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늑대 여인, 키키 스미스
점차 동물·자연 만남으로 옮아가
남성주의적 시각 탈피 우주 확장
늑대 야성과 마주하는 과정 표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키키 스미스(Kiki Smith) 전시 ‘자유낙하’는 작가의 40년 동안의 작품세계를 망라한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었다. 1960년대 히피문화와 1970년대 페미니즘 예술의 영향 속에서 출발한 키키 스미스는 일찍이 인간의 몸에 대한 실험적인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때 이른 아버지의 죽음과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동생 때문인지 초기작에 나타난 여성의 몸은 고통스럽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병 속의 손’처럼 라텍스로 만들어진 손을 비롯해 ‘테일’, ‘소변 보는 몸’에서 밀랍으로 빚어진 인체는 배설물을 흘리며 동물화한 상태로 웅크리고 있다.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는 명명처럼, 불결하고 비천한 ‘비체(卑體)’를 통해 작가는 남성주의적 상징계를 벗어난 다른 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시장 2층에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이었다. 그녀에게는 예술과 공예의 구분도 작품성과 실용성의 차이도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현대적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벗어나 민예적 전통을 적극적으로 살려냄으로써 자연과 공동체의 온기를 불러오려는 듯하다.
‘하늘’과 ‘땅’과 ‘지하’는 모두 2012년에 만들어진 태피스트리 연작이다. ‘하늘’에서 두 손을 위를 향해 든 여인 곁으로 별과 새와 나비들이 있다면, ‘땅’에서 두 손을 아래로 내린 늙은(죽은) 여인 곁에는 검은 뱀과 나무덩굴이 휘감겨 대칭을 이룬다. ‘지하’에는 땅 아래로 뻗은 뿌리들 사이로 거꾸로 앉아 있는 한 남자와 굴속의 토끼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 신화적이고 동화적인 화폭들 속의 존재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선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회합’에는 거대한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여인 주변에 다람쥐와 부엉이와 박쥐와 사슴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인간과 비인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줄들이 서로를 연결하거나 접촉하고 있다.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태피스트리도 있다. ‘대성당’ 속의 늑대나 ‘머무름’ 속의 붉은 여우 등은 그녀가 불러낸 숲의 정령들이자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 늑대의 창조적이고 원초적인 힘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 이 작품들을 보면서 클라리사 에스테스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 떠올랐다. 융의 원형 심리학을 기반으로 세계의 신화와 동화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분석한 이 책은 여성의 환상과 분노를 거두고 내면적으로 늑대의 야성을 마주하는 법을 일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리의 지하세계로 내려가 기아와 상처를 견뎌내야 한다. 영적인 아이-자아를 낳아 기르는 동안 재와 오물과 흙먼지를 뒤집어써야 하지만, 이런 통과제의 끝에 여성은 늑대 여인이 되는 것이다. 키키 스미스의 작품이 걸어온 길 역시 그 의연한 늑대 여인에 이르는 과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희덕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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