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식목일을 옮기자’
1493년 음력 3월10일, 조선 성종이 문무백관과 함께 동대문 밖 선농단에 나가 손수 밭을 일군 날이다. 양력으로 따져보니 4월5일. 1946년 미 군정청이 제정해 올해 78번째를 맞는 식목일 날짜는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 해 24절기 중 날이 가장 맑아 봄밭갈이를 시작하는 ‘청명’ 무렵이라 나무 심기에 가장 적합한 때로 여겨진 것은 물론이다. 식목일의 택일은 무엇보다 날씨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걸로 볼 수 있다.
식목일은 1962년부터 50년간 전 국토에 나무 110억그루를 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데 식목일을 계속 4월5일에 두어야 할까. 이 날이 나무를 가꾸고 지키는 문화를 이어온 역사 깊고 상징적인 날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를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지도 오래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겨울이 짧아지고 봄날이 일찌감치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식목에 적합한 시기가 빨라졌다는 얘기다. 이런 까닭에, 유엔이 정한 ‘세계 산림의날’인 3월21일이 식목일 변경일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2021년 산림청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6%가 ‘3월로 당겨야 한다’고 답했다.
식목일이 처음 생긴 1940년대 서울의 4월5일 평균 기온은 7.9도였다. 이 기온은 2010년대 10.2도로 오르고 2021년엔 11.9도까지 치솟았다. 나무 심기에 적절한 기온인 6.5도를 한참 웃돌아 외려 식목을 피해야 할 날씨다. 이상기후를 넘어선 기후위기를 맞은 것이다. 70여년 전 식목일 기온은 이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3월에 관측되고 있다. 요즘엔 3월 중하순이 식목의 최적기로 바뀐 셈이다. 기상청이 엊그제 발간한 ‘2022년 이상기후 보고서’도 수목 147종의 개화 시기가 50년 전에 비해 8일가량 빨라졌다고 확인했다.
서울환경연합은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고자 2010년부터 3월 하순의 하루를 ‘온난화 식목일’로 명명하고 있다. 3월에 식목 행사를 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산림·환경단체가 부쩍 늘었고 2월로 앞당긴 곳도 있다. 이 추세라면 4월5일은 나무 안 심는 식목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 식목일 변경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고 정부는 머뭇대고 있다. 유명무실한 4월5일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날씨에 맞춰 앞당겨서 한 그루라도 더 심는 게 낫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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