란의 왕 성종은 분노했고, 결국 거란은 3차 침입을 단행했다. 그러나 2차 침입 후 국력을 재정비한 고려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승전으로 거란을 물리칠 수 있었다.
1453년 10월10일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완전히 실권을 차지한 수양대군의 쿠데타 과정에서도 거짓말을 찾을 수가 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수양대군은 “지금 간신 김종서(金宗瑞)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군상(君上)을 무시하고 간사함이 날로 자라 비밀히 이용(李瑢: 안평대군)에게 붙어서 장차 불궤(不軌: 역모)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고 하면서 거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김종서가 안평대군과 연합하여 역모를 꾀했다는 정황이나 증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수양대군의 일방적인 주장으로서, 거사를 일으킬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이 거짓말로 세력을 확보한 수양대군은 1455년 윤6월 단종을 압박하여 왕의 자리에 올랐다. 만우절이 다가온 만큼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꾼 거짓말을 떠올려 보았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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