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떨어지지 않아, 물건도 인간도[책과 삶]
1미터는 없어
양지예 지음 | 문학동네
224쪽 | 1만4000원
‘그녀’의 천재성은 초등학교 2학년 때 ‘5센티미터 길이의 선분을 그어보세요’라는 산수 문제에서 처음 발현됐다. 자의 눈금은 가늘지만 분명히 두께가 있다. 선분이 시작돼야 하는 지점이 눈금 두께의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그녀는 고민했다. 그녀는 그렇게 오차를 두려워하면서도 미터, 센티미터, 밀리미터, 나노미터 등의 도량형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측량의 천재’로 성장한 그녀는 ‘찌그러지지 않는 버거’를 개발해 백만장자가 됐다.
양지예의 장편소설 <1미터는 없어>에서 ‘그녀’는 미얀마에서 실종된다. ‘나’는 사건의 배후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불확실한 세상과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히고자 했던 인간의 일대기가 그려진다. 무엇보다 도량형과 측정이라는 소재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좋아 술술 읽힌다.
‘그녀’는 완벽한 측정을 믿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의 공식 높이인 8848.86미터는 네팔 정부와 중국 정부가 서로 다른 측정값을 놓고 다투다 합의한 것이다.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로 중력장이 왜곡되기 때문에 길이, 무게, 부피는 계속 바뀌고 측정값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녀는 세상을 끊임없이 측정한다. 양지예는 그녀의 입을 빌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양지예는 이 작품으로 제28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양지예는 202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에게’로 당선된 신예 작가다. 양지예는 이번 수상 소감에 “알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참된 앎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러면서도 계속 쓰겠다”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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