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고려시대 실리외교와 윤석열 정부의 외교난맥

김세희 2023. 3. 3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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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연합뉴스>
의주성 남문,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 있다. 당초 고려 영토였던 의주(보주)는 1014년부터 103년간 요(거란)에 점령됐다. 고려는 1117년 금이 이 지역을 공세한 틈을 타 이 지역을 되찾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114년, 고려 예종(고려 16대 왕, 1079 ~ 1122)시기 북방에 있는 요나라(거란, 요)가 고려에 다급히 원병을 요청해왔다. 일개 변방 세력에 지나지 않았던 완안부 여진족이 요에 반기를 들고 군사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려는 원칙적으로 호응하는 듯하면서도 실제 군사행동으로 나아가진 않았다.

이듬해(1115년) 완안부 추장 아골타가 금나라(여진, 금)를 세우자, 요는 다시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형식적이었지만 요와 책봉-조공 관계를 맺었던 이상 계속 거절할 순 없었다. 고려 조정 대신들은 이번 만큼은 파병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 위위소경 척준경과 예부낭중 김부일, 우사간 김부식·우정언 민수는 7년 전 여진을 정벌해 9성을 개척했다가 다시 돌려줬던 일도 있는데다, 군사와 백성들도 후유증을 극복하는 중이기 때문에 파병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요를 위해 군사를 보낸다면 훗날 금과 분쟁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결국 고려는 요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실리를 택했다. 1년 뒤인 1116년, 고려 조정은 요의 운명이 위태롭다는 것을 파악한 뒤 더 이상 그 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1117년에는 금이 요를 공격하자, 즉시 요 영토였던 압록강 유역의 보주를 즉시 점령해 이름을 의주로 고쳐 고려 영토로 편입했다. 보주는 만주와 한반도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역이었다. 또 당초 고려가 확보했던 강동 6주 영토의 안전을 위협하는 접경 지역이기도 했다.

물론 점령은 금의 양해하에 이뤄졌다. 앞서 고려는 금이 보주를 공격한 직후 사신을 보내 이 지역이 고려의 영토라며 반환을 요청했다. 그러자 금은 고려가 직접 점령해서 차지하라고 했다. 당시 금은 고려와 요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는 전략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다.

고려 역시 이런 상황을 모르진 않았다. 고려는 신흥강국인 금과 관계를 개선하고 영토적인 실리를 얻은 뒤에도, 금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금은 고려와 형제관계 맺기를 요구했지만, 조정에선 거부했다. 오히려 당초 요와 관계로 인해 소원해졌던 중원의 송나라와 관계를 다시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신흥국인 금을 견제할 수 있는데다 선진문물까지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도 고려와 관계를 돈독히 해 금을 견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고려는 국제 정세가 변동할 때마다 상대국들의 외교적인 의도를 파악하고, 어느 한쪽과 일방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12세기 초반까지는 고려-요-송, 12세기부터는 고려-금-송으로 다원적인 관계를 맺었다. 고려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제정책을 끌고 가기 위해 여러 국가를 상대로 관계를 유지하거나 단절하는 외교를 펼치며 영토적·문화적 실리를 추구한 셈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한-일 외교를 두고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제소 취하,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 일본에 양보만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총리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외무상은 사실 자체를 아예 부인했다. 그렇다고 회담에 따른 경제 효과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뒤통수까지 맞은 듯하다. 일본은 내년부터 6학년이 배우는 사회 교과서에 조선인 징병을 포함한 강제동원과 관련한 기술을 희석하는 쪽으로 바꾼다. 독도에 대해서는 '한국의 불법점거' 표현을 강화한다. 일본이 본격적인 '역사지우기'에 나선 셈이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과 일본과의 외교에서 챙긴 실리는 무엇인가.

한편 4월 미국 국빈방문·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교안보 사령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교체됐다. 굵직굵직한 '외교 이벤트'를 앞두고 국가안보실장이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장 연쇄 외교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란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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