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세월, 한 맺힌 4·3 연좌제

임연희 2023. 3. 3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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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4·3 75주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는데요.

보이지 않는 족쇄였던 4·3 연좌제로 고통의 일생을 보내야 했던 유족들의 사연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보도에 임연희 기자입니다.

[리포트]

4·3 당시 아버지가 대전 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된 양성홍 할아버지.

4·3의 굴레에 갇혀 창창한 미래를 빼앗겼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진학 꿈을 접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취직했지만 4·3 연좌제 때문에 그만두라는 압박에 못 이겨 몇 달 일하지도 못했습니다.

[양성홍/故 양두량 씨 아들 : "너는 공무원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 연좌제를 알기 시작했어요.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까지는 상당히 방랑 생활을 좀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물질을 배워 세 자매 모두 해녀로 자란 오희숙, 오계숙, 오기숙 할머니.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으로, 해방 후엔 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절 집회 참가로 옥고를 치른 고 오화국 선생의 자녀입니다.

[오계숙/故 오화국 선생 딸 : "3.1 운동 행사를 하는데 (아버지가)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하는 도중에 순경들이 와서 끌어내려서."]

자랑스런 아버지였지만 4·3의 광풍 속에 어머니는 임신 중 모진 고문을 당했고, 어린 세 자매도 빨갱이 자식이라며 손가락질받고 마을에서 따돌림 당했습니다.

[오희숙/故 오화국 선생 딸 : "어디 옆집에 들어가려 해도 '저것들'이라고 손가락질하니까 붙여주지도 않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직계가족을 넘어 사위까지 연좌제라는 사슬에 묶여 고문당했습니다.

[오기숙/故 오화국 선생 딸 : "지하실에서 사람이 고함지르고 죽어가는 소리가 몸서리나게 들렸습니다. 그게 우리 형부가 고문당하는 소리였던 것 같아요."]

무고한 양민 수만 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것도 모자라 살아남은 가족들까지 수십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보내야 한 4·3의 아픔.

7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털어놓기 시작한 연좌제 피해에 대해 국가의 잘못은 없는지 물어야 할 시점입니다.

KBS 뉴스 임연희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고아람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임연희 기자 (yh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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