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꽃도 꽃이듯 나도 그냥 나야[책과 삶]
나는 아직 여기 있어
에이미 네주쿠마타틸 지음
후미미니 나카무라 그림 | 신소희 옮김
책읽는 수요일 | 236쪽 | 1만6000원
인도계 아버지와 필리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에이미 네주쿠마타틸이 유색인종이 자기 가족뿐인 미국 마을에서 성장하며 어떤 일을 겪었을지는 희미하게 짐작할 수 있다. 학창 시절 테니스 클럽에 나갔다가 슬그머니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았고, 인적이 전혀 없는 복도를 찾아 혼자 점심을 먹는 일도 있었다. 다수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미시시피 주립대 교수가 된 네주쿠마타틸은 자신의 성장기, 가족사, 연애사를 개오동나무, 반딧불이, 계절풍, 플라밍고 등 자연의 경이에 빗대 돌아본다.
길이 30㎝에 이르는 개오동나무 잎은 캔사스주의 강렬한 햇빛을 가리는 양산이자 유색인종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인생 최초의 남인도 여행에서 만나 반해버린 인도 국조 공작새를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그렸다가 “미국 동물을 그리라”는 교사의 말에 간신히 눈물을 참았던 일도 돌아본다. 네주쿠마타틸은 혼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색은 피콕블루”라고 되새긴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시체꽃은 전체 크기가 2.4~3m에 달하며 쓰고난 기저귀, 정어리 통조림, 블루치즈 드레싱 냄새를 풍긴다. 네주쿠마타틸은 전 세계를 돌며 시체꽃의 개화를 추적한 자신의 열정을 비웃지 않은 단 한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레이철 카슨은 “경이감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주어진 견고하고 평생 지속될 선물이자, 노년의 권태와 환멸에 대한 확실한 해독제”라고 말했다. 원제는 ‘World of Wonders’ ‘경이의 세계’다. 이 책은 자연의 경이로 내면의 상처를 보듬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간 시인의 일대기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유려하고 시적인 문체로 전달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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