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출산도구'? '성평등' 빠진 尹 정부 저출산 대책 논란

2023. 3. 3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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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위 발표에 여성계 반발 "인구문제는 젠더 문제, 해법은 성평등"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방향과 관련해 "성인지 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정부의 추진계획이 문재인 정부의 계획보다도 퇴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46개 여성·시민사회·노동단체는 31일 논평을 내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지난 28일 발표한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과제 및 추진방향'이 성평등 의제를 배제한 채 "결혼·출산·양육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는 "출산의 주체인 가임기 여성을 문제의 주요 원인이자 정책의 관리대상으로 주목한다는 점에서 해롭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은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 가능 사회"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며 '개인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한 성평등 의제를 저출산 문제의 근본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반면 28일 저고위 측은 문 정부 당시의 정책 목표를 두고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목표"라고 평가하며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추진 전략으로 내세웠다. 구체적으로는 4차 계획에 포함돼 있던 △여성에게 부과된 돌봄 책임 완화 △성평등한 일터 조성 △포괄적인 성·재생산권 보장 △젠더폭력 피해 구제와 예방 등 "성평등 제고를 위한 목표와 추진 과제"가 일괄 삭제됐다.

단체들은 이에 대해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책 언어에서 '성평등', '여성'을 끊임없이 삭제하고 있는 기조와 맞물리는 것"이라며 "현실 진단과 정책 과제 설정에서 성인지 의식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음이 개탄스러운 수준"이라고 평했다. (관련기사 ☞ 여가부 신년 업무추진계획 살펴보니 '젠더', '성평등' 사라졌다)

단체들은 특히 정부의 돌봄 대책과 관련해 "이번 발표안에서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공적 돌봄체계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라며 "돌봄 수요자에게 서비스 이용 수당을 더 지원하더라도, 돌봄노동자의 지위가 불안한 상황에서 돌봄 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저고위는 △기술 개발을 통한 돌봄 서비스 고도화 △돌봄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 이용 수당 지원 등을 정책과제로 내세웠지만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고용 지위와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는 지나치게 단편적인 대책으로 남게 된다는 게 단체들의 지적이다.

단체들은 "이런 상황에서 유자녀 가구 직접 지원만을 확대하는 대책은 결국 양육의 책임과 비용을 가정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여성을 돌봄의 주 담당자로 상정하는 사회 인식과 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정에 부과된 양육 책임은 여성 노동자를 일과 돌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김영미 부위원장과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2023.3.28 ⓒ연합뉴스

정책과제에 상응하지 않는 예산배정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단체들은 "초등늘봄학교에 대한 2023년 국고지원 예산은 0원"이며 "신혼부부와 유자녀 가구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관련 혜택을 제시하고 있지만,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무려 5조 7000억 원 삭감"되었다며 윤 정부의 '5대 핵심분야 정책'이 "추진 기반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모순적이고 공허한 대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간 여성계 및 시민사회 등은 일·가정양립의 불안정성, 성별임금격차 등 일터 내 성차별,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부과되는 돌봄 부담 등의 해소 없이 단순 지원금을 확대하는 방안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저출산 대책은 성차별적이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해야만 풀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신혼부부 등 특정 자격을 갖춘 개인에게만 한정적인 지원을 지속하는 것보단 저출산을 유발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한 주장으로, 최근 주69시간제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저출산심화론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관련기사 ☞ MZ 절반은 출산휴가도 못 써 … "주60시간제는 멸종 국가 부채질")

앞서 지난 29일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도 관련 논평을 내고 윤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이 "노동시간 단축, 불평등 해소 등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문제 해결 방안은 부재한 채 기존에 발표된 정책의 미세한 조정에만 집중하고 있다"라며 "공공의 책임성은 찾아볼 수 없"는 해당 발표안의 기조로는 "가속화하는 저출산·고령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정부가 저출산 심화의 주요 원인으로 △일과 육아 병행 어려움 △고용 불안 △경제적 여건 등을 꼽으면서도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 제시는커녕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며 주당 최장 69시간(주 7일 기준 80.5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며 "진정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지 의심"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발표안에서 '성평등 의제'가 소거된 일에 대해서도 "(정부가 제시한) 일부 정책 과제들의 경우 성평등 사회 구현이라는 큰 틀의 합의에 기반한 접근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책의 미시적 조정에 집중할 뿐 성평등 사회의 구현이라는 더 큰 사회적 문제 해결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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