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고 수당도 못 받는데 ‘제주 한달살이’ 즐기라니…

한겨레 2023. 3. 3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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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쩜형의 까칠한 갑질상담소][주69시간][한겨레S] 쩜형의 까칠한 갑질상담소
불법 노동시간
야근 강요에 주 80시간 노동
수당까지 체납…겹치기 불법
‘6개월 탄력근로제’ 폐기하고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해야
청년노동자들이 지난 3월3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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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년 동안 야근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몇달씩 주 52시간 이상 근무했고, 한주에 80시간씩 일한 적도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업무를 지시했고요. 야간 근로를 하지 않으면 사장님이 “뭔데 니만 야근 안 하냐”며 화를 냈고, 가스라이팅도 당했습니다. 야근수당을 받을 수 있을까요?(2023. 3. 닉네임 직장내왕따)

불법 야근, 증거는 있다

A. 현 정부가 덥석 물었다가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있는 ‘뜨거운 감자’, 주 69시간제 회사 사연이군요. 토요일까지 ‘주 6일 자정 퇴근’이면 주 78시간인데 80시간을 일했다니, 말이 안 나옵니다. 일요일 새벽 2시까지 일하고 퇴근해 기절하셨겠네요. 유튜브 채널 ‘너덜트’에 올라온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보다 야근이 하루 더 많은 ‘기절 근무표’. 왕따님이 현실 직장인 브이로그를 찍으셨네요.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주 최장 52시간 위반으로 사장은 최대 징역 2년입니다. 둘째, 야근(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으니 최대 징역 3년이고요. 셋째, 휴게시간(8시간 근무 시 1시간)을 부여하지 않았거나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게 했으면 이것도 최대 징역 2년입니다. 넷째, 야근 강요와 가스라이팅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고, 사장에게 과태료 1000만원까지 물릴 수 있습니다. 죄목이 많군요.

혹시 각종 수당이 연봉에 포함되어 있는 포괄임금제 계약을 하셨나요? 괜찮아요. 대법원에서 근무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면 포괄임금제는 무효라고 했으니 야근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야근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은 기본급의 150%니까 주 80시간 근무한 주는 시급 1만원의 경우 40시간에 1.5배이므로 60만원을 더 받을 수 있어요. 연장과 야간이 겹치거나( 10시~다음날 오전 6시), 연장과 휴일이 겹치면 50%가 추가되니까 기본급의 200%를 줘야 합니다.

회사에서는 야근 증거를 대라며 주 80시간 일 시킨 적 없다고 발뺌하겠죠. 또 근로기준법 51조에 따라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서 주 64시간까지 합법으로 일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현행법으로 주 64시간이 가능하지만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하고,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게 지켜졌을까요?

증거가 중요한데, 보통 출근카드·지문인식기·근태관리시스템 등을 이용해 근무시간을 기록하지만 왕따님 회사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겠죠? 그래도 방법은 있습니다. 일단 매일 출퇴근 시간이 기록된 교통카드, 자차로 출근했다면 블랙박스 기록이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근무표, 사장과 나눈 야근 관련 대화, 컴퓨터 로그아웃 기록, 다이어리, 동료의 증언 등도 도움이 되겠죠. 야근한 날은 이런 형식으로라도 증거가 있어야 해요. 증거가 없으면 임금 계산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회사에 설치되어 있는 폐회로티브이(CCTV)로 출퇴근 기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사장이 기록 안 줘요. 또 저장 기간이 길지 않고, 사장이 노동청에 체불임금 신고됐다는 걸 알면 증거를 없애겠죠. 근태관리시스템도 조작할 수 있어요. 주 52시간이 차면 컴퓨터가 꺼지는데, 비상키 쓰면 돼요. 또 일시 접근, 긴급 접근 등 꼼수가 널렸어요. 입증 책임이 오롯이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에 떼인 돈 받아내는 게 정말 어려워요.

정부가 ‘공짜 야근’ 없앤다고 만든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익명으로 신고하면 어떨까요? 신고할 수는 있는데 주 52시간 넘게 일했다는 근무표 등 증거를 달라고 해요. 그런데 근무표는 개인마다 달라서 개인정보를 지워도 누군지 알아요. 또 신고 들어온 사실을 회사에 알려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회사에서 ‘색출’하고 ‘조작’하겠죠. 회사와 ‘헤어질 결심’이 없으면 신고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근무시간 법으로 강제해야

사실 방법은 간단해요. 포괄임금 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하며 근무시간 기록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서 위반하거나 조작할 경우 처벌하면 됩니다. 정부가 근태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거나 중소기업에 비용을 지원해주면 해결돼요. 이게 어려운 일인가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120시간 2주 바짝 일하고 그다음에 노는 것”이라는 발언에 발맞춰 노동부 의뢰로 ‘책상머리’ 교수님들이 꺼내놓은 주 69시간제. 정부가 입법안 발표하면서 ‘한달살이’를 외쳤는데 폭발적 호응이 아닌 분노 폭발을 일으키자 당황한 대통령이 노동부와 ‘손절’하는 형국이라니. 주 60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 일해야 해요. 야근한 다음날은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해야 연애도 하고 아이도 기르죠.

더불어민주당에도 한마디 합니다. 민주당 정부에서 직장인 반대 무릅쓰고 만든 탄력근로제 6개월 확대 때문에 지금도 ‘합법적’으로 주 64시간, 주 6일 근무하고 있어요. 윤석열 정부가 민주당 정부가 하던 일 따라 하는 거라고요. 포괄임금제 금지하라고 했더니 5년 내내 귓등으로도 안 들었잖아요. 사과하고 탄력근로제부터 되돌려놓으세요.

제가 흥분했네요. 왕따님, 야근 증거 하나씩 잘 모아서 단돈 1천원까지 받아내고, 그 돈으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처럼 대학 가서 아침식사 하세요. 야근수당을 떼였는데 회사 다니고 있어서 신고하기 어려운 직장인은 직장갑질119에 제보하세요. 내용 검토해서 고용노동부에 대리 신고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연차 소진을 막으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요즘 엠제트(MZ) 세대는 권리의식이 높아서”,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한다”(지난 3월6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브리핑)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한마디 할게요. “이번 개편으로 근로자에겐 주 4일제나 안식월 등 다양한 근로시간 제도를 향유하는 편익을 안겨주고, 기업에는 인력 운용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고도 했죠? 요즘 ‘노동개혁’ 때문에 고용노동부 야근 많다던데, 본부 사무관들이 “장관 나와라, 차관 나와라, 일 그만하고 휴가 간다”고 하나 보죠? 고용노동부 직원들 제주 한달살이 가면 좋겠네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갑질119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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